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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ny] 산·학·연 머리 맞대면 `작품` 나온다

[Company] 산·학·연 머리 맞대면 `작품` 나온다

초경량 접이식 카본 자전거.

2003년 이라크전 당시 미군은 이라크군이 설치한 지뢰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미 군용 트럭은 지뢰가 터지면 전복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지뢰가 터져도 멈추지 않고 달리는 트럭이 있었다. 알고 보니 트럭에 사용된 주물 제품이 견고한 덕이었다. 무사했던 트럭에 타고 있던 병사가 트럭 제조회사에 고맙다는 e메일을 띄웠다. 장갑차도 만드는 이 트럭 제조사는 해당 주물 제품을 납품한 한국의 진흥주물에 이 사실을 알려왔다. 진흥주물은 자동차와 건설기계용 주물 부품을 생산하는 주물 전문 중소기업. 미군 트럭에 들어가는 이 회사 제품은 강도가 일반 주물품보다 네 배 이상 높다(진흥주물이 트럭 제조사 측과 맺은 계약에 따라 이 회사와 해당 부품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진흥주물은 이 주물 제품을 개발할 당시 한국생산기술연구원(KITECH·카이텍)의 ‘i-매뉴팩처링’이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사이버상에서 카이텍의 연구 인력으로부터 설계와 관련한 기술을 지원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www.i-mfg.com/Default.aspx)이다.

나경환 카이텍 원장은 “주물은 금형, 열처리 등과 더불어 제조업을 하는 한 영원히 갈고닦아야 할 기술”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자동차, 휴대전화, 선박 강국으로 우뚝 서는 데 꼭 필요한 뿌리기술입니다. 독일과 일본이 세계 제일의 제조업 강국인 건 이런 뿌리기술의 기반이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죠.”



노스페이스도 탐내는 드라이존카이텍은 중소·중견기업에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지식경제부 산하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다. 시제품을 만들고 테스트할 때 파일럿 플랜트(공용 실험실 내 설비)를 제공하기도 하고,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 인력을 대신 뽑아 중소기업에 장기로 파견하기도 한다. 이렇게 배치된 인력에 대해서는 급여의 절반을 카이텍이 부담한다.

벤텍스는 2002년 환경감응형 인공지능 섬유 드라이존을 개발할 당시 카이텍의 파일럿 플랜트를 활용했다. 드라이존은 외부의 물기가 스며드는 건 막아주고 땀은 배출하는 꿈의 섬유. 땀만 배출하거나 방수 기능만 있는 기존 섬유의 단점을 보완한 것이다. 드라이존 판로 개척에 애먹던 벤텍스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이치로 선수가 드라이존으로 만든 와코루의 스포츠 언더웨어인 CWX의 모델로 나서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올 들어 아웃도어의 명가 미 노스페이스사는 드라이존을 메인 아이템으로 결정했다. 카이텍의 파일럿 플랜트는 시제품 생산 관련 장비는 물론 보일러 시스템, 폐수 처리 설비를 갖추고 있다. 벤텍스는 드라이존의 성공을 발판으로 냉감섬유 아이스필, 항균위생 흡수속건 섬유 헬싸 등을 개발했다.

코엔디자인은 지난해 3월 카본 복합재를 소재로 한 초경량 접이식 자전거를 개발했다. 카본 자전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이 회사는 카이텍, 스피자, 연세대 산학협력단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개발을 주도한 코엔디자인은 자전거 디자인을 맡고 카이텍은 자전거가 접히는 부분인 힌지 쪽의 메커니즘 개발 등 설계를 담당했다. 접이식 자전거는 무게는 가볍게, 부피는 작게 만드는 게 핵심인데 부피를 작게 만드는 데 필요한 엔지니어링 기술을 제공한 것. 카이텍은 자전거를 접을 때 앞뒤 바퀴가 나란히 되게 하기 위해 체인 스테이 파트가 접히면서 측면으로 돌출되도록 피벗 메커니즘을 고안했다. 그 결과 한 번의 접는 동작으로 두 바퀴가 나란히 정렬됐다. 한편 연세대 측은 자전거 구조해석을, 스피자는 카본 자전거의 제작을 맡았다.

