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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조전문기업 HNC] ‘예술경영’은 길고 위기는 짧다

[공조전문기업 HNC] ‘예술경영’은 길고 위기는 짧다

HNC 직원들이 파주 연구소에 설치된 클린룸 설비를 살펴보고 있다.



한 중소기업이 펼치는 실험적 경영의 효과는 놀라웠다. 공조설비 전문기업 HNC는 연구소를 갤러리로 꾸미고 직원들에게 문화와 독서 활동을 강조한다.

늘 예술을 접해온 직원들은 회사가 위기에 빠지자 혁신적 제품을 쏟아냈다. 이 회사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HNC의 혁신 스토리를 전한다. 아울러 이 회사 임재영 사장에게서 ‘예술경영’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에 위치한 중소기업 HNC의 ‘TDR연구센터’. 3층으로 된 이 건물은 갤러리 같다. 입구에는 가수이자 화가인 조영남씨의 대형 태극기 작품이 걸려 있다. 1~3층 벽면은 온통 미술품이다. 샤갈와 피카소, 백남준의 작품도 있다. 내부 인테리어도 돋보였다. 화려한 나선형의 유리 계단과 고급 카페를 연상케 하는 티 테이블, 조각상, 바닥재.

입소문이 나면서 이곳은 드라마와 TV CF 광고의 배경으로 쓰였다(탤런트 이수경씨가 청바지를 입고 등장하는 모 시리얼 광고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연구소 밖 한쪽에서는 알래스카 말라뮤트 두 마리가 한가로이 놀고 있었다.

뭘 하는 회사일까? HNC는 건물이나 공장의 공기 흐름을 제어하고 관리하는 공조시설 전문기업이다. 반도체 공장 등에서 미세한 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설치하는 클린룸 장비도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이다. 직원은 85명. 전형적인 중소기업이다.



늘 예술을 접한다1998년 설립된 HNC의 임재영(49) 사장이 파주에 이런 특이한 공간을 만든 것은 2005년이다(본사는 군포에 있다). 내부 반대가 심했다. 어떤 직원은 “사장이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사표를 내고 나갔다. 그럴 만도 했다. 이 건물을 짓는 데 들어간 돈은 45억원. 당시 회사 매출은 200억원대였다. 누가 봐도 이상하고 무모한 결정처럼 보였다. 하지만 임 사장은 “이 연구소가 HNC의 보이지 않는 경쟁력이 될 것”이라며 임직원을 설득했다. 연구소 이름인 TDR센터는 트레이닝, 디자인, 리서치의 앞글자를 땄다. 연구소의 또 다른 이름은 ‘이룸 갤러리’다.

임 사장은 “늘 예술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예술적 감수성이 창의와 혁신으로 이어지고 새로운 기업문화를 만들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고 말했다. 임재영 사장이 말하는 ‘예술 경영’은 그렇게 시작됐다. 2007~08년에는 미국 뉴욕에서 ‘아트페어’를 주최했다. 국내 신인작가를 후원하고 작품을 미국에서 팔 수 있도록 돕는 행사였다. 임 사장은 이 행사에 연구, 디자인, 생산부서 팀장급 20여 명을 데려갔다. 이 역시 반대가 심했다. ‘왜 그래야 하는데?’가 이유였다.

HNC는 주로 공장에서 시공을 하고 산업용 제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이다. 임 사장의 농담을 빌리면 “노가다 계통”이다. 그런데 왜 ‘예술 경영’이었을까? 그는 “예술 경영을 통해 궁극적으로 추구한 것은 조직이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 굴러가고 혁신을 해나가는 완전 엔진, 다시 말해 완벽한 조직”이라고 말했다. 연구소에 걸린 그림들처럼 알 수 없는 말이다. 직원들도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회사, 직원들 스스로 그 답을 찾고 보여줬다.

HNC의 지난해 매출은 660억원.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이다. 이 회사 매출은 2000년대 중반 이후 200억~300억원대였다. 큰 위기도 있었다. 2009년 매출이 100억원대로 뚝 떨어졌다.

