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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대신 헤지펀드에 관심 집중

랩 대신 헤지펀드에 관심 집중

2009년에 이어 2010년에도 국내 증시가 활황이었다. 외국인과 기관만 돈을 벌었다는 푸념도 나오지만 어쨌든 투자자의 수익률은 꽤 높아졌다. 또 다양한 주식 투자 상품이 각광 받았다. 그 가운데 최고봉은 ‘랩 어카운트’였다. 펀드에서 빠져나온 돈이 랩 어카운트로 몰린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왔다.

발 빠른 강남 부자들은 요즘 무엇에 관심이 많을까? 이들은 누구보다 먼저 포스트 랩 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10억원가량의 투자 자금으로 지난해 가입한 대형 투자자문사의 랩 어카운트에서 30%가 넘는 수익을 올린 중소기업 오너 A씨를 보자. 그는 올 들어 랩 어카운트를 모두 해지해 달라고 담당 PB(프라이빗 뱅커)에게 요청했다.



요동치는 시장 움직임에 골치 아파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신경이 쓰여 견딜 수 없으니 이제 그만’이라는 얘기였다. 1년에 한두 번쯤 찾아오는 위기나 변화는 어느 정도 감내할 만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핵폭탄급 변수가 너무 많았다. 북한 변수, 유럽 변수, 중국 변수, 중동 변수, 일본 변수 등 현재 거론되는 변수만으로도 충분히 머리가 아프다는 것이다.

실제 이런 변수 때문에 각국 주식시장, 특히 국내 증시가 혼조세를 보이고 있다. 연말 연초에는 장밋빛 전망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증시 전망이나 기업 분석 리포트에서 힘이 빠진 모습을 감지할 수 있다. 중국은 물가를 억제하기 위해 뭐든 할 수 있다는 듯 강력한 긴축정책을 펴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경기 회복세는 더디기 한량없다. 여기에 중동의 대혼란, 일본의 대지진 등으로 눈앞에 안개만 가득하다.

올 들어 증시는 상승할 때나 하락할 때나 하루에 1% 넘는 폭으로 요동 칠 때가 많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정도다. A씨는 “솔직히 뉴스 하나에 하루에도 몇 천만원이 왔다 갔다 하니 신경 쓰여 일을 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이제는 가슴 졸이는 투자가 아니라 믿고 맡겨놓곤 잊어버릴 수 있는 여유 있는 투자를 원한다. 강남의 거액 자산가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불확실성이다.

이렇게 방향성을 찾기 어려울 때 눈여겨볼 만한 대안이 바로 헤지펀드다. 요즘 SBS 인기 드라마 ‘마이더스’에 나오는 유인혜(김희애 분)가 헤지펀드 운용자다. 드라마 소재로 쓰일 만큼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왔지만 지금까진 헤지펀드를 색안경 끼고 보는 사람이 많았다.

몇몇 거액 자산가의 매머드급 자금으로 위험을 감수하면서 고수익을 노리는 투기성 자본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글로벌 금융시장을 교란하고, 투기성 짙은 비도덕적 자금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건 극히 일부의 사례일 뿐 실제 헤지펀드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헤지펀드의 가장 큰 특징은 투기가 아닌 절대수익 추구다. ‘헤지(hedge)’란 ‘투자자가 보유하려는 자산의 가격이 변함에 따라 발생하는 위험(특히 가격변동 위험)을 제거하려는 시도’라고 정의할 수 있다. 헤지펀드는 주식 같은 투자 자산의 가격 변동성을 제거하고 주식시장 시황이나 경제환경의 변화에 관계없이 꾸준한 수익을 거두고자 하는 펀드다. 특히 현재 국내에서 도입하고 있는 헤지펀드는 대부분 이런 절대수익을 추구하는 안정적 상품이 주류다.



금융당국에서 헤지펀드 규제 풀어헤지펀드는 어떤 방법으로 절대수익을 추구하는 것일까? 헤지펀드는 크게 CTA(Commodity Trading Advisors) 전략, 이벤트 드리븐 전략, 롱쇼트 전략을 가장 많이 활용한다. CTA 전략이란 세계의 모든 선물시장에 투자해 시장과 경기흐름 등 방향성과 관계없이 수익을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상승기뿐만 아니라 하락기에도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에 가장 헤지펀드다운 전략이다. 펀드매니저가 아닌 컴퓨터 시스템으로 24시간 내내 세계의 모든 선물시장의 트렌드를 포착해 거래한다. 자산 75조원이 넘는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 그룹인 영국의 맨(MAN)그룹이 주로 이 전략을 쓴다.

이벤트 드리븐 전략이란 시장에서 발생하는 특정 상황을 활용해 특정 국가나 개별 종목에 대한 투자 기회를 포착해 수익을 올리려는 전략이다. CTA 전략과 달리 펀드매니저의 관점과 판단이 매우 큰 역할을 한다. 리서치 능력과 시장·종목에 대한 분석 능력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진다. 세계 1위의 이벤트 드리븐 전략 운용사인 미국의 폴슨펀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측하고 모기지 관련 파생상품에 투자해 2007년 97%, 2008년 24%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롱쇼트 전략이란 사고팔기를 동시에 구사해 수익을 추구한다. 주식시장에서 롱(long)은 매수를 뜻하며 쇼트(short)는 매도를 뜻한다. 이를 동시에 구사해 무위험 차익을 노리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공매도 전략을 많이 활용한다.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을 빌려 미리 팔고, 가격이 내린 후 다시 주식을 싼값에 사 갚아 차익을 남기는 방식이다. 공매도는 주가가 떨어져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기법이다.

헤지펀드의 투자처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주식, 채권, 상품(원자재), 환율이다. 이들 투자처를 대상으로 위의 세 가지 전략을 활용해 수익을 내려고 한다.

A씨는 사모펀드에 가입하면서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헤지펀드가 없다는 사실에 의아해했다. 사실 국내에 헤지펀드가 없는 건 아니다. 다만 ‘헤지펀드 운용자산의 50% 이상을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규제가 있기 때문에 개인이 직접 투자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그러나 최근 금융당국에서 이런 규제를 풀어 레버리지 비율 상향 조정, 공매도 허용, 운용자산 규제 완화 등이 가능할 전망이다. 국내에도 헤지펀드가 본격 등장하는 것이다. 현재 랩을 운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투자자문사도 궁극적으로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것이 목표다. 강남의 거액 자산가들이 외국의 펀드를 찾지 않고 국내에서도 연 10~12%의 절대수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에 가입할 수 있는 날이 곧 다가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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