이 산학연 컨소시엄은 이렇게 해서 6개월 만에 접었을 때 길이 1.42m, 높이 1m인 자전거를 개발했다. 무엇보다 본체와 바퀴에 카본 복합 소재를 써 무게가 7㎏에 불과하다. 시중에서 팔리는 알루미늄 소재 접이식 자전거(10~13㎏)의 최고 2분의 1 수준.

드라이존과 드라이존으로 만든 아웃도어 제품들.

카본은 강철에 비해 무게는 4분의 1에 불과하고 강도는 세 배 이상 높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우주선, 항공기, 스포츠 경기용 및 산악용 자전거의 소재로 사용된다. 국내에서 팔리는 카본 자전거는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해 왔다. 이 컨소시엄이 개발한 카본 자전거의 판매가는 300만원 선으로 소형차 값 수준인 수입품 카본 자전거에 비해 가격 경쟁력도 갖췄다.

이 카본 자전거를 양산 중인 스피자는 지난해 세계 3대 자전거전시회인 타이완국제자전거쇼에 시제품을 출품해 중국, 일본 등의 바이어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미국의 한 바이어로부터는 이 자전거에 적용된 새로운 방식의 원터치 접이 기술을 전기자전거에 도입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나 원장은 “좋은 기술로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만들어내면 우리 중소기업도 얼마든지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중견기업이 기술 경쟁력을 갖출 때 비로소 대기업과 진정한 협력관계를 맺고 실질적인 동반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 인터뷰 | 나경환 카이텍 원장

“상화 아이디어만 갖고도 지원 받을 수 있어”
나경환(54) 카이텍 원장은 기술고시 출신으로 카이텍의 내부자 출신 첫 원장이다. 선임연구본부장 등을 거쳐 2007년 원장이 됐고 지난해 가을 연임됐다. KAIST 생산공학박사라 전공도 생산기술을 지원하는 카이텍에 꼭 들어맞는다.



카이텍은 중소기업에 어떤 존재인가?“중소기업과 가장 가까운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다.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기술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됐기 때문이다. 저희 슬로건이 ‘기술 한국의 힘 중소기업, 카이텍이 함께합니다’이다. 국민소득 3만 달러, 4만 달러 시대를 열려면 우리 산업의 허리인 중소·중견기업이 튼실해야 한다.”



중소기업으로서는 카이텍의 문턱이 낮지 않은 것 같다.“지원 요청이 많은데 인력·예산의 한계로 다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여러 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 모델이 될 만한 기술로 플랫폼을 만들려고 한다. 기술 지원에 대한 재의뢰율은 상대적으로 높다. 기업들이 지원 성과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워한다는 방증으로 본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을 하나?“생산기술 연구개발, 첨단 장비를 갖춘 공용 실험실 제공, 새로운 열처리 기술 동향 같은 기술 관련 정보 제공, 기술 인력 재교육 제공, 온라인을 통한 설계 지원 등이다.”



지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전화상담 채널(080-9988-114), 카이텍 홈페이지의 기술지원 핫라인(www.kitech.re.kr/boards/hotline) 등의 창구가 있다. 중소기업이 약한 설계기술을 지원하는 사이버설계지원센터(www.etekzon.co.kr/index.asp)도 온라인상에서 접촉할 수 있다.”

“물론이다. 중소기업청의 위임을 받아 벌이는 아이디어 상업화 지원사업이 그것이다. 비를 맞지 않으려고 우산대를 기울일 필요 없는 비대칭 우산이 그런 과정을 거쳐 특허를 받았다.”



기업으로서는 어떤 비용을 얼마나 부담하게 되나?“시설이나 장비를 빌리면 전기요금 정도 든다. 기술개발 지원 비용은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지난해 시작한 석·박사급 기술 인재 지원 사업의 경우 기업이 해당 인력 인건비의 절반을 부담한다. 지난해 70여 명을 뽑아 배치했다. 3년 계약인데 재계약도 할 수 있다. 해당 기업 쪽에서 아주 만족스러워한다.”



카이텍의 중장기 비전이 뭔가?“주물, 금형, 열처리 등 누구도 중시하지 않고 투자도 하지 않는 뿌리기술의 전문 연구기관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이런 뿌리기술을 근간으로 융합기술을 개발해 신산업을 창출해내는 기술의 메카가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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