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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에도 꾸준히 기부하고 싶은데…

은퇴 후에도 꾸준히 기부하고 싶은데…

돈 많이 모아서 좋은 일에 쓰고 싶다는 한주희(왼쪽)·이종민 부부. 따뜻한 마음처럼 웃는 모습도 푸근하다.

“돈 쓸 줄은 아는데 모으는 법을 모르겠다.” 이종민(55) 이화병원장의 얘기다. 그는 1985년 천안의 조그만 동네 산부인과로 시작해 현재 10명의 의사를 둔 전문병원으로 키워냈다.

천안에서는 이주 여성을 돕는 것으로 더 유명하다. 90년 초부터 이주 여성을 챙기기 시작했고 2008년에는 사회복지재단을 세웠다. 이 원장의 남편은 한주희(59) 대림산업 석유화학사업부 대표이사다. 2004년부터 회사 경영을 맡아온 장수 CEO다. 투자 상담은 1월 8일 성북동 이 병원장의 집에서 이뤄졌다. 부부는 집 앞 도로까지 나와 반겼다. 식탁에는 와인과 각종 음식이 준비돼 있었다. 마치 가족 식사 모임에 초대된 듯했다.



이주 여성의 친정어머니 된 이 원장이 원장은 병원에 온 이주 여성을 진료하면서 그들과 인연을 맺게 됐다고 했다. “환자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마음의 병이 깊어 보였어요. 요즘은 이주 여성에 대한 사회 인식이 많이 좋아졌죠. 20년 전에는 하녀 대하듯 했어요. 대부분 남편보다 열 살 이상 어린 데다 말도 통하지 않으니까 향수병에 걸린 거죠.”

새벽에 자살하려 약을 먹고 실려온 환자도 있었다. 필리핀에서 가수로 활동했던 여성이다. 한국에 오면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살 수 있다는 얘기만 믿고 시집온 것이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그녀는 심한 우울증을 앓게 됐다. 이 원장은 “자살은 극단적 선택이지만 그만큼 이주 여성이 힘겹게 살고 있었던 게 현실이었다”고 얘기했다.

딱한 사정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이 원장은 팔을 걷어붙였다. 병원 원무과를 상담 창구로 만들었다. 이주 여성이 언제든지 찾아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병원 강당은 교육장으로 바꿨다. 이주 여성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한국어와 풍습을 가르쳤다. 사비를 들여 복지사도 채용했다.

“말이 통해야 살죠. 남편은 농사 짓느라 가르쳐줄 시간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한글 자음부터 교육했어요. 틈틈이 제사 지내는 방식이나 한국 요리도 알려주고요.”

점차 사람이 불어나자 혼자 힘으로는 벅찼다. 그는 중국,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등 나라별로 이주 여성 모임을 만들었다. 2004년 세운 이화국제부인회다. “쉽게 설명하면 멘토 모임이에요. 나라별로 먼저 이주한 분들이 멘토가 돼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한국 문화도 알려주는 거예요. 태어난 곳이 같은 데다 언어가 통하니까 서로 의지하면서 친자매처럼 잘 지내더라고요.”

필리핀 의료 봉사활동 모습



부모 이름 따 세운 희정복지재단이주 여성을 돕기 시작하면서 기부 금액은 매년 꾸준히 늘었다. 2005년 이후 한 해 평균 8000만원을 썼다. 진료와 복지를 결합한 구체적 프로그램도 운영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2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2008년 4월 사회복지재단을 세웠다. 건물을 포함해 약 12억원이 들었다. 재단 이름은 부친과 모친의 성함 중간자를 따 ‘희정’이라 붙였다. 희정복지재단이다.

그가 이주 여성을 돕기 시작한 데는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이 원장이 열두 살 때 병환으로 돌아가신 선친은 마을에서 존경 받는 분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모친은 6남매를 농사일로 홀로 키웠다.

“6남매가 모두 대학까지 졸업했으니 어머니 고생이 컸죠. 돌아가시기 전 입버릇처럼 가난한 노인들을 돌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희정복지재단은 부모님의 마음을 담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희정복지재단의 이주 여성을 위한 요리 수업.
희정복지재단의 업무는 크게 노인복지와 다문화가정 지원이다. 노인복지는 거동이 불편하거나 몸이 안 좋은 노인 분들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돌봐 드리는 서비스다. 자녀들도 안심하고 일터에 갈 수 있다. 재단에선 영양식단에 맞춘 식사를 제공하고 치료도 병행한다. 음악에 맞춰 체조도 하고 전문강사가 미술과 음악을 가르쳐준다. 미술과 음악 교육은 치매 예방에 좋다.

