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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팔아라` vs `사라` 누구 말을 믿을까

[Trend] `팔아라` vs `사라` 누구 말을 믿을까

국내 증권사와 외국계 증권사가 같은 종목을 두고 정반대의 의견을 내놓아 투자자를 헷갈리게 만들 때가 종종 있다.

올 1분기 깜짝 실적을 낸 고려아연을 두고 외국계 증권사인 골드먼삭스와 국내 증권사가 정반대의 전망을 내놓아 투자자를 헷갈리게 했다. 고려아연이 실적 발표를 한 다음날인 4월 26일 삼성, 현대, 교보, 우리투자, 대우, 대신, 동양 등 국내 증권사 7곳은 고려아연에 대해 일제히 투자의견 ‘매수’를 제시했다. 목표주가도 53만5000~6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기존에 제시했던 목표주가에서 최고 50%가량 높인 증권사도 있었다.

골드먼삭스는 정반대의 견해를 보였다. 보고서를 통해 “은 가격 상승에 비해 영업이익 증가가 제한적”이라며 투자의견 ‘매도’와 목표주가 25만7000원을 제시했다. 이는 국내 증권사가 밝힌 목표주가의 절반도 되지 않는 것은 물론 현재 주가(4월 25일 종가 기준 48만7000원)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골드먼삭스의 견해가 투자자에게 먹혔는지 고려아연은 실적 개선에도 4월 26~27일 이틀간 주가가 12% 넘게 떨어졌다.



국내외 증권사 승패는 엎치락뒤치락국내 증권사와 외국계 증권사가 같은 종목을 놓고 극명한 시각차를 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근 코스피 주도주로서 상승 가도를 달리는 기아차의 경우 올해 초만 해도 국내외 증권사 평가가 엇갈렸다. 골드먼삭스는 2월 초 기아차의 투자의견을 ‘매수’가 아닌 ‘중립’으로, 목표주가를 5만4000원으로 제시했다. 당시 국내 21개 증권사의 평균 목표주가 7만2200원을 한참 밑도는 수준이었다. 기아차의 지난해 4분기 실적이 기대 이하이고 글로벌 시장 점유율 증가 속도가 둔화할 전망이라는 게 골드먼삭스가 내세운 이유였다. 국내 증권사는 과도한 우려라고 일축했다. 두 달이 지난 4월 27일 현재 기아차 주가는 7만7600원으로 올라섰다. 현재로서는 일단 국내 증권사가 판정승을 거뒀다.

외국계 증권사의 전망이 기막히게 적중한 사례도 있다. LED(발광다이오드) 생산업체인 서울반도체는 지난 1월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를 2400억원으로 발표했다. 이에 대해 BoA메릴린치와 골드먼삭스는 실적목표가 너무 낙관적이어서 달성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혹독하게 평가했다.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서울반도체의 입장을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4월 28일 현재 서울반도체는 영업이익 전망치를 2400억원에서 1300억원으로 대폭 낮췄다. 이번엔 외국계 증권사의 분석이 옳았다.

국내 증권사와 외국계가 서로 반대되는 견해만 제시하는 건 아니다. 최근 맥쿼리, 다이와증권, 메릴린치, 도이치증권 등은 LG화학의 목표주가를 50만원 후반~60만원 초반으로 상향 조정하며 국내 증권사들의 화학업종 사랑에 동참했다.

전문가들은 국내외 증권사의 시각차는 구조적 요인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한다. 증권사의 투자의견을 ‘매수’ ‘중립’ ‘매도’ 등 크게 세 가지로 본다면 국내 증권사의 투자의견에서 매도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매수가 대부분이고 중립은 적은 편이다. 반면 외국계 증권사 보고서를 보면 ‘매도’ 의견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국내 증권사는 기업에서 정보를 얻어 종목을 분석하는데 매도 의견을 쓰면 정보 수집이 어렵다”며 “외국은 매도 의견을 인정하는 관행이 있지만 국내에서 매도 의견을 내면 시장에 충격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국계 보고서는 주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데, 외국인의 투자 형식이 국내 투자자와 달라 이런 차이가 빚어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투자자는 최고점을 기대하며 투자에 나서지만, 외국 투자자들은 주가가 정점을 찍기 전에 시시때때로 차익 실현에 나서기 때문에 ‘매도’ 의견을 내도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투자의견을 ‘매도’로 내면 목표주가가 현재 주가보다 낮아야, ‘매수’로 내면 목표주가가 현재 주가보다 높아야 정상이므로 국내 증권사와 외국계 증권사의 목표주가가 크게 벌어진다.

일각에서는 외국계의 정보 접근성이 국내 증권사보다 떨어져 주가에 늦게 반영된다는 주장도 있다. 곽중보 삼성증권 연구원은 “국내 애널리스트는 기업과의 접촉이 잦아 정보를 신속하게 주가에 반영하지만, 외국계는 정보망이 좁아 아무래도 늦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증권사 보고서는 ‘참고용’일 뿐어느 쪽의 전망이 맞는지를 떠나 양쪽의 다른 견해가 투자자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국내 증권사가 한 방향으로 달려갈 때 외국계 증권사가 다른 의견을 말하면 투자자들이 보다 객관적으로 종목을 바라보며 속도조절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증권사는 4월 들어 코스피가 가파르게 오르자 현대차, 하이닉스 등 상승 주도 종목의 목표주가를 높이기에 바빠 투자자들로부터 ‘뒷북치기’라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 기존에 제시했던 목표주가가 현재 주가보다 낮거나 앞으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해 서둘러 조정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외국계 보고서는 ‘감속’ 요인이 되기도 한다. 국내 증권사가 기업의 눈치를 보느라 에둘러 표현할 때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외국계 증권사는 직설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국내 증권사가 4월 오리온의 1분기 실적 호조를 바탕으로 목표주가를 45만~52만원으로 제시했을 때 골드먼삭스는 투자의견 ‘매도’와 목표주가 33만원을 제시했다.

골드먼삭스는 보고서에서 “오리온의 이익 개선이 국내와 국외에서 모두 이뤄질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며 “국내 경쟁이 치열하고 중국의 가격 환경이 어떻게 조성될지 몰라 조심스러운 견해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보고서에 좌우되기보다 투자자 스스로 판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장화탁 동부증권 주식전략팀장은 “국내증권사가 맞느냐, 외국계가 맞느냐를 따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증권사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결국 투자자가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여건) 등을 꼼꼼히 살펴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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