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미국으로 이민 가서 자수성가한 김모(74)씨는 2년 전 한국에 귀국해 실버타운에 거주하고 있다. 노인을 위한 문화시설과 간병 서비스가 매우 발달한 미국에서 아직 노인 편의시설이 열악한 한국으로 이사한 이유를 물었다. 놀랍게도 주변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어가 서툴고 성장한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어디를 가더라도 한국 노인이 미국 노인과 잘 어울리기는 힘들었다고 한다. 한국에 왔더니 비록 생활은 불편한 점이 많지만 친구가 많아 행복하다고 했다.

은퇴생활의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는 가족, 건강, 취미, 소득, 사회관계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요소를 고루 갖추었을 때 행복한 은퇴설계를 완성할 수 있다. 은퇴자의 인간관계란 자신이 누군가와 연결돼 있다는 걸 뜻한다. 혼자가 아니라 일, 취미, 가족관계 등에서 다양한 사람과 생활하는 건 소득이 많은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과 연결될수록, 다양한 연령대와 유대를 맺을수록 더욱 행복할 수 있다.

은퇴설계의 하나로 인간관계에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가족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많은 베이비 부머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지만 정작 은퇴 후에는 가족으로부터, 친구로부터 소외되는 경향이 있다. 은퇴 이후에는 가족 중심으로 생활이 변해간다. 특히 은퇴 후 가장 오랜 시간 교류해야 하는 상대는 배우자이므로 부부관계를 잘 유지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서로 좀 더 배려하고 대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녀에게도 권위적인 자세를 버리고 정신적인 멘토 역할과 대화상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족에 대한 잔소리는 사랑을 갉아먹는다는 격언을 잊지 말고 대화하는 방법에도 신경 써야 한다.

은퇴생활의 여러 단계를 염두에 두고 인간관계를 유지할 필요도 있다. 은퇴생활은 일반적으로 활동기, 회고기, 간병기, 남편 사별 후 부인 홀로 생활기로 구분한다. 활동기에는 워낙 다양하게 취미생활과 경제활동을 하다 보니 인간관계에 대해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회고기와 간병기에 들어가면 인간관계는 소원해지게 마련이다. 이 시기에 친구가 지나치게 줄어들거나, 사회와 교류관계가 끊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젊고 건강할 때 주변 사람에게 많이 베풀어야 한다. 서로 소통하고 함께 도전하며 웃을 수 있는 사람을 많이 둬야 한다. 선진국의 경우 정년 후에 사회봉사와 취미생활을 하면서 약간의 용돈도 버는 은퇴자가 많다. 현재 내가 속한 곳에서 옆 사람, 내 이웃, 내 가족 등 주변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결국은 은퇴 이후에 돌아온다.

소셜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면 새로운 시대의 사회교류를 할 수 있다. 노년생활을 하다 보면 점점 행동이 느려지면서 결국 집안에서나 실버타운에서 외로운 생활을 맞이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은퇴자들이 온라인의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해 사회와 연결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블로그나 페이스북 등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하버드 대학 심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웩슬러는 ‘관계의 심리학’에서 중년 이후에 최악의 인간관계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래서 가능성과 잠재력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기보다는 기대를 낮춘 다음 주위 사람과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면 최상의 시기가 될 수 있다고 처방한다. 나이가 들수록 화를 덜 내고 섭섭한 마음이 생겨도 더 참아야 한다. 사회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자신의 심리를 잘 다스려야 행복한 노후를 맞이할 수 있다. 은퇴준비에는 인간관계와 같은 비재무적인 준비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부터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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