다문화가정 지원 사업은 기존에 이주 여성을 돕던 일이다. 매주 토요일 한국어 수업을 하고, 한 달에 한 번 요리 강습을 한다. 이주 여성 자녀들을 위해서는 보육교사를 뽑아 동화책을 읽어준다.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와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다. 은행 업무도 교육한다. “복지사가 함께 은행에 가 통장을 만들고 고향에 돈을 부칠 수 있도록 자세히 알려줘요. 한국 사회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돕는 거예요”

또 한 달에 한 번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무료 진료소를 연다. 이 원장은 재단을 세우는 데 남편의 도움이 컸다고 말한다. “과연 제가 재단을 잘 운영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죠. 재단이라는 게 영속성이 있어야 하잖아요. 남편이 경영을 하고 있으니까 조언을 많이 해줬죠. 무엇보다 제가 마음먹은 대로 소신껏 해 보라고 격려를 많이 해줬어요.”

한 대표는 “도와준 게 별로 없는 거 같다”며 오히려 미안해했다. 그는 “아내는 어려운 사람들, 특히 노약자를 돕기 위해 의대에 진학했다”며 “그 꿈을 잘 키워 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아내를 대학교 때 만났어요. 항상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워했어요. 그 모습이 예뻐 보여 쫓아다녔죠. 의대 수업이 얼마나 힘들어요. 그 와중에도 노숙자와 결핵 환자들을 찾아다니면서 봉사활동을 하더군요.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면 한두 시간은 기다려야 했어요. 그때부터 손에 책을 들고 다니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하하하~.”

이 원장 역시 “남편을 잘 만난 것 같다”고 자랑했다. “남편은 전형적 기업가 스타일이에요.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제가 배우는 게 많죠. 애들에게 서로 가치관이 달라도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라고 자주 얘기하죠.”

부부가 유일하게 자신 없는 일이 하나 있다. 돈은 알차게 잘 쓰는데 굴릴 줄 모른다. 버는 대로 남을 위해 아낌없이 쓴 것. 금융 전문가에게 자산 상담을 받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부부는 은퇴 이후의 삶에 큰 걱정이 없었다. 돈을 많이 모아둬서가 아니다. 꿈이 소박하기 때문이다. 부부는 “돈 없으면 없는 대로 재미나게 살면 된다”고 입을 모은다.

“가끔 서로 얘기해요. 시골에 내려가 흙집 짓고 봉사하면서 사는 것도 좋겠다고요. 둘 다 검소해 생활비가 거의 안 들거든요.”

실제로 인터뷰한 날은 기온이 영하 10도 안팎으로 추운 날씨였다. 식사를 한 곳 외에는 보일러를 틀지 않았다. 부부는 아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절약하면서 산다. 이 원장은 20년 넘게 서울에서 천안까지 기차로 출퇴근한다.

두 부부의 재테크 고민은 뭘까. 은퇴 후에도 꾸준히 사회기부 활동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우선 매년 재단 운영비로 2억원이 든다. 여기에 해외 의료 사업도 하고 있다. 이 원장은 2003년부터 1년에 한두 번씩 해외 치료 사업을 다녀온다.

이주 여성과 인연을 맺은 후 그들 고향에 진료하러 간다. 특히 필리핀 바콜로드에는 조그만 진료소도 열었다. “이곳에는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영양부족으로 결핵에 잘 걸리죠. 한 명만 걸려도 전 가족이 옮습니다. 결핵 약, 기생충 약, 피부병 약, 해열제 등 기본적 의약품을 한국에서 보내 나눠주고 있어요.”

치료하면서 인연이 된 8명의 학생도 돕고 있다. 이들에게 대학 졸업 때까지 학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 원장은 안정적으로 재단 운영비와 봉사 자금만 마련되면 세계 곳곳을 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부부는 닮는다고 했나. 한 대표는 은퇴 후 사회적 기업을 도울 계획이라고 얘기했다. “현재 대부분의 사회적 기업이 영세한 편이죠. 의미는 좋은데 경영 효율성이 떨어지다 보니 활동을 제대로 못하고 있어요. 기업 경영 경험을 살려 사회적 기업을 컨설팅해주고 싶습니다.”