매출 비중의 80%를 차지하던 모 대기업 건설사와의 하청 관계가 끊어지면서다. 비상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때를 전후로 임 사장이 그렇게 강조하던 ‘보이지 않는 경쟁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혁신적인 제품을 쏟아냈다. 신성장 엔진으로 삼았던 클린룸 장비 분야에서 기존 경쟁 제품과 차원이 다른 ‘작품’이 속속 나온 것이다(그림 비교 참조). 클린룸 입구에 설치하는 ‘에어 샤워(작업장에 유입될 수 있는 이물질을 강력한 바람과 집진으로 차단하는 장치)’의 디자인은 한눈에 봐도 기존 제품과 달랐다. 작업장에 유입되는 오염원을 최소화하는 장비인 ‘패스 박스’나 오염된 공기를 천장 밖으로 빼내는 ‘헤파 필터’ 역시 전에 볼 수 없는 디자인을 채택했다.



공조설비·클린룸 분야 강자로 등극디자인뿐 아니다. 소재도 달리했다. 제품사업부 개발책임자인 김용원 이사는 “헤파 필터의 경우 기존의 철판 대신 신소재를 적용해 20㎏ 이상 경량화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동시에 기능은 극대화하고 사용자가 가장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아이디어가 더해졌다. 가격은 확 낮췄다. HNC의 판매법인 계열사인 IZU(이주)의 김국진 사장은 “소재와 가격, 디자인 등 세 마리 토끼를 잡아 차별화에 성공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 제품은 ‘VUUM(붐)’이라는 브랜드로 시장에 선보였다. ‘VUUM(www.vuum.co.kr)’은 이 회사의 클린룸 장비 통합 브랜드로 사내 공모를 통해 결정됐다. 관련 업계에서 통합브랜드를 만든 것은 이 회사가 처음이었다. ‘뭔가 다른’ HNC의 클린룸 장비를 보고 고객들이 이 회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멜파스, SKC솔믹스, 테크노세미켐 등 첨단 제품을 다루는 기업에서 ‘VUUM’ 제품뿐 아니라 공조설비 의뢰를 맡겼다. 대기업 건설사 한 곳에 의존하던 영업팀은 거래처를 넓혀갔다. 임 사장은 “회사의 잠재력이 폭발하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VUUM’ 제품 자체가 잘 팔린 것도 아니다. 임 사장은 “아직까지 붐 제품 매출은 얼마 되지 않지만 혁신 기술과 창의적인 디자인을 보고 고객들이 공조설비 시공을 맡기면서 시너지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정도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 정도면 믿을 수 있다고 고객이 판단한 것 같다”고 했다.

이 회사는 출발부터 특이했다. 회사 이름 HNC는 ‘하모니앤 커뮤니케이션’, 즉 조화와 소통을 뜻한다. ‘~엔지니어링’ ‘~공조’로 끝나는 동종 회사들과 달랐다. 군포시 외곽 철공소에서 시작한 회사는 설립 첫해부터 신문에 ‘신입사원 모집’ 광고를 냈다.

드라마와 CF 배경으로 TV에 등장한 HNC 파주 연구센터.



말단 직원 “회사의 비전을 이해한다”광고를 보고 찾아온 청년들 중 절반은 허름한 철공소 입구에서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첫해 공채 1기 세 명을 뽑았다. 임 사장은 “이들이 지난해 매출 급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한 우리 회사 중역들”이라고 말했다.

초창기부터 ‘독서 경영’도 시작했다. 직원들에게 책을 사주고 무조건 독후감을 쓰게 했다. 분기마다 독서토론회를 열고 부서별 워크숍을 했다. 어떤 직원은 독후감 쓰는 게 싫다며 회사를 나갔다.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한 직원은 “모든 임직원이 예외 없이 1년에 10권 정도 책을 읽고 토론한다”고 말했다. 임 사장은 “입찰을 위해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우리 직원들이 압도적”이라는 말로 독서경영 효과를 자랑했다.

