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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시티가 국가경쟁력이다

메가시티가 국가경쟁력이다

이제 미국과 중국과 일본이 경쟁하지 않는다. 뉴욕과 상하이와 도쿄의 경쟁 시대다. 어떤 이는 도시국가가 중심이었던 역사를 빌려 ‘신중세시대’라 하고, 다른 이는 국제(國際) 통상이 아닌 도제(都際) 통상 시대가 도래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대표선수를 내보내야 하는데, 세계육상대회에 내보내는 심정이다. 수도권의 경쟁력이 그렇다. 그동안 줄 맞춰 뛰라며 가장 잘 달리는 선수 발목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6년 3월. 경기도지사에 출사표를 던진 김문수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 중 “난센스의 정수”라며 하이닉스 이천 공장 내에 있는 ‘콩밭’을 소개했다.

수도권 규제 중 하나인 농업진흥지역에 묶여 공장 내 부지에 콩을 심었다는 곳이었다. 이코노미스트가 최초 촬영한 이곳은 이후 ‘김문수 콩밭’으로 불리며 수도권 및 기업 규제의 상징이 됐다.

달라졌을까? 아직 그대로 콩밭이다. 정부가 지난해 말과 올 상반기 수도권 산업단지 내 공장 신·증설을 허용하는 등 수도권 규제를 큰 폭으로 풀었지만, 이천 공장은 제외됐다. 상수원보전대책지역 내 특정유해물질 시설의 설치에 대한 규제에 걸렸기 때문이다.

김문수 지사가 수도권 규제에 대해 “상당한 변화와 성과가 있었지만, 아직 미흡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 중 하나다. 지난 3년간 ‘수도권 규제 논란’은 뜨거웠다.

정부가 ‘선 지방발전, 후 수도권 규제 합리화’ 방침을 밝히면 경기도 곳곳에서 항의 집회가 열렸다. 반면, 수도권 규제 완화 발표가 나올 때면 상경 집회를 위한 관광버스가 행렬을 이뤘다. 결국, 정부는 몇 차례 연기를 거듭하다 지난해 말 ‘5+2 광역경제권’과 ‘초광역개발권’을 골자로 하는 지역발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수도권 규제도 대폭 완화됐다.

규제 완화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경기도청에 따르면 지난 1월 수도권 규제 완화 관련 시행령이 개정된 뒤 산업단지 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5곳이 올 한 해에만 1조8000억원의 신규투자 계획을 세웠다. 경기도청 경쟁력강화담당관실 관계자는 “전경련과 함께 지속적으로 조사를 벌이고 있는데, 규제 완화 효과가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수도권 규제 완화에 대해 여전히 반발하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지자체는 자체적으로 광역경제권 프로젝트팀을 구성하고 발전계획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정부는 이를 모아 검토한 후 연내에 종합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제 수도권의 족쇄는 모두 풀린 것인가? 경기도의 생각은 다르다. 김문수 지사가 “악법 중 악법”이라고 표현하는 수도권정비계획법 폐지가 핵심이라는 것이 경기도의 입장이다. 그렇지만 완전 폐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김은경 경기개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수도권 규제 자체가 정치적 규제이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 폐지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인정한다.

이 때문에 경기도가 요구하는 것은 최대한의 규제 개혁과 합리화를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다. 수도권을 묶어두고서 국가경쟁력 강화를 얘기하는 것은 허상이라는 것이다. 서울과 경기·인천을 묶는 수도권이 한국 경제의 핵심부인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기업과 인력과 배후시설과 시장이 집중된 곳이다.

그렇지만 수도권의 대외 경쟁력은 약하다. 공장을 새로 짓지도, 늘리지도, 옮기지도 못하는 사이 세계 대도시권과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김제국 경기개발연구원 수도권정책센터장은 “서울 대도시권은 이미 오래전에 국제 금융의 동북아 거점도시 경쟁에서 탈락한 것으로 보인다”며 “동북아 중심이라는 거창한 깃발이 내려진 지 오래”라고 표현했다.


공장 증설 규제로 공장부지 내에 콩을 심어 놓은 하이닉스 이천 공장.2006년 3월 당시 모습.



정부의 혁신적 정책 전환 시급

다국적 컨설팅업체인 모니터그룹이 최근 세계 20대 광역경제권(메가시티 : Megacity)을 대상으로 한 조사는 이를 잘 보여준다.
모니터그룹에 따르면,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20개 메가시티 중 인구 수 2위인 경인권의 경쟁력 평가 순위는 11위였다. 문제는 내용의 질이다.

경인권은 제조산업 중 첨단기술 제조업 비중이 전체 3위, 지식기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인 혁신지수는 7위였다. 장소매력도는 10위였다. 그런데 글로벌 역량 평가는 17위, 해외 고급인력을 대상으로 조사한 매력도는 15위였다. 포춘 500 기업 중 산업별 주요 회사를 전화 인터뷰한 결과, 글로벌 기업의 지역본부 숫자는 14위였다.

