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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더미에서 금맥을 찾다

쓰레기 더미에서 금맥을 찾다

신(新)고물상이 뜬다. 폐전자제품, 하수 또는 폐수의 침전물에서 금맥을 캐는 사람들이다. 버려진 휴대전화도 이들의 손에만 들어가면 금으로 탈바꿈된다. 녹슨 가위를 들고 폐품을 찾아 정처없이 헤매던 고물상의 화려한 진화다. 그러나 이들의 눈부신 활약상에 마냥 들떠선 안 된다.

수도권 리사이클링센터 직원들이 폐냉장고를 분해하고 있다.



# 버린 냉장고 한 대 3만원

쿵! 쾅! 또다시 쿵쾅! 난타 소리가 귀청을 울린다. 직원 25여 명이 망치로 폐냉장고를 부수는 소리다. 냉장고는 삽시간에 선반·폐전선·모터·기판·냉각기 등 20여 개 부품으로 쪼개진다.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수도권 리사이클링센터에선 하루 800대의 냉장고가 이처럼 산산조각 난다.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냉장고에는 대당 철 30kg, 플라스틱 12kg, 알루미늄 0.1kg, 구리 0.7kg 등이 함유돼 있다. 폐냉장고의 가치는 대략 3만원. 이 리사이클링센터에 일일 800대의 폐냉장고가 들어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하루 2400만원, 월 7억여원을 벌 수 있는 셈이다.

폐냉장고뿐 아니다. 철 20kg이 추출되는 폐세탁기 한 대의 가치는 2만6000원에 이른다. 플라스틱 6kg이 나오는 폐TV 한 대는 5만원의 가치가 있다.

한국전자산업환경협회 이원영 과장은 “냉장고·에어컨·TV·세탁기 등 4대 가전제품의 경우 연간 300만 대가 폐전자제품으로 배출되고, 여기서 철 8만t, 플라스틱 4만t, 알루미늄 3000t, 구리 2000t의 광물이 나온다”며 “이들을 재활용하면 연간 800억원 이상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 쓰레기도 돈이다!

하수 또는 폐수 침전물(슬러지)에서도 광물이 나올까? 그렇다. 주로 은, 동이 나온다. 귀금속 슬러지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폐품 재활용 기업 애강리메텍 정영두 사장은 “양질의 귀금속 슬러지 1kg에선 금 20~100g이 추출된다”고 했다. 일반 광석 1t에서 나오는 금(5~10g)보다 많은 양이라는 게 정 사장의 말이다.

그는 “제품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부스러기 또는 슬러지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이것을 잘 활용하면 상당한 경제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슬러지가 돈이 된다면 버려진 휴대전화는? 답은 두말하면 잔소리,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하수 침전물에서 금이 나온다”



폐휴대전화 한 대에는 금 0.034g, 은 0.2g 등이 들어있다. 대당(70g) 가치는 2500원에 이른다. t으로 따지면 3500만원의 가치가 있다. 이원영 과장은 “금광석 1t과 비교했을 때 폐휴대전화 1t의 가치는 50배 이상”이라고 말했다.‘도시 한복판에서 광물을 캐라!’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도시광산산업’이 각광 받고 있다.

도시에서 배출되는 버려진 전자제품 또는 슬러지에서 유용한 자원을 추출하자는 것이다. 이는 1980년대 일본에서 도입된 것으로, 해외에선 어엿한 산업으로 부상한 지 오래다. 국내에도 도시광산업체가 적지 않다. 리코금속·애강리메텍·토리컴 등 중소기업에서부터 LS-니꼬 동제련·고려아연 같은 대기업도 있다.

이들을 단순히 폐전자제품 또는 슬러지를 수집하는 고물상쯤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연 매출이 1000억원에 달하는 회사가 있고, 해외 영업망을 갖춘 업체도 있다. 시장규모는 4000억원에 이른다. 21세기형 신(新)고물상이라고 부를 만하다. 1984년 귀금속 부스러기 수집업체로 출발한 신고물상 대표주자 애강리메텍의 사례를 보자.

이 회사는 컴퓨터·오디오·TV·냉장고 등 폐전자제품을 수집해 깨알같이 부순 후 국내외 제련소에 판다. 슬러지·PCB(인쇄회로기판)폐액·석유화학 촉매도 재활용한다. 백금·팔라듐이 많은 자동차 배기가스 정화장치도 수집한다.

이렇게 모은 물량은 한 해 5000여t. 프리텍·덕산 등 두 계열사까지 포함하면 2만8000t이 넘는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비 30% 성장한 1000억원(계열사 포함). 이 중 600억원은 해외 실적이다. 신고물상의 눈부신 비상이다.


