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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休] 틈틈이 작품 감상하는 게 휴식

[CEO의 休] 틈틈이 작품 감상하는 게 휴식

그림 3점, 금속 조형물 3점, 사람 얼굴 모양과 오리 모양의 도자기, 달항아리 등이 공간을 빼곡히 채웠다. 장식장과 책상에는 작은 도자기와 그림이 모여 있다. 정림건축 이충노(47) 대표의 집무실이다. 이 대표가 명함을 꺼낸다. 명함은 흰색 유약 자국이 있는 주황색 사각 도기에 담겨 있다. 그는 “사소한 것이라도 남과 다른 특별한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의 집에도 크고 작은 그림과 조각품이 수십 개다. 하지만 1억원이 넘는 고가 미술품은 하나도 없다. 그는 “작품을 투자 목적으로 사지 않는다”고 했다. 봤을 때 기분이 좋고 느낌이 있는 작품을 구입한다. 너무 비싼 작품은 곁에 두고 즐기기 부담스러워 구입하지 않는다.

이 대표가 미술품을 사게 된 계기는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자신의 누나와 매형을 따라 작가의 작업실과 집을 따라갈 기회가 종종 있었다. 한번은 경기 안성에 있던 도예가 이인진의 집에 갔다. 이 대표는 이인진의 도자기를 보고 문득 자신도 저런 멋진 작품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찻주전자와 수구, 다완 같은 도자기 10 점을 샀다. 당시 돈으로 60만원을 줬다. 주머니사정이 여의치 않던 때라 큰맘 먹고 산 것이었다. 그중 일부는 현재 그의 집무실에 있다.



작가村으로 이사할 예정이 대표는 좋아하는 작가로 도예가 이헌정, 화가 배동환, 서용선, 설치미술가 안종현을 꼽았다.

모두 경기 양평에서 작업한다. 그는 양평에 자주 간다. 양평에서 일하는 작가들과 ‘놀기’ 위해서다. 그는 “한두 점 작품을 사면서 작가들과 가까워졌고 몇 번 어울리다 보니 더 친해졌다”고 말했다.

이헌정의 작업실은 이 대표와 지인들의 놀이터다. 그는 “이헌정과 내가 거기서는 요리사”라며 “고기전과 녹두전, 칠리새우볶음밥이 내 특기”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배동환의 집 앞 개울에서 고기를 구워 먹기도 한다. 돼지고기와 막걸리, 김치를 앞에 놓고 자정을 넘기기 일쑤다. 그는 팔판동의 리씨 갤러리 옥상에서 벌이는 서용선의 현대미술 강의에 빼놓지 않고 출석한다. 이 대표는 그렇게 어울리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보이면 산다.

즐기기 위해 미술품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과 즐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구매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자신이 즐기고 싶어 사기 때문에 소장한 작품을 팔지 않는다. 그는 “어떤 작품을 얼마에 팔았다는 식으로 미술품에 대한 내 안목을 자랑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어 “사실 자랑할 안목도 없다”며 껄껄 웃었다.

그는 자신이 살 집을 양평에 짓고 있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업실과 가까운 이 집은 올 8월에 완공된다.



도자기로 회사 기념품 제작그의 집무실 한쪽엔 에메랄드 색으로 칠해진 손바닥만 한 철제 조형물이 놓여 있다. 정림건축에서는 여기에 글귀를 새겨 고마운 사람에게 준다. 이 회사의 감사패다. 2009년부터 조각가 한송준이 만든 작품을 감사패로 쓰고 있다. 받는 사람은 감사한 마음과 예술작품을 함께 받는 셈이다. 회사를 방문한 손님이나 설계를 맡긴 고객에게 주는 선물도 독특하다. 도자기로 만든 연필꽂이, 달항아리 등이다. 이런 미술품은 회사 밖 사람이 정림건축을 특별하게 기억하도록 만든다.

서울 연건동에 있는 정림건축 사옥에는 수십 점의 미술품이 있다. 계단, 북카페, 사무실 등에 많은 작품을 전시해 놨다. 그는 건축이 사람이 머무르는 곳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작업이므로 미술적 요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설계를 하는 500여 명의 직원이 작품과 교감하면서 좋은 건축물을 설계하는 데 정서적 자양분으로 삼는다.

그는 “건축의 이런 예술적인 면 때문에 건축을 하는 사람 중 많은 사람은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을 돈과 연관시키는 것을 꺼린다”고 말했다. 건축가들은 열정적으로 일한 결과물을 작품으로 보기 때문에 자신의 일을 금전적으로 평가 받고, 돈을 받는 걸 어색해한다는 얘기다.

그가 2007년 컨설턴트로 일하다 연이 닿은 정림건축에 대표이사로 왔을 때 이곳도 그랬다. 받아야 할 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 대표는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전문경영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하기로 했다. 정당히 받아야 할 비용을 제때 받고 효율적인 업무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구축했다. 작업하기 좋은 업무 환경을 만들었다. 프로젝트를 열심히 유치했다. 대단하고 생색나는 일을 하기보다 기본적인 것을 실천하며 설계를 하는 직원들이 좋은 건축물을 만들 수 있도록 열심히 뒷받침한 것이다. 아울러 협력업체와의 관계를 개선했다. 협력업체에 지불해야 할 대금을 즉시 지급하도록 제도화했다. 건축업계에 고질적인 ‘밀린 대금’을 없앤 것이다.

그가 온 후 회사는 얼마만큼 좋아졌을까? 이 대표는 “건축물은 하나의 작품이기 때문에 건축설계회사의 경영성과는 일반 기업처럼 수치로 따지기 어렵다”고 자신을 낮췄다. 하지만 현재 정림건축의 매출은 그가 오기 전보다 40% 성장했다.

이런 경영지원에 힘입어 정림건축은 그가 취임한 후 3년 동안 30여 개의 건축상을 받았다. 경영효율성에 눌려 건축의 작품성이 훼손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씻었다.

쉴 때는 짧은 시간이라도 일을 완전히 놓고 쉬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대표는 일하는 틈틈이 사무실에 놓여 있는 작품을 보면서 짧은 시간이지만 완전히 쉰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의미에서 미술품을 가까이 두고 보는 것이 다른 경영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표이사로서 앞으로 할 두 가지 과제를 밝혔다. 하나는 주주와 임직원이 이익을 공정하게 나누는 성과배분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건강한 경영승계 시스템을 실천하는 것이다.

정수정 기자 palindro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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