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개인은 ELW로 잃을 수밖에…

개인은 ELW로 잃을 수밖에…

검찰이 ELW(주식워런트증권) 불공정 거래 의혹 수사에 나섰다.

최근 ELW 스캘퍼(초단타 매매자)와 ELW 물량을 공급하는 증권사의 LP(유동성 공급자) 간 거래에 문제가 있었고 그에 따라 개인투자자가 손해를 봤다는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서다. 검찰은 3월 23~24일 이틀간 우리·삼성·현대·신한 등 10곳의 대형 증권사를 압수수색했다. 4월 10일에는 현대증권 직원을 구속했다.

검찰이 주목하는 대목은 두 가지다. 증권사가 스캘퍼에게 위탁매매 수수료를 깎아준 점과 일반 투자자보다 빠른 속도로 주문할 수 있도록 전용회선을 설치해주는 등의 편의를 봐줬다는 것이다.

ELW란 주식·주가지수 등의 기초 자산을 사전에 정한 미래의 시점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나타내는 증권이다. 주가가 떨어져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국내 ELW 시장은 2005년 12월 개설된 이후 고수익을 노리는 투자자가 몰리면서 4년 만에 홍콩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로 커졌다. 개설 당시 210억원에 불과했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2009년엔 8523억원으로 늘었다. 같은 해 7월 6일에는 1조원을 돌파했다. 그 후 1조원대의 거래대금을 유지하고 있다.

ELW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곧잘 불공정 거래 의혹이 제기됐다. 예컨대 이번처럼 LP와 스캘퍼의 유착 의혹 등이다. LP인 증권사와 스캘퍼는 공생관계다. 위탁매매 수수료로 수익을 올려야 하는 증권사는 스캘퍼의 도움이 필요하다. 스캘퍼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ELW를 거래한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VIP 고객으로 대접할 만하다. 그래서 위탁매매 수수료를 깎아주거나 주문 속도가 빠른 전용회선을 설치해준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LP가 첫 거래를 시작하면 스캘퍼가 축하한다는 의미로 100억원 정도를 사고판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스캘퍼는 매우 중요한 고객”이라고 말했다.



개인투자자만 손실 기록스캘퍼는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이들이 하루에 거래하는 자금은 수억원에서 수백억원대에 이른다. 매수와 매도 시간은 불과 1~3분 사이다. 심지어 1분 안에 되파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LP의 매도·매수 가격(호가)을 미리 파악해 치고 빠지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시스템 트레이딩 등 다양한 기법을 동원해 LP의 예상 호가를 앞서 계산해 차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캘퍼로 추정되는 개인 계좌 비율은 ELW 시장의 0.08%에 불과하지만 전체 거래대금의 34%를 차지한다. 이들은 투자 전문가, 자금 담당 등 팀 단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개인투자자는 거래가 많은 ELW 종목을 거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들의 먹잇감이 되기 일쑤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ELW 시장에서 개인은 2006년 1467억원, 2007년 369억원, 2008년 3881억원, 2009년 5186억원 등 4년간 1조903억원의 손실을 봤다. 반면 LP인 증권사는 2006년 323억원, 2008년 386억원의 이익을 남겼고, 스캘퍼는 2009년에만 1043억원을 벌었다.

증권사에서는 유력 스캘퍼 한 명만 유치해도 상당한 위탁매매 수수료를 거둬들일 수 있다. 이번에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증권사가 스캘퍼에게 특혜를 베푼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가 스캘퍼에게 특혜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지만 거기서 뭐가 불공정 거래였는지 입증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증권사가 스캘퍼에게 주문 속도가 빠른 전용회선을 제공한 게 과연 불공정 거래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금융업계에서 고액 자산가에게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보편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대상이 스캘퍼라는 이유로 의혹을 제기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스캘퍼는 증권사에서 LP 역할을 했거나, 증권사 HTS(홈트레이딩시스템) 개발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사람 등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LP가 공급하는 물량을 기계적으로, 재빨리 가로챌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외 증권사 LP와 개인이 이런 능력을 갖춘 스캘퍼를 이기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증권사 소속 LP는 까다로운 규정에 따라 운용할 수밖에 없는 반면 스캘퍼는 이들의 허점을 파고들어 물량을 채가기 때문이다.



투기 목적의 ELW 거래는 삼가야스캘퍼 때문에 개인이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주장도 오해라는 견해가 있다. 개인이 ELW를 제대로 고르지 못해 겪는 한계라는 것이다. 스캘퍼가 잦은 매매로 투자가격을 높여주면 뒤늦게 따라서 매매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개인들은 ELW의 구조와 기초 자산에 대한 분석과 예측능력 없이 무작정 고수익을 노리는 행태를 보이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증권 전문가들은 그래서 ELW를 투기적인 목적으로 거래해선 위험하다고 조언한다. 레버리지가 큰 파생상품이기 때문에 분명한 목적을 갖고 ELW를 사고팔지 않으면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초 자산의 가격이 정해진 행사 가격에 미치지 못하는 ELW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게 상책이다. 또 거래가 활발한 종목도 거품이 끼어 있을 수 있으니 증권사가 제시하는 평균 가격보다 높다면 거래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용어설명



◇ ELW(주식워런트증권)= ELW는 주식 등 기초 자산에 연계된 증권으로 파생상품이다. 개별 주식이나 주가지수처럼 기초 자산을 미래 특정 시점(만기일)에 미리 정해진 가격(행사가격)으로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나타내는 유가증권이다.



◇ 스캘퍼(scalper)= 분·초 단위로 시세 흐름을 포착해 하루에 수십 번 또는 수백 번씩 주식 거래를 하며 매매차익을 얻는 투자자를 말한다.



◇ LP(유동성 공급자)= 유동성이 일정 수준에 미달하는 종목에 대해 증권사(발행사)가 지속적으로 매도·매수 호가를 제시하며 거래에 참여해 가격 형성을 유도한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G20 일부 회원국 “억만장자 3000명에 부유세 걷어 불평등 해소하자”

2이재명-조국 “수시로 대화하자…공동법안·정책 추진”

3 미국 1분기 GDP 경제성장률 1.6%…예상치 하회

4연세대·고려대 의대 교수들, 5월 말까지 주 1회 휴진한다

5경찰, ‘이선균 수사정보 유출’ 관련 인천지검 압수수색

6독일 Z세대 3명 중 1명 “유대인에 역사적 책임 동의 못한다”

7미국, 마이크론에 반도체 보조금 8.4조원…삼성전자와 규모 비슷

8이재명, 조국에 “정국상황 교감할 게 있어” 러브콜…오늘 비공개 만찬

9크라우드웍스, AI 언어 모델 사업 ‘본격화’…웍스원 개발

실시간 뉴스

1G20 일부 회원국 “억만장자 3000명에 부유세 걷어 불평등 해소하자”

2이재명-조국 “수시로 대화하자…공동법안·정책 추진”

3 미국 1분기 GDP 경제성장률 1.6%…예상치 하회

4연세대·고려대 의대 교수들, 5월 말까지 주 1회 휴진한다

5경찰, ‘이선균 수사정보 유출’ 관련 인천지검 압수수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