해외 판로 개척하는 도시광산업체들



애강리메텍 정영두 사장
폐전자제품 재활용 업체 리싸이텍코리아의 활약도 눈에 띈다. 이 회사 역시 휴대전화·컴퓨터·배터리·LCD 등 폐전자제품을 수집·파쇄해 제련소에 납품한다. 여기선 금·은·동류와 백금·팔라듐 등 특수금속이 추출된다.

폐전자제품의 부스러기에서도 유가금속을 찾아낸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240억원. 올해는 이보다 50% 성장한 3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정주 대표는 “수년간 추진한 해외 비즈니스의 열매가 올해부터 영글기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가 말하는 해외 비즈니스는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 ‘폐전자제품의 수집 및 파쇄 솔류션’을 전수하고, 그 대가로 폐기물을 제공받는 것이다.

그는 “부품제조업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동남아에선 많은 폐전자제품 및 부스러기가 배출된다”며 “이곳을 공략하면 상당한 경제적 성과를 올릴 수 있을 전망”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이 정도 성과에 안주해선 안 된다. 걸림돌은 많고, 한계도 적지 않다. 도시광산산업은 무엇보다 위기에 약하다. 불황의 한파가 문지방을 파고들 때, 전자제품을 내다버릴 사람은 많지 않다.

제아무리 쓸모없어도 ‘일단 쓰고 보자’는 심리가 강하다. 경기침체로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당연히 폐부스러기 또한 감소한다. 그러면 도시광산업체는 앉은 자리에서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애강리메텍 정영두 사장은 “신고물상이 불황에도 끄떡없으려면 폐전자제품은 물론 슬러지 분야에도 진출해야 한다”며 “전방산업에 영향을 크게 받는 신고물상이 살아남기 위해선 사업 다각화를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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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재활용 시스템 만들어 수출해야


리싸이텍코리아 이정주 대표
신고물상 대부분이 1차 가공업체인 점도 문제다. 이들의 사업구조는 예컨대 폐전자제품을 파쇄한 후 제련소에 파는 것이다. 수집·파쇄가 신고물상의 주 역할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이렇게 파쇄된 물질을 재활용해 완제품을 생산하는 곳은 제련소다. 이를 제련 또는 정련과정이라고 한다. 문제는 1차 가공을 굳이 하지 않아도 폐전자제품 또는 슬러지를 팔 수 있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폐전자제품을 가공하지 않고 중국 등 해외로 밀반출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리싸이텍코리아 이정주 대표는 “폐배터리의 경우, 연간 2000t가량 배출되는데, 이 중 70~80%가 해외로 나간다”고 말했다.

비싼 돈을 들여 가공시설을 갖춘 신고물상으로선 ‘투자만 하고 열매는 먹지 못하는’ 격이다. 그는 “이런 자원유출을 강력하게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2~3개 폐품 재활용업체를 감사하는 다인회계법인 허정 회계사도 “1차 가공업체가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선 수직계열화를 꾀하는 게 능사”라고 말했다. 1차 가공한 폐품을 정련·제련하는 공정까지 구축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LS-니꼬 동제련이 최근 리사이텍코리아를 인수합병(M&A)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회사는 그동안 리사이텍코리아가 전자부품을 분쇄해 납품하면 이를 제련해 유가금속을 추출해 왔다. LS-니꼬 동제련 관계자는 “리사이텍코리아를 인수함으로써, 수집→파쇄→정련·제련을 수직계열화할 수 있게 됐다”며 “이를 통해 원가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더 있다. 폐전자제품의 수거율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폐휴대전화를 수집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한국전자산업환경협회에 따르면 한 해 폐기되는 휴대전화는 1500만 대가량. 이 중 절반만 재활용된다. 그렇다고 폐휴대전화 수거를 강제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 협회 이원영 과장은 “폐휴대전화를 반납해야 신제품을 살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수차례 건의했지만 번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방송통신위원회·환경부 등 의견을 조율해야 할 정부 부처가 지나치게 많은 게 이유”라고 말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최근 우리나라에 잠재돼 있는 폐전자제품을 860만 대로 추산했다.

이는 금 3574kg, 은 20t, 백금 1572kg, 탄탈석 400kg이 들어있는 규모인데, 금액으로 보면 2000억원에 육박한다. 폐전자제품을 모두 수집해 재활용만 해도 나라 지갑이 두툼해진다는 얘기다. 이뿐 아니다. 폐전자제품 또는 슬러지의 재활용은 ‘도시 수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도시 수출이란 우리 도시의 시스템을 수출해 다른 곳에 도입하는 것이다. 신도시 해외시장 규모 중 5%만 점유해도 1000조원 시장을 확보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 파급효과가 크다.

이정주 대표는 “폐전자제품·슬러지를 수집하고 파쇄·제련·정련하는 시스템을 완비하면, 얼마든지 해외로 수출할 수 있다”며 “도시광산산업은 단지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쓰레기가 자원 없는 나라 ‘대한민국호(號)’에 새로운 성장엔진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바로 이것이 신고물상을 육성해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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