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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TV 결전 임박

스마트TV 결전 임박

스마트폰은 짧은 기간에 한국인의 삶을 상당 부분 바꿔놨다. e-메일은 받는 즉시 답장을 하기 예사고, 애플리케이션을 구동하면 전철을 타고 가면서도 은행 업무를 다 볼 수 있다. 이번에는 TV가 나섰다. 구글이 소니, 인텔 등과 함께 만드는 구글TV가 이르면 올가을 미국에서 출시된다. 수십 년간 집 안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TV는 인터넷과 만나 우리 삶을 얼마나 많이 바꿔 놓을 것인지, 그리고 IT 산업계는 또 어떤 풍랑을 겪게 될지 알아봤다.
▎2010년 5월 20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구글 콘퍼런스에서 소니의 하워드 스트링거 CEO(왼쪽)와 인텔의 폴 오텔리니 CEO가 구글TV의 시제품을 사이에 두고 환하게 웃고 있다.

▎2010년 5월 20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구글 콘퍼런스에서 소니의 하워드 스트링거 CEO(왼쪽)와 인텔의 폴 오텔리니 CEO가 구글TV의 시제품을 사이에 두고 환하게 웃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의 오라클 본사에서 수석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는 조성문씨.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의 개발팀에서 근무하는 조씨지만 집에 오면 여느 직장인과 다름없다. 그가 퇴근 후 집에 들어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TV를 켜는 일이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애플의 초미니 컴퓨터인 맥미니의 전원 버튼을 하나 더 눌러주는 일. 버튼 하나 더 눌렀을 뿐인데 조씨의 여가생활은 이로 인해 일반인과 크게 달라진다. 그는 올 초 삼성전자의 46인치 LED TV를 사면서 맥미니라는 애플의 컴퓨터와 TV를 연결시켰다.

새 TV를 샀지만 고전적인 의미의 TV 방송은 아예 시청하지 않는다. 지상파는 물론이고 케이블 TV 채널도 거의 보지 않는다. 출근 전 경제전문 채널 CNBC를 잠깐 켜놓는 정도다. 조씨는 6월 17일 오후 7시 아사히 캔 맥주 하나를 들고 소파에 앉아 월드컵 한국과 그리스전을 시청했다.

시간대가 맞지 않아 실시간으로 보기는 힘들지만 그에게는 미국 동영상 제공 사이트인 훌루(www.hulu.com), 넷플릭스(www.netflix.com), 유튜브(www.youtube.com)가 있다. 원하는 모든 동영상 콘텐트는 거의 다 찾을 수 있다. 그는 10분으로 축약된 하이라이트 편을 검색해 46인치 TV 화면에 띄운다.

동영상을 보다 박지성의 골 장면은 캡처를 해 즉시 자신의 블로그에 담아둔다. NBA 농구나 MLB 야구 경기도 놓치는 일이 없다. 머리를 식히면 그는 곧바로 TV에 인터넷을 띄워 다음날 회의 준비를 시작한다. 조성문씨는 선이 없는 블루투스 키보드를 TV 리모컨처럼 쓴다.

외부활동이 없는 주말이면 그는 드라마를 꼭 몇 편씩 몰아서 본다. 지상파 방송 ABC의 드라마 로스트는 이 회사 사이트인 ABC닷컴에 유료회원으로 가입하면 원하는 에피소드를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시간만큼 볼 수 있다. 지난달 시즌6을 마쳤지만 그에게 이 드라마는 여전히 방송 중인 셈이다.

짬이 안 나 몇 주를 걸렀기 때문이다. 조씨에게 TV 브라운관은 더 이상 실시간 방송을 보기 위한 창이 아니다. 드라마, 쇼, 뉴스 등 영상 콘텐트를 효율적으로 소비하고 친구와 온라인 게임을 하며 인터넷으로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매체다. 회사 일을 소파에 앉아 할 수도 있다. 적어도 그에게 TV는 더 이상 바보상자가 아니다.

◇“TV 방송 그대로 보는 건 시간낭비” = IT 전문가인 조성문씨의 TV 시청 습관을 자세하게 쓴 이유는 아직 그 실체를 다 드러내지 않은 구글TV의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올가을 나올 구글TV는 조성문씨가 별 어려움 없이 구성한 ‘자체 스마트TV 환경’과 기술적으로는 거의 같다.

조씨가 갖춘 스마트TV 시스템과 구글TV의 단 하나의 차이점은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앱)이 구글TV에서는 구동된다는 것이다. 스스로 스마트TV를 환경을 구축해 즐기고 있지만 조성문씨는 “구글TV를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고화질의 TV로 방송국에서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건 낭비”라고 말했다.

