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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목숨 걸 각오 없으면 선물투자 말라

interview>> 목숨 걸 각오 없으면 선물투자 말라

주식시장에선 강세장을 황소에 비유한다. 황소가 적을 공격할 때 뿔을 사용해 상대를 위쪽으로 들어올리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약세장은 곰으로 표현한다. 곰은 공격할 때 상대를 잡아 땅에 내리꽂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위쪽도 아래쪽도 아니고 시장이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관망하는 상태는 사슴장세라 부른다. 길을 지나던 사슴이 차량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헤드라이트 불빛을 보면 마치 박제된 것처럼 그 자리에 멈춰 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도로 위 사슴’은 주식을 거래하는 투자자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결정 불능의 상태를 의미한다.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에 정신을 빼앗겨 그 자리에 얼어붙은 사슴처럼 과도한 자신감이나 손실에 대한 집착 때문에 즉각적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손해를 보는 경우를 말한다.

선물시장의 재야 고수인 성필규(40·필명 알바트로스) 대표에게도 어느 날 그 사슴이 찾아왔다. 2004년 5월 12일 월요일. 주말에 단행된 중국의 기습적 금리인상으로 주가는 개장하자마자 곤두박질쳤다. 지수선물을 보유하고 있었던 그는 평상시 같으면 당연히 손절매(주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매도해 더 큰 손실을 방지하는 매매전략)를 했을 것이다. 손절매를 통해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은 선물 트레이더에게 그야말로 기본 중에 기본인 매매기법.

주가가 하락하자 그는 선물을 더 사들였다. 이른바 물타기를 한 것이다(물타기란 소를 내다 팔기 전에 물을 먹여 몸무게를 더 나가게 한 것에서 유래한 말로 주식을 추가 매입해 매수단가를 낮추는 행위를 말한다). 그날 주식시장이 문을 닫은 후 매매 결과는 12억8000만원 손실. 그동안 모았던 돈을 다 날리고 하루 만에 빈털터리가 됐다.



그날 왜 손절매를 안 했나.“당시는 선물매매로 승승장구하던 시기였다. 주간 기준으로 26주, 그러니까 6개월간 단 한번도 손실을 내지 않고 연속 수익 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5억원을 넣어둔 계좌에서 매주 2000만원씩 수익이 발생했다. 자만심이 생겼고 시장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칙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마치 도로 위 사슴이 순간 판단력을 잃어버린 것처럼.”



그래서 시스템 트레이딩을 시작하게 됐나.“아무리 원칙을 세워놓아도 사람은 흔들릴 때가 있고 고집을 피울 때가 있다. 그리고 결과는 대부분 좋지 않게 나타난다. 그래서 감정이 아니라 입력된 프로그램에 의해 컴퓨터가 기계적으로 매매하도록 한 것이 시스템 트레이딩이다.”



컴퓨터도 결국 사람이 운영하는 것 아닌가.“물론 컴퓨터에 알아서 사고팔라고 맡기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매매를 통해 얻은 실전기법과 경험, 뉴스에 대한 시장반응, 투자자의 행태 등 다양한 가격·비가격 데이터를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컴퓨터는 주어진 명령에 따라 기계적으로 냉혹하게 매매할 뿐이다.”



지속적으로 수익이 나는가.“성적은 좋다. 주가지수를 이기는 정도의 일반펀드보다는 지속적으로 높은 수익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시스템 트레이딩이라고 만능은 아니다. 하나의 투자방식일 뿐이다.”

대학생 때 투자를 시작해 졸업 후 전업투자자의 길로 들어선 성필규 대표는 알바트로스라는 이름으로 재야에서 명성을 얻었다. 투자에 관한 글을 써서 유명해졌다기보다 실전 선물매매를 통해 부자 반열에 올랐다. 고난 없는 영광이 없듯이 몇 차례 실패의 경험이 그를 담금질해 진정한 승부사로 만들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왜 어렵다는 선물·옵션을 택했나.“주식의 경우 상승장에서 수익을 낼 수 있지만 하락장에서는 손을 쓸 수 없다. 그래서 지수가 상승하든 하락하든 방향만 잘 예측하면 수익을 낼 수 있는 선물시장에 뛰어들었다. 또 현물(주식)은 투자기업을 선정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러나 선물이나 옵션은 상품이 단순하다. 매매만 잘하면 수익을 낼 수 있다.”



선물투자에 대한 시각이 좋지 않다.“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패가망신한다고들 말한다. 도박에 가깝다고도 한다. 주식과 달리 선물투자는 누군가 이익을 보면 다른 누군가는 손실을 보는 이른바 제로섬 게임의 구조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선물·옵션 투자는 도박이 아니다. 통계와 확률의 영역일 뿐이다.”



그럼 개인투자자도 선물투자를 할 만한가.“그렇지 않다. 투자는 전쟁이다. 선물투자는 더욱 어렵고 치열하다. 과거 전쟁에서 패배하면 가진 것을 빼앗기고 목숨까지 잃었다. 가족까지 적군의 노예로 끌려가는 것이 패자의 현실이다. 개인투자자는 모니터 너머에 있는 기관투자가 등 고수들의 실력을 모르기 때문에 달려드는 것이다. 목숨을 걸겠다는 심정이 아니면 선물투자는 말리고 싶다.”

지난해 8월 그는 선물·옵션을 컴퓨터로 매매하는 파생전문 투자자문사인 PK투자자문을 설립했다. 재야 고수에서 왜 제도권으로 들어왔는지를 묻자 뜬금없이 “박찬호가 일본 오릭스 구단으로 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라고 되묻는다.

“박찬호가 일본행을 결정한 것이 돈이 필요해서일까요? 아니겠죠. 제 생각으로는 야구가 너무 좋아서, 혹은 새로운 도전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금융업계 최초의 파생 시스템 트레이딩으로 지속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알바트로스(외래어 맞춤법으로는 ‘앨버트로스’가 맞는 말)는 골프 매니어에게는 한 홀에서 기준 타수보다 3타를 적게 쳐야 하는 ‘이룰 수 없는 꿈’을 의미한다. 성필규 대표의 필명 알바트로스는 날개가 자신의 몸통 길이의 두 배쯤 되는, 해양에 서식하는 알바트로스과에 속하는 새를 말한다. 알바트로스는 모든 조류 가운데 가장 활공을 잘한다.

바람 부는 날 길고 좁은 날개로 날갯짓을 하지 않고서도 몇 시간씩 날 수 있다. 한국 선물·옵션시장 최고의 승부사 가운데 한 명인 알바트로스. 그는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며 황소로도 돈을 벌고 곰으로도 돈을 번다. 그러나 도로 한가운데서 헤드라이트 불빛에 눈이 먼 사슴은 결코 다시 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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