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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우리 시대 노인의 우울한 자화상

[Trend] 우리 시대 노인의 우울한 자화상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커플인 욕쟁이 할아버지 김만석(이순재)과 파지를 줍는 할머니 송씨(윤소정)의 연기 모습.

노인들의 따뜻한 사랑을 다룬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많은 관객의 호평 속에서 7주간 관객 평점 1위를 기록하고 입소문 마케팅 덕에 15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는 슬프지만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노인들의 사랑에 공감하게 하고 때로는 미소 짓게, 때로는 눈물을 흘리게 한다.

이 영화에는 사랑으로 연결된 조금은 다른 두 커플이 나온다. 첫째 커플은 아내를 먼저 보내고 소일거리로 새벽에 우유배달을 하는 욕쟁이 할아버지 김만석(이순재)과 파지를 줍는 할머니 송씨(윤소정) 커플이다. 김만석은 리어카를 끌며 파지를 줍는 송씨 할머니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눈이 오는 날 새벽 미끄러운 비탈길에서 송씨 할머니를 도와주면서 두 사람의 은빛 로맨스는 시작된다. 생일날 케이크를 전달하면서 “그대를 사랑합니다”라고 사랑을 고백하는 김만석과 그런 김만석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글을 배우고 밤늦도록 글씨 연습을 하는 송씨 할머니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나온다. 안 보이면 걱정하고 약속시간이 되면 설레는 두 사람의 모습은 젊은이의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 다른 커플 장군봉(송재호) 할아버지와 아내 순이(김수미)는 오랫동안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온 부부다. 중증 치매에 걸린 아내를 집에 두고 하루 종일 주차장 관리인으로 일하는 장군봉은 항상 아내 걱정이다. 늦게 집에 돌아오면 아내를 씻기고 “오늘 뭐했어?”라고 묻는 아내에게 시시콜콜 하루를 이야기해 준다. 세 남매를 키웠지만 “자주 찾아뵙겠다”는 말을 남기고 독립해버린 자녀들은 명절에도 찾아오지 않는다. 외로움 속에서 장군봉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가족이었는데, 다시 부부가 되었다.”

이 두 커플의 사랑은 죽음과 이별이라는 슬픈 결말로 끝나지만 따뜻함, 희생과 배려, 그리고 가슴 울리는 아름다움이 있다. 아픈 사랑과 함께 영화 속에는 이 시대 노인이 겪고 있는 고통이 어우러져 있다. 영화 속에서 노인들은 가난하다. 송씨 할머니는 어릴 때 시골에서 엄마를 버려두고 야반도주해서 서울로 올라온 후 한번도 가난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지금도 쪽방에 살면서 파지 수집으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

장군봉 부부도 가난하다. 자녀를 키워 독립시킨 후 단칸방에서 살아간다. 생계수단은 장군봉이 주차장 관리인으로 받는 수입이 전부다. 엄마가 중증 치매에 걸린 사실을 알면서도 자식들은 찾아오지도, 모시려고도 하지 않고 서로 책임 전가하기에 바쁘다. 이들 부부는 가지고 있는 모든 걸 자식에게 주고, 병든 아내와 주차장관리인 남편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간다. 치매 걸린 아내를 홀로 집에 두고 새벽에 주차장으로 출근하는 장군봉은 문을 걸어 잠그고 나간다.



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 1위영화 속에서 노인들은 아프다. 김만석의 부인은 이미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장군봉의 아내 순이는 치매에 암이 더해진다. 삶에 여유가 있어 평소 건강관리나 건강검진을 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것들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들은 다가오는 죽음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우리는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 아이가”라고 말하면서….

관객을 울먹이게 하는 가난과 질병의 고통은 영화 속 두 커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시대 노인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고통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우리가 독보적으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분야가 바로 노인 자살률이다. 우리나라 노인은 가난해서 힘들고, 아파서 힘들다. 그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자살을 생각하게 된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장군봉이 중증 치매에 암까지 걸린 아내와 동반자살하는 모습은 몇 년 전 단칸방에서 생활하던 노부부가 달력 뒤편에 “살 만큼 살고 둘이서 같이 세상을 떠나니 너무 슬퍼하지 마라”라는 유언을 써 놓고 세상을 떠났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어렵게 생활하던 이 부부는 아내가 치매에 걸리자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이런 선택을 하고 말았다.

대부분의 독자에게 이런 절대 빈곤의 모습, 자살의 충동 같은 건 거리가 먼 이야기일지 모른다. 고령화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말해 주는 통계나 다가올 장수시대에 대한 전망은 다르다. 언젠가 노인이 될 우리를 긴장하게 한다. 가난과 질병으로 대표되는 노인문제가 사회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왜 그렇게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인지를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우선 말 그대로 장수시대의 도래 때문이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를 살고 있는 노인이 많아졌다. 올해 초 고려대 통계학과 박유성 교수팀의 발표처럼 현재 40대 중 절반 가까이가 90세 넘어 생존한다면 보통 사람은 55세 정년 이후에 30년이 넘는 세월을 은퇴 기간으로 살아야 한다. 웬만한 준비 없이는 평균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긴 시간, 많은 돈이 필요한 시간이다. 특히 30년이란 세월은 가난하고 아픈 상태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다.

정부가 해결하기에는 고령화 사회의 진행 속도가 너무 빠르고 부담이 큰 것도 위협적이다. 이미 국민연금 수령기간이 늦춰져 1969년생부터는 65세가 되어야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 향후 연금액의 축소와 지급시기 조정은 불가피하리라고 판단된다. 현재 65세를 기준으로 지급되고 있는 각종 복지혜택을 고령화 시대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논의도 이미 시작됐다.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노인의료비는 건강보험뿐 아니라 국가 전체 재정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저출산 고령화 추세는 국가경제의 활력을 앗아가고 생산가능 인구의 부양 부담을 키우게 마련이다. 결국 자신의 노후는 최종적으로는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현실에서 노후를 맞이하는 당사자의 태도가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국민연금연구원이 3월 공개한 ‘제3차(2009년도) 우리나라 중·고령자의 경제생활 및 노후준비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노후에 대비해 생활비 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전체의 68.2%나 됐다. 부모 봉양의 전통이 사라진 현실에서 장군봉 부부처럼 자녀를 다 독립시키고 힘겨운 현실 속에서 살아가야 할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앞두고 있다. 이들은 자녀 사교육 시키느라, 가족과 함께 살 집 한 채 마련하느라 자신의 노후는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다가오는 장수시대 우물쭈물하단 큰코다쳐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장수시대’는 점점 다가오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소망이었던 장수의 꿈이 이뤄지고 있지만 그 모습은 장밋빛이 아니라 우울하고 두려운 빛을 띠고 있다. 노후에 필요한 지속적인 현금흐름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자산에 투자해야 하는지, 강남아줌라라고 불리는 재테크의 고수가 왜 갑자기 국민연금에 임의가입을 하는지, 은퇴 후에 국민연금은 얼마를 받게 되고, 다른 금융자산은 노후에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의 3층 보장시스템을 구축하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습관 등으로 건강을 관리하는 게 가장 좋지만 만약을 대비해 병원비를 충당할 수 있는 보험 하나는 반드시 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

조지 버나드 쇼의 비문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마치 아무런 준비 없이 길고 긴 노후를 맞이하려고 하는 우리 사회 베이비붐 세대를 비웃는 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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