방송사가 보내는 프로그램을 수동적으로 받기보다는 자신의 취향과 일정에 따라 선택적으로 즐긴다는 설명이다. 그는 “내 주변 친구나 동료 중 상당수가 나처럼 TV를 컴퓨터에 연결해 이용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컴퓨터를 연결하는 번거로움을 없애주고 게임을 비롯해 구글 안드로이드폰의 다양한 앱도 즐길 수 있는 구글TV는 상당수 사람에게 필수품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스마트폰이 우리 삶을 바꿔놓은 지 길게 봐야 불과 3년. 한국에서는 지난해 11월 KT가 애플의 아이폰을 들여왔으니 불과 7개월이 지났다. 짧은 기간이지만 변화는 많았다. e-메일을 보내면 거의 즉시 답장이 오는 일이 대수롭지 않게 됐다. 잘 살펴보면 마지막 줄에는 ‘iPhone에서 보내는 메일입니다’라는 문구가 달렸다.

어디서나 e-메일을 처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언론사의 앱으로 뉴스를 챙겨본다. 트위터로 자신이 어디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생중계를 하게 됐다. 버스를 타고 가다 온라인 쇼핑몰의 앱으로 장을 보고 부모님께 용돈도 이체해 드린다. 세상이 좋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삶은 편리해졌다.

이제는 TV가 똑똑해질 차례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이 인간의 삶을 이렇게 바꿔놓았다. 거실의 한복판이나 방 안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TV가 바뀐다면 더 엄청난 변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사실 똑똑한 TV, 스마트TV를 만들려는 시도는 그동안 여러 차례 다각도로 이뤄졌다.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MS)는 각각 플레이스테이션과 X박스 게임기에 인터넷 접속 및 영상 콘텐트 재생 기능을 추가했다. PC회사에서는 동영상과 음악 재생에 초점을 맞추고 방송수신 칩을 내장한 고사양 ‘미디어센터 PC’를 내놓았다.

애플은 애플TV라는 셋톱박스 형태의 제품을 출시하고 구매자가 자사의 콘텐트 장터인 아이튠스를 이용하도록 했다. TV 회사들도 대응에 나섰다. TV 회사들은 인터넷이 연결되는 ‘커넥티드TV’를 선보였다. 삼성은 ‘삼성앱스’라는 자체 운영체제를 바탕으로 한 커넥티드TV를 판매 중이다.

▎구글TV 개발업체 대표들이 5월 2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모스콘 웨스트 컨벤션 센터에 모였다. 에릭 슈밋 구글 CEO(맨 왼쪽)가 산타누 나라예 어도비, 브라이언 던 베스트바이, 찰스 에르겐 디시네트워크, 제라드 퀸들렌 로지텍, 하워드 스트링거 소니, 폴 오텔리니 인텔 CEO(왼쪽 둘째부터)에게 구글TV를 설명하고 있다.

▎구글TV 개발업체 대표들이 5월 2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모스콘 웨스트 컨벤션 센터에 모였다. 에릭 슈밋 구글 CEO(맨 왼쪽)가 산타누 나라예 어도비, 브라이언 던 베스트바이, 찰스 에르겐 디시네트워크, 제라드 퀸들렌 로지텍, 하워드 스트링거 소니, 폴 오텔리니 인텔 CEO(왼쪽 둘째부터)에게 구글TV를 설명하고 있다.

◇ 구글TV, 반응은 일단 미지근 = 새 스마트TV는 두 업체가 주도하고 있다. 인터넷 회사 구글과 단말기 회사 애플이다. 이번에도 TV산업의 밖에 있는 업체들이 공세에 나선 것이다. 세계 TV시장 1, 2위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아직 관망하는 중이다. 스마트TV 시대를 처음으로 들고나온 건 구글이다.

한 달도 안 된 일이다. 지난 5월 2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에릭 슈밋 구글 CEO는 세상에 구글TV를 소개했다. 이 자리에는 구글TV 협력업체의 CEO 6명 전원이 참석했다. 인텔의 폴 오텔리니 CEO는 구글TV 전용 프로세서를 개발 중이다. 소니의 하워드 스트링거 회장은 인텔이 칩을 개발하는 대로 이를 장착해 구글TV를 만들어 이르면 올가을 미국에서 출시한다.

미국 최대 가전 유통업체 베스트바이의 브라이언 던 CEO는 이 TV와 액세서리 유통을 맡았다. 키보드와 리모컨의 융합이 될 것으로 보이는 입력 장치 개발은 로지텍 제라드 퀸들렌 CEO의 몫. 애플에게 선택 받지 못했던 어도비의 산타누 나라예 CEO는 구글로 옮겨 타 플래시 애니메이션의 부흥을 외친다.

