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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하지 않은 시계는 소장할 가치가 없죠

독특하지 않은 시계는 소장할 가치가 없죠

5월 12일 서울 한남동 카페리옌에서 파스칼 라피 보베 회장을 만났다.

소량생산으로 명품의 정통성을 지키는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가 국내에 들어왔다. 1822년 영국에서 태어난 보베(BOVET). 그동안 소수의 VIP만을 위해 시계를 생산해 왔기에 이름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눈에 알 정도로 독특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지녔다. 현재 전 세계 37개국에서 선보이고 있다.

“다른 제품과 혼동되지 않는 정확한 정체성은 명품의 기본입니다. 그 정체성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독특해야 합니다. ‘손목 위의 회중시계’라는 컨셉트는 오직 보베만 가지고 있죠.”

론칭 기념으로 내한한 파스칼 라피 보베 회장을 5월 12일 한남동 카페리옌에서 만났다. 명품 시계 브랜드 회장으로선 드물게 레바논 출신인 그는 작고 단단한 풍채가 인상적이었다. 지중해의 강한 햇빛에 그을린 갈색 피부에 짧게 자른 은색 스포츠 헤어를 한 그에게서 오너 회장의 강한 포스가 풍겼다. 영국에서 출발한 스위스 시계 회사를 레바논 출신 오너가 경영하는 이유는 뭘까?

“할아버지 때부터 시계 컬렉션을 하는 가풍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최고급 시계를 접하며 수집했기 때문에 관심이 많았죠. 집안 사업인 제약회사를 운영하면서도 시계에 관한 미련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서른여덟이 되던 해에 전 세계적으로 시계 산업이 어려워졌고 2001년, 마침 투자자를 찾고 있던 보베를 인수했습니다. 그간 아끼던 고급 시계 브랜드들이 대량생산을 시작해 염증을 느끼고 있던 때였죠.”

열성적인 시계 수집가는 브랜드를 통째로 인수해 컬렉션을 완성했다. 라피 회장의 시계 컬렉션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할 정도로 방대하다. 그 가치 또한 높다. 400㎡의 시계 소장실에는 희귀한 369개의 시계와 관련 증서들이 진열돼 있다.

“그중 가장 아끼는 시계는 1827년 만들어진 보베의 ‘La Madonna della Sedia’입니다. 고가 제품은 아니지만 성모마리아가 아들인 예수를 안고 있는 아름다운 페인팅이 새겨져 있는 회중시계죠. 반투명 블루 에나멜을 수십 번 입힌 57㎜ 케이스의 회중시계 곳곳에서 수공예와 예술이 느껴집니다. 제게는 종교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해 주는 작품입니다. 지금 러시아에서 전시 중이기 때문에 이번에 한국에 가져오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라피 회장은 자신의 인생과 철학이 깃든 시계 컬렉션으로 꾸며진 시계 박물관을 스위스 사토 모티에 성에 내년 초 오픈할 예정이다. 브랜드 19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이 성은 17세기 스위스 플레리어에 지어진 것으로 보베의 뿌리가 시작된 곳이다. 현재는 그곳에서 시계 조립과 디자인이 이뤄지고 있다.

“보베에서는 전 세계 VVIP를 사토 모티에 성에 초대하는 특별한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워낙 소량생산 탓에 시계를 주문해 놓고 오래 기다리다 지친 고객이 많죠. 이들이 성에 한번 오고 나면 감동을 받아 기분이 풀린다고 하더군요. 이 성은 억만장자여야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예술에 대한 즐거움을 알면 됩니다. 블랙타이로 오실 필요가 없어요. 캐주얼한 청바지 차림도 괜찮습니다. 시계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는 분이라면 언제든 와서 제작 과정을 눈으로 보고 배울 수 있습니다. 보베의 독특함(uniqueness)을 오감을 통해 감상해 보세요.”

라피 회장은 인터뷰 내내 ‘독특함’을 강조했다. 오랜 시계 수집 경험을 통해 진정한 수집가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이를 브랜드 생산 과정에 반영한다. 그는 인수 초기 대량생산을 주도하던 경영자들을 모두 내보냈다. 구조조정을 통해 과감하게 생산량을 줄였다. 브랜드 희소가치를 높이기 위함이다.

“보베는 수집가의 기대를 뛰어넘는 고급 시계를 만듭니다. 첫째, 아이코닉한 디자인만을 추구합니다. 크라운이 보편적인 3시 방향이 아닌 12시 방향에 있어 멀리서도 보베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둘째, 다이얼에서부터 투르비옹, 그리고 스프링 휠까지 모든 과정이 인 하우스로 제작됩니다. 여기에 세계적인 시계장인들이 에나멜링, 인그레이빙, 미니어처 페인팅 등 여러 기법으로 아름다움과 독특함을 불어넣습니다. 셋째, 소수의 사람들만 가질 수 있도록 연간 2000개로 생산을 제한합니다. 시계에 관심이 많지 않으면 직접 접하기 힘들죠.”

소량생산으로 유명한 독일 최고급 명품 시계 브랜드 랑게운트죄네는 연간 4500개를 생산한다. 주문 후 최대 3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를 감안하면 연간 2000개 생산하는 보베 시계의 희소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돈뿐만 아니라 참을성도 가져야 시계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말이다.

“시계는 이기적이고 감성적인 오브제입니다. 소유하고 싶은 시계는 제게 대화를 해 옵니다. 마음을 움직이죠. 기술적으로나 디자인적으로 완벽하고, 훌륭한 고급 소재가 장인들의 손길을 거쳐 독특한 정체성을 갖고 탄생한 시계만이 수집가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이제 보베는 한국의 VIP와 대화를 시작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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