이게 무슨 말인가? 체격은 좋은데, 체력은 약한 요즘 아이들 모습 그대로다. OECD에 따르면 수도권의 1인당 GDP는 OECD 78개 도시권 중 68위다. 장소경쟁(competition of place), 수퍼 지역(Super Region), 광역경제권(Megacity Region)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다.

우리가 ‘수도권 대 비수도권’의 이분법으로 집안 싸움을 하는 사이 세계 각국은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카드로 ‘광역권 개발’을 선택했다. 미국은 ‘대도시권 국가론(Metro Nation)’을 새로운 국토 발전 비전으로 제시했다. 프랑스는 수도인 파리와 경기도에 해당하는 일드프랑스를 통합·발전시킨다는 전략인 ‘그랑파리(Le Grand Paris)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영국은 런던권을 확대 발전시키기 위한 ‘런던 플랜’과 8개 도시권 육성, 독일은 11개 대도시권 육성 정책을 추진 중이다. 광저우, 상하이, 베이징의 3대 거점을 중심으로 광역권 발전에 집중해 왔던 중국은 보폭을 넓혀 10개 대도시군을 키우고 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균형발전을 국토 정책의 기조로 삼아왔던 일본은 10년 전 ‘21세기 그랜드 디자인’ 정책을 내놓으면서 선택과 집중을 통한 성장을 천명했다. 대표적인 것인 도쿄권과 오사카권을 통합한 ‘도카이도(Tokaido) 육성전략’이다. ‘균형발전’이라는 단어는 정책집에서 삭제됐다.

이들 국가의 공통된 목표는 국내 수준을 초월해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권역으로 발전하겠다는 것이다. 정책 추진은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계획을 수립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중앙정부는 지원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동주 국토연구원 국토계획·지역연구본부장은 이런 추세에 대해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의 표현을 빌려 ‘신중세주의(Neomedievalism) 시대의 전개’라고 표현했다.



수도권 글로벌 경쟁력 지방으로 흘러 넘치게 해야

과거 중세시대에 도시국가가 산업과 생산, 교역의 중심이었던 것처럼 향후 세계는 사람, 자본, 정보가 고도로 집중되는 도시권이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것이다. 자유무역의 확산으로 국경이 허물어지면서 국제(國際) 통상이 아닌 도시권 간 교역이 확대되는 도제(都際) 통상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상은 설득력을 갖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어떤 도시가 대표선수가 될 것인가? 메가시티 또는 메가폴리스로서 세계 도시경제권과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두루 갖춘 곳은 수도권이다. 국내 제조업이 밀집돼 있고, 2000만 명이 넘는 거주 인구와 국제 공항과 항만 인프라를 갖춘 수도권은 지리적으로도 강원도, 충청도와 연계돼 ‘메가시티’로서 가장 높은 경쟁력을 갖췄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미 경기도는 메가시티로 성장하기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속속 내놓고 있다. 광역급행철도(GTX) 건설을 추진하고, 서해안에는 각종 대형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거나 대기하고 있다. 경기도가 중심이 돼 중국과 협의 중인 ‘한-중 해저터널’이 올 연말 발표되는 정부의 지역발전 종합계획에 포함될 가능성도 있다.

주한미군의 공유지 반환에 따라 민간투자 계획도 진행 중이다. 김문수 지사는 “더 이상 국내 지역 간 경쟁이 아니라 북경권, 동경권 등 세계 대도시권과 당당히 경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눠먹기식 균형 대신 광역경제권별로 거점지역을 육성하고, 지방에 권한을 대폭 이양해 지방 스스로 특성화된 광역경제권을 육성할 수 있어야 전체적인 균형발전을 이루고, 대한민국 전체가 메가시티 리전(Megacity Rigion)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가 바라는 것은 정부가 ‘수도권정비법’이라는 성장 억제의 규제 말뚝을 뽑고, ‘수도권에 대한 계획적인 성장관리 정책’으로 전환해 달라는 것이다. 정부에는 어려운 주문이다. 사실, 수도권 정책의 획기적 전환이라고 할 수 있는 ‘수도권 계획적 관리’는 지난 참여정부의 핵심 과제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껏 달라진 것은 없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갈등의 불씨였기 때문이다. 수도권 규제가 정치적 규제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중앙집권적 지역발전 정책은 접을 때가 됐다. 김제국 센터장은 “영국, 프랑스, 일본의 사례를 보면 심각한 경제적 침체와 위기에 직면해서, 그것을 계기로 국토도시계획의 변화가 이뤄졌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선택은 뻔하지 않은가? 세계적 차원의 대도시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특히 대한민국 대표 메가시티인 수도권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려면 규제는 합리적으로 풀고, 제대로 믿고 맡겨보는 것이다. 동시에 수도권의 개발이익이 지방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비수도권을 위한 과감한 정책 지원을 동시에 내놔야 한다.

그리고 각 지방이 자체적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는 지원만 열심히 하면 된다. 수도권에만 빵을 준다는 푸념을 할 때는 지났다. 중국 광둥성이 “10년 내에 한국 경제를 추월하겠다”는 목표를 공공연히 밝히는 마당이다. 한 해 외국인 2000만 명이 찾는 경기도에는 특1급 호텔 하나 없다. 더 무슨 이야기가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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