위성채널 디시네트워크의 찰스 에르겐 CEO의 모습도 보였다. 가장 중요한 콘텐트는 사실상 구글이 가지고 있다. 세계 최대의 영상 콘텐트 보유 사이트인 유튜브를 구글은 2006년 16억5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MTV의 모회사인 바이아컴이 끝까지 경쟁했지만 돈 싸움에서 밀렸다. 인수 직후 유튜브를 TV에 띄워서 보는 서비스를 계획하며 스마트TV 시대를 열고자 했지만 뜻대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구글TV를 발표하는 데 4년의 기간이 걸린 셈이다. 구글의 도전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구글TV에서 정말로 똑똑하고 혁신적인 스마트TV의 미래를 기대했던 몇몇 파워 블로거가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인 것도 무리는 아니다. 구글은 ‘TV와 웹의 만남’이라며 구글TV를 설명했다. 하지만 대다수 평가는 ‘TV의 모습을 한 컴퓨터’였다.

이달 8일 구글은 개발자를 대상으로 구글TV 시연회를 열었다. 일본에서 열린 구글TV 시연회를 이끈 구글 본사의 미키 김 신규사업팀장은 10일 일본 도쿄에서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구글TV에 들어갈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등 소프트웨어 개발이 끝난 지난해 말부터 소니, 로지텍, 인텔 등과 협력관계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기왕이면 인터뷰를 통해서 구글TV를 한국에 제대로 알리고 싶다.”

하지만 구글코리아는 이 인터뷰를 막았다. 때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구글TV는 아직 스마트TV를 논할 때가 아니다. 영국 IT컨설팅 업체 오범의 얀 도슨 수석 컨설턴트는 “구글TV는 지금까지 나온 제품과 그다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제품의 탄생 배경도 구글이 TV광고 시장에 진출해 자사 광고매출을 올리려는 것”이라고 깎아내렸다.

그럼에도 이번 스마트TV는 이전과 다를 거라는 예상이 많다. 전문가들은 이번 스마트TV는 스마트폰과 기존의 웹에 이어 TV까지 같은 운영체제로 연동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모바일, 웹, TV가 연동한다는 뜻에서 ‘3스크린’이라는 말도 나왔다.

◇ 애플이 만들면 이번에도 다를 것 = 혁신의 대명사 애플은 새 스마트TV를 정말 똑똑하게 만들 주역으로 기대되고 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CEO는 일단 구글을 한 수 아래로 접으면서 이목을 모았다. 잡스는 이달 초 한 콘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하면서 구글TV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구글TV처럼 해서는 실패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애플 마케팅 부문의 한 간부급 사원은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구글TV는 다른 업체가 실패한 이유와 마찬가지로 TV 매체의 특성을 전혀 이해 못한 채 만든 제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청자는 TV 화면이 무엇으로든 가려지는 것을 싫어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면서 “드라마를 보는데 화면 한 켠에 쇼핑정보가 들어가는 식으로 화면을 침범하는 것은 혁신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쓴소리를 내놨다. 혁신은 소비자가 이전의 제품을 버리고 신제품을 사고 싶을 만큼 편리하고 신기한 제품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구글TV용 앱 이미 개발 경쟁

▎스티브 잡스 애플 CEO가 2006년 12월 ‘iTV’라는 코드명으로 소개된 셋톱박스 형식의 스마트TV를 소개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 애플 CEO가 2006년 12월 ‘iTV’라는 코드명으로 소개된 셋톱박스 형식의 스마트TV를 소개하고 있다.

애플은 과거 ‘취미 수준’인 애플TV를 내놓은 적이 있다. 애플의 후속작이 구글TV와는 판이할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애플의 한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혁신적인 제품은 소비자가 최대한 편해질 수 있는 것”이라며 “애플이 TV를 만든다면 구글처럼 TV 화면을 가리지 않으면서 아이패드나 아이폰이 새로운 형태의 리모컨 역할을 하도록 할 확률이 높다”고 들려줬다.

