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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마사회②] “생존대책” vs “도박조장”…온라인 마권 대립

온라인 마권 발매 입법에 김현수 장관 “부정 여론, 시기상조”
불법 경마 매출 7조원 육박, 그중 91%가 불법 온라인 베팅
마사회 “경륜·경정과 불공평, 불법도박 차단에도 필요” 반발
“기수·관리사 죽게 한 내부 부조리 척결 노력 먼저” 지적도

 
 
축산경마산업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1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온라인 마권발매 입법을 촉구하는 기마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 13일 농림축산식품부가 있는 정부세종청사 앞 도로에 말 수십 마리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경마가 1년 넘게 중단되자 말산업 종사자들이 “온라인 마권 발매를 허용하라”며 경주마 30여마리와 집회에 나선 것.  
 
지난해 초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후 말산업 전체가 입은 피해액은 약 7조6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자체 재원을 투입했던 한국마사회는 지난해 4600억원의 적자를 기록, 유보금마저 고갈됐다. 마사회가 매년 출연하던 1000억원 가량의 축산발전기금도 바닥을 드러냈고, 연평균 1조원의 세수도 크게 감소했다.  
 
이에 경주 실적과 성적에 따라 받는 경마상금이 주수입원이던 마주·조교사·기수·마필관리사 등은 물론 관련 사업장 2500여 곳이 당장 고사 위기에 놓였다. 말산업 단체 19곳이 참여한 축산경마산업비상대책위원회는 “말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종사하는 약 2만5000여명의 생활은 파탄이 났으며, 생존권은 박탈당할 위기”라고 호소했다.  
 

25년전 온라인 마권 발매했다 법규 미비로 중단돼

이러한 호소에도 ‘경마는 도박’이란 인식 때문에 각계 시선이 곱지 않다. 말산업이 코로나 사태로 위기에 처하자 경마업계에선 온라인 마권 발매 도입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정부와 국회의 이견으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경마에 대한 국민 공감대가 부족하고, 부정적인 여론이 많아 온라인 마권 발매는 시기상조”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온라인 마권 발매 논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약 25년 전인 1996년 전화·모바일·개인컴퓨터(PC) 등을 통해 최초로 개시된 온라인 마권 발매는 2006년 감사원이 관련 법 근거 부재하다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2009년 중단됐다. 이후 21대 국회 들어 온라인 마권 발매 관련 한국마사회법 개정안이 총 4건 발의됐다.  
 
지난해 8월 24일 김승남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같은 해 9월23일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 10월 7일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 11월 24일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 했다. 관련 법안은 지난해 11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법안소위에 회부됐고, 올해 2월과 6월에 심의했지만 결국 문턱을 넘지 못했다.  
 
마사회 관계자는 “농식품부가 농해수위 요구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며 “여·야 모두 마사회 위기를 공감하고 있지만, 정작 주무부처가 마사회의 붕괴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문창완 한국경주마생산자협회 부회장은 “전국 말 생산 농가가 200곳, 관련 종사자만 2만5000명이 넘는데 전부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며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똑같기 때문에 집단행동을 해서라도 법안 통과를 촉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논쟁의 중심은 온라인 마권 발매가 도박 중독을 부추기냐는 것에 쏠리고 있다. 사행 행위는 법적으로 우연에 의해 재물 또는 재산상 이득을 취하는 행위로, 능력과는 관계성이 없다. 이 때문에 사행 행위에 ‘산업’이 붙으면 국가는 공익적 목적을 갖고 관리·감독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박범수 농림축산식품부 축산정책국장(왼쪽)이 6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한국마사회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말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임을 감안할 때 ‘경마는 도박’이란 단순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 말산업 시장 규모는 2019년 3조5000억원에 육박했다. 업체수는 2478개, 승마시설수는 459개소, 정기 승마 인구는 5만7046명, 체험 승마 인구는 86만2510명으로 명실상부한 레저산업으로 입지를 다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부터 공든탑이 무너져가고 있다. 
 

경륜·경정 온라인 베팅 허용, 경마는 규제…형평성 논란

논란이 되는 이유는 형평성 문제다. 경륜과 경정은 지난달 경륜·경정법 개정안 통과로 8월부터 온라인 베팅이 허용됐다. 그러자 경마와의 형평성 논란이 일었다. 비슷한 다른 경주류 게임의 온라인 베팅이 가능해졌는데 경마만 규제하자 마사회가 미움을 받아서라는 '원죄론'까지 떠돌았을 정도다.  
 
마사회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인간의 본성인 사행심 자체를 말살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사행심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면, 이를 국가가 적절한 선에서 허용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외국에선 경마는 물론 카지노·경륜 등 사행성 사업을 정부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국내에선 유독 경마에만 규제가 심해 불법 경마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 마사회의 의견이다.
 
홍기복 한국마사회 제1노조 위원장은 “합법적인 경마가 이뤄지지 않으면 경마 수요는 불법시장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다”며 “하루에 인원당 베팅 액수 상한액을 정해놓는 합법 경마와 달리 불법 경마는 금액 제한이 없어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어 “베팅 관련 수수료는 불법업체가 모두 챙기기 때문에 말산업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국내 불법도박 시장 매출 규모는 2019년 기준 약 82조원으로 추정된다. 이 중 불법 경마 매출은 약 6조9000억원으로 2019년 기준 합법 경마 매출액 7조4000억원의 약 93% 수준이다. 불법 경마 매출 중 온라인 불법 경마가 약 6조2000억원으로 전체 불법 경마 매출액의 약 91%를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불법 경마를 해결할 방안의 하나로 해외에선 합법적인 온라인 경마 베팅을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영국 등 유럽 국가는 물론, 일본·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 미국과 캐나다의 일부 주에서는 온라인 경마 베팅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오명호 국회입법조사처장 직무대리는 “해외에서 불법 베팅시장의 규모는 감소하고 합법적인 온라인 베팅시장의 규모는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효과가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온라인 불법 경마의 비중이 높은 이유는 현재 한국마사회법에 따라 오프라인 경마장과 장외발매소에서 구매하도록 규정한 불편한 접근성이 주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말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임을 감안할 때 ‘경마는 도박’이란 단순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말산업 포털 사이트 호스피아에 따르면 국내 말산업 시장 규모는 코로나19가 터지기 직전인 2019년 3조5000억원에 육박했다. 업체수는 2478개, 승마시설수는 459개소, 정기 승마 인구는 5만7046명, 체험 승마 인구는 86만2510명으로 명실상부한 레저산업으로 입지를 다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부터 공든탑이 무너져가고 있다.  
 
경마는 카지노·경륜·복권 등 우리나라 합법 사행산업 중 매출 규모가 1위인 동시에 국가적으로도 세수 기여도도 1위다. 일반적으로 경마(마권) 매출의 73%는 고객에게 배당금으로 환급되고 레저세(10%), 지방교육세(4%), 농어촌특별세(2%) 등 16%가 세금으로 납부된다. 최근 10년간 마사회가 확보한 세수는 연평균 1조원인데 이는 연평균 세금 납부액이 3500억대인 경륜보다 3배를 웃도는 수치다.  
 
일각에선 온라인 마권 발매에 앞서 마사회가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고 업계 자정을 위한 노력부터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도박 중독 예방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부정적인 경마 인식 전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게다가 최근 자살 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기수와 마필 관리사 등에 대한 처우와 고용관계 개선 등 내부 부조리에 대한 척결 노력부터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하늬 기자 kim.ho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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