왼쪽부터 윤 센터장, 이 원장, 한 대표.



■ 윤태경 SC제일은행 역삼PB센터장



연 7~8% 수익 목표로 투자하라


투자 상담은 이종민 원장 중심으로 진행했다. 그는 사회공헌활동에 필요한 자금 마련에 관심이 컸다. 현재 재단 운영에만 연 2억원가량 소요된다. 지난해 8월에는 병원 신축 건물을 지으며 대출을 받았다. 병원 수익금에서 대출이자를 갚고 재단 운영비로 쓴다. 남는 돈은 해외 장학사업에 쓴다. 현재까지는 병원 운영 수익금으로 가능했다. 하지만 은퇴 이후에도 안정적으로 재단을 운영할 수 있도록 준비가 필요하다. 그동안 이 원장은 병원 진료와 봉사활동을 하느라 자산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투자 상담도 이번이 처음이다. 우선 재단 운영에 필요한 목돈을 마련해야 한다. 은퇴 이후에도 걱정 없이 재단을 운영하기 위해서다. 목표수익률을 세우는 게 첫째 할 일이다. 현재 이 원장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주식형 투자 비중이 75.4%로 높은 편이다. 나머지는 CMA에 넣어둔 상태다. 상당히 ‘공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 시간가량 투자 상담한 결과 이 원장의 투자 성향은 안정형에 가깝다. 게다가 재단 기금은 지속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게 맞다. 매년 7~8%의 투자 수익률이 나올 수 있도록 자산을 재분배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1월 14일 기준 이 원장의 포트폴리오 수익률은 -4.12%다. 코스피 지수가 1년간 20% 이상 오른 것을 감안하면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는 현재 아시아 섹터펀드, 중국 투자 펀드, 글로벌 투자 펀드 등 세 곳에 거치식으로 돈을 넣어둔 상태다.

돈을 안전하게 굴리려면 거치식보다 적립식이 낫다. 거치식은 처음에 목돈을 넣어두고 수익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유형이다. 지수 상승기에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지만 하락기에는 투자 위험이 높아진다. 적립형은 매달 꾸준히 나눠 넣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지난해 중국 증시가 올랐음에도 이 원장의 중국 펀드는 -7.8%로 수익률이 가장 낫다. 이유가 뭘까. 중국 투자 펀드라고 무조건 수익률이 좋을 수는 없다. 우선 운용하는 펀드매니저의 능력과 투자된 개별 주식 비중에 따라 펀드 수익률이 다를 수 있다. 투자자들은 자신이 투자한 펀드가 벤치마크 대비 수익률이 높은지 주의 깊게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이 원장에게는 최대한 자산을 쪼개 분산 투자하기를 권했다. 전체 자산의 채권 투자 비중을 40%로 늘렸다. 우량 회사채에 묻어두는 방식이다. 투자 수익률은 높지 않지만 위험이 낮다는 게 강점이다. 대신 주식형 상품은 기존 70%에서 55.3%로 낮췄다.

올해 유망 투자처는 한국을 비롯한 이머징 국가와 원자재다. 중국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선진국 투자자금이 이머징 마켓으로 몰리고 있어 투자 기대감이 높다. 중국과 인도의 인프라 투자가 늘어나면서 원자재 값도 고공행진한다.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어 대안으로 원자재 투자는 더 늘 것으로 보인다. 모두 1년 동안 분할 투자하는 방식이다. 나머지는 단기 금융상품인 MMF에 넣어뒀다. 전체 목표수익률은 7.2%.

이 밖에 세금을 줄여 투자 자금을 늘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병원을 운영하다 보면 많은 돈이 세금으로 빠져나간다. 세금 규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새는 돈이 있다. 예를 들어 마취약, 수술재료 등을 쓰지 못하고 폐기할 때 ‘재고 자산 감모 손실’ 항목에 포함시키면 세금을 줄일 수 있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병원 경비를 사용할 때마다 영수증을 잘 챙겨야 한다. 증빙 자료를 제대로 갖춰야만 세무상 경비로 인정받을 수 있다. 반대로 경비로 인정받지 못하면 38.5%로 세금이 매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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