TV로는 방송이나 영상 콘텐트를 풀 화면으로 시청하면서 그와 관련된 정보검색이나 쇼핑은 무선으로 연동된 아이패드 등의 개인 단말기를 통해 해결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미국인이 열광하는 미식축구는 통계가 게임을 이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구글TV는 경기 화면을 가리면서 정보를 제공하지만, 우리는 시청자가 불편하지 않도록 경기 화면에 지장이 없는 아이패드나 아이폰으로 통계 등 정보를 전달하고 광고를 보면서 상품도 구매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티브 잡스가 구글TV 같은 방식으로는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여기에 애플의 앱까지 TV에서 구현된다면 차세대 애플TV가 적어도 지금까지의 제품과는 하나라도 차별화되는 스마트TV가 되리라고 업계는 내다본다. 과거의 스마트TV와 차세대 스마트TV를 가르는 요소 중 하나가 앱이다.

구글 역시 앱의 중요성을 잘 안다. 구글TV는 스마트폰의 안드로이드마켓과 비슷한 스마트TV 앱스토어를 운영한다. 개발자가 프로그램을 올리고 수익을 나눠 갖는 구조도 같다. 이름난 소프트웨어 개발회사 몇 곳은 이미 구글TV용 앱을 완성해 비밀리에 시연을 다니고 있다.

미국의 한 대형 소프트웨어 업체의 자바 개발팀은 최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쓰는 스마트폰과 구글TV가 연동되는 데모용 스마트TV 앱을 개발했다.

이 앱은 스마트폰에 있는 사진, 동영상, 파일을 손동작 하나로 구글TV에 보낼 수 있다. 스마트폰에 사진을 띄워 손가락으로 잡고 TV 화면을 향해 카드를 날려보내듯 빠르게 스치면 사진이 그대로 TV 화면에 나타난다. 이 개발팀은 대형 TV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시연회를 열었고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 PC와 MS의 동반 몰락 전주곡인가 = 단순히 재미로 만든 앱처럼 보이지만 이 안에는 스마트TV가 산업계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만한 내용이 담겨있다. 스마트TV가 소비자의 관심과 함께 IT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스마트TV가 보편화될수록 없어지는 IT 기기와 서비스의 수가 그만큼 늘어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본다. 새로 필요하게 되는 IT 기기나 서비스도 있다.

특히 유료화된 동영상 사이트나 TV용 앱이 수혜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TV가 여러 IT 기기를 한데 묶어 소비자를 좀 더 편하게 만들려는 것이기 때문에 데스크톱은 물론이고 노트북과 같은 PC는 설 곳이 좁아질 가능성이 있다. 사무실은 몰라도 가정에서는 PC가 점차 밀려나리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PC가 내리막을 걷는다는 전망은 어디서나 무선으로 연결된 유비쿼터스 환경을 바탕으로 한다.

PC를 열어서 하는 작업의 상당 부분, 즉 e-메일을 열고 확인하고 답장하며 뉴스를 접하며, 동영상과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는 일이 이제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으로 가능해졌다. 따라서 집에 돌아와서 PC 전원을 켜고 부팅이 되도록 기다릴 일이 없어졌다. 집에서는 대신 크고 생생한 화면의 TV 앞에 앉을 가능성이 크다.

시간대가 맞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방송을 보고, 아니면 방송을 끄고 스마트TV가 제공하는 넓고도 깊은 앱의 바다를 서핑할 것이다. 스마트폰과 아이패드의 협공을 받는 데다 스마트TV의 도전에 처한 PC가 입지를 지키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럴 경우 수십 년 동안 IT 업계의 강자로 군림해 온 MS의 지위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기존 PC는 트럭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스티브 잡스 애플 CEO가 한 말이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농업국가였을 때엔 모든 차가 트럭이었다. 하지만 차가 도심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자 자동변속장치, 파워 스티어링 등 트럭에서 별 필요가 없던 혁신 기술이 중요해졌다. 트럭은 여전히 존재하며 상당한 가치를 가지겠지만 일부에 의해 사용될 것이다.”

서비스에서도 희비가 갈린다. 일단 스마트TV와 가장 유사한 개념을 지닌 IP TV(인터넷TV)가 가장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일반 회사에서도 회의실에 TV 한 대를 놓는 순간 프로젝터와 관련 제품은 경쟁력을 잃게 된다. 유력 대기업이 만든 이 TV용 앱을 사용하면 프레젠테이션을 스마트폰과 스마트TV만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프로젝터도 노트북도 필요 없다. 스마트폰과 스마트TV 한 대만 있으면 프레젠테이션은 끝난다.