회사 인트라넷에 마련된 ‘조소방(조소와 소통의 방)’에서는 임직원이 시도 때도 없이 의견을 나눈다. 5월이면 문화·예술인을 회사로 초청해 ‘조소 축제’를 연다. 재작년에는 조영남씨가 와 피아노를 치며 노래 했고, 행복전도사로 불리던 방송인 고 최윤희씨도 축제를 찾았다. 밤이면 화려한 조명이 켜지는 파주 연구소 옥상에서는 수시로 회식을 겸한 음악회가 열린다.

심지어 HNC는 회사의 청사진도 미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연구센터 1층 로비에 가로 4m, 세로 3m의 대형 그림 위를 덮은 투명 아크릴판에 이 회사의 미래가 걸려 있다. ‘HNC 영토 확장 맵’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기존 공조 엔지니어링 비즈니스에서 산업용·가정용 청정 장비를 개발하는 전문 제조업체로 이미지를 확보한다. 이것이 1단계 목표로 현재진행형이다. 이 과정에서 VUUM 브랜드와 신개념의 흄 집진기(박스기사 참조)가 개발됐다. 2단계는 소방·병원 감염방지 시스템과 바이오 실험실, 동식물 관련시설, 엔터테인먼트 시설용 청정 시스템 개발이다. 현재 일부 연구가 완료됐다. 3단계는 산후조리원, 공부방, 노인복지시설 등 클린시스템 시장 공략이다. 4단계는 생활환경 오염과 공기 질을 관리하는 토털 프랜차이즈 사업이다. B2B 회사에서 B2C 회사로 변신한다는 목표가 분명히 나타난다. 관련 시장에 이미 진출해 있는 대기업과의 경쟁도 염두에 둔 그림이다.

임재용 사장은 “원래 공기 장사꾼으로 시작했으니 이 분야에서 정면승부를 걸겠다”고 말했다. 혹시 그와 경영진만의 ‘공상’은 아닐까? 한 직원을 붙잡고 회사의 비전에 대해 물었다. 말단 사원인 그의 말은 이랬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했어요. 무슨 말인지 전혀 몰랐죠. 하지만 그림을 보듯 자주 보고 우리 회사가 그동안 개발했고 개발 중인 제품을 생각하니 회사가 나아갈 길이 보이더라고요. 이제는 확실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한 중소기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실험적인 경영은 그렇게 진행 중이다.



■ 잇따르는 발상의 전환



파격적 디자인 ‘흄 집진기’ 개발


조선소나 자동차·철강 공장에서 용접할 때는 ‘흄(Fume)’이라는 물질이 발생한다. 흄은 금속이 증발하거나 산화하면서 발생하는 미세 입자다. 사람이 흡입하면 폐가 상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흄 집진기다.

HNC는 최근 신개념의 흄 집진기 개발에 성공했다. 중소기업청이 주관하는 구매조건부 정부지원 과제로 개발된 이 제품은 6월부터 양산을 시작해 대우조선해양에 공급될 예정이다. 구매조건부 정부지원 과제는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등 수요처에서 구매의사를 밝히고 우수 중소기업이 신제품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HNC의 흄 집진기는 디자인부터 파격적이다. 회사 관계자는 “용접 흄과 분진을 효과적으로 빨아들이는 기능은 물론 이동성과 휴대성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먼저 가벼운 소재를 사용해 무게를 줄였다. 사용 방식은 현장에서 초보자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다양한 공간에 맞춰 세우거나 눕혀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멜빵까지 부착해 쉽게 들고 다닐 수 있도록 했다. 지금까지 이런 제품은 없었다. 발상의 전환이다. 회사 측은 “기능에만 충실하던 기존 산업용 제품과 달리 기능과 성능, 디자인을 모두 고려한 혁신적인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이 제품을 개발하면서 HNC가 중점을 둔 것은 ‘현장의 목소리’였다. 회사 측은 “끊임없이 현장을 방문하고 잠재 고객과의 소통을 통해 고객이 필요한 부분을 제품에 반영했다”며 “이를 통해 제품 성능은 물론 디자인 곳곳에서 사용자를 배려한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고 밝혔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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