삼성전자 “구글TV 제안 받았지만 거절”이 TV용 앱을 만든 자바 개발팀의 수석 연구원은 “앱의 수준에 따라 세계 IT 업계에는 희비가 교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TV는 노년층에도 익숙한 매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내 근황을 TV를 보던 부모님이 쉽게 알 수 있도록 따로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TV가 알람을 울려주는 푸시 기능을 적용한 버전도 개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아이폰 악몽’ 재연되게 하지 않는다 = 가장 큰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업계는 TV 제조. 세계 TV시장에서 점유율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다. 국내 TV 업체는 올가을 북미시장에서 삼성, LG의 로고를 단 TV 옆에 구글-소니나 구글이라는 로고를 단 TV가 진열된다는 점만으로도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TV 업계 부동의 1위인 삼성전자는 아이폰이라는 스마트폰에 데인 경험이 있는 상황에서 또 한번 ‘스마트’라는 첨단 제품에 위협을 받는 처지가 됐다. 재계의 한 인사는 “삼성의 오늘은 반도체라는 튼튼한 토대에서 휴대전화와 TV가 높은 성장을 보여줬기에 가능했다”며 “스마트폰으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는데 이번에 구글이 소니를 선택해 속이 쓰리지 않겠는가”란 전망을 내놨다.

실제 얘기는 조금 다르다는 것이 삼성전자의 말이다. 삼성전자의 공식적인 입장은 다음과 같다. “구글과는 이미 우리 TV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과정에서 협력해 온 사이다. 구글TV라는 것이 아직 실체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기존에 해왔던 인터넷이 연결되는 TV 사업을 그대로 유지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사정은 이보다는 조금 복잡하다는 얘기가 많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구글TV에 협력하는 건은 이미 꽤 오래전부터 논의됐지만 우리 측에서 거절했다”고 들려줬다. 삼성전자가 구글TV 진영에 합류하기를 거절한 이유는 인텔이 개발 중인 구글TV용 칩 때문이었다.

이 임원은 “구글과 협력관계인 인텔이 스마트TV에 들어가는 칩을 만든다고는 하는데 (그동안 인텔의 기술력이) 다소 약해진 경향이 있다”며 “삼성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얼마나 되는데 검증도 안 된 칩을 사용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인텔이 칩을 개발하고 나면 검증부터 해보고 보완해서 쓸 계획을 갖고 있지만, 소니는 자신의 상황이 답답하니까 무조건 따라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베스트바이 같은 전자제품 유통업체가 구글TV만 팔겠다는 것도 아닌데 CEO가 직접 나온 걸 보니까 (구글에서) 언론 플레이가 좀 있었던 것 같은데, 우린 오라고 해서 무조건 가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자체 운영체제로 스마트TV 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은 작다.

실제로 삼성과 LG는 스마트폰의 역풍을 맞으며 자체 스마트폰 운영체제가 아닌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선택했다. 브랜드 지명도에서 구글과 애플에 크게 밀리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자체 스마트TV 운영체제를 이미 갖추고 앱 장터인 삼성앱스도 운영 중인 삼성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 똑똑한 TV가 우리 생활을 어떻게 바꿀까 = 상당수 전문가는 스마트TV가 주목 받고 시장을 형성하는 데엔 애플의 역할이 크리라고 예상한다. 혁신의 코드를 지닌 애플이야말로 TV를 진화하게 할 적임자라는 설명이다. 그런 평가가 과장이 아닌 것이, 애플은 맥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개념의 컴퓨터인 맥을 만들었고, 디자인에 주력한 아이팟이라는 MP3 플레이어로 재기에 성공했다.

혁신적인 기능과 품질 그리고 디자인의 결정판이 아이폰이었다. 그리고 올해 아이패드라는 태블릿PC를 만들었다. 애플은 혁신적인 상품을 만들어 잠자는 소비자의 지갑을 열 줄 아는 기업이다. 그래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애플이 결국 내놓을 것으로 보이는 애플TV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미래는 참여자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구글에도 강점이 있다. 안드로이드 기반의 앱 개발회사인 워크스마트랩의 정세주 사장은 “안드로이드가 예상보다 더 빠르게 진화하면서 구글이 추구하는 개방 플랫폼의 위력을 TV에서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확장성과 호환성에서 향후 애플이나 삼성이 스마트TV 시장에 진출하더라도 구글에 강점이 있다는 설명이다.

TV는 IT 기기의 마지막 신천지다. TV가 똑똑해지면, 이용자는 TV에서 인터넷을 자유롭게 활용하고 원하는 콘텐트를 원하는 시간에 보며 앱으로 은행거래나 업무까지 보게 된다. 애플의 아이팟이 진화해 아이폰이 되고 다시 아이패드로 점차 지평을 넓혀갔듯 스마트TV도 그 첫걸음과 개화 시기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이 불확실한 스마트TV의 미래에서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스마트TV가 바꿔놓을 미래의 삶이 최근 일고 있는 모바일 혁명으로 인한 삶의 변화보다는 훨씬 극적일 거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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