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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화된 친환경 제품은 블루오션`

`차별화된 친환경 제품은 블루오션`

이윤재 피죤 회장.

“33년 전 창업 당시부터 환경친화적인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비자가 친환경(그린)의 가치를 크게 느낄 것으로 내다봤죠. 그때만 해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윤재(77) 피죤 회장은 “그린이란 지구상의 무수한 생명체와 공존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이라는 이 도도한 흐름은 역전될 수 없습니다. 전 업종의 모든 기업이 지향해야 할 가치죠. 그린 제품을 만들면 지속가능 경영에도 도움이 됩니다.”

이 회장은 1978년 마흔다섯의 나이에 늦깎이로 생활용품 회사 피죤을 창업했다. 제품명을 주로 한자로 짓던 시절 그는 국내에서 처음 출시한 섬유유연제에 피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피죤(비둘기)은 평화의 상징이자 경축의 메신저다. 1994년엔 아예 회사 이름도 피죤으로 바꿨다. 토종 중소기업이 CI(기업 이미지 통합)를 시도한 것이다.

지난 5월 역삼동 피죤 사옥에서 이 회장과 두 차례 만나 그린 경영에 대한 철학 등을 들어봤다.



소비자로서는 그린의 효용을 체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린 경영이 대세라고 보나요?“소비자에게 지구의 장래까지 내다보고 지갑을 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동일본 대지진 등의 자연재해를 겪으면서 우리 국민도 기후변화 등의 문제를 실감하기 시작했습니다. 기후변화는 점점 가속될 거고, 사람들의 관심이 그린으로 쏠릴 겁니다.”



그린 경영에 뛰어들어야 할 적기가 언제인가요?“소비자가 그린 제품을 원할 때면 이미 늦습니다. 그런 니즈가 생기기 전에 선제적으로 시장을 리드해야 합니다. 앞으로 그린이라는 가치를 떠나서는 생활도, 생각도 할 수 없는 그런 시대가 올 거예요.”

피죤의 간판 제품은 섬유유연제 피죤, 액체 세제 액츠 그리고 살균세정제 무균무때. 이들은 과거 시장에 없었던 제품군, 새로운 카테고리의 효시 격인 제품이다. 모두 친환경 제품. 살균과 세척, 냄새 제거를 동시에 해내는 무균무때에 대해 그는 전 세계에서 처음 출시된 것이라고 말했다. 피죤과 액츠는 모두 시장 점유율 1위 제품이지만 무균무때는 3위다. 피죤의 2010년 섬유유연제 시장점유율은 44.0%에 이른다.

피죤은 브랜드 가치도 1위다. 지난 3월 브랜드 가치 평가회사 브랜드스탁은 섬유유연제 부문에서 피죤이 경쟁 브랜드 아이린, 샤프란을 큰 점수 차로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피죤이 시장에 나온 것은 세탁기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을 때였다. 대부분 빨랫비누를 쓰던 시절 피죤 영업사원들은 수퍼마켓을 찾아다니면서 “피죤은 정전기를 방지해준다”고 설명했다. 정전기라는 말에 한국전력에서 나온 줄 알고 두꺼비집을 열어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 회장은 피죤의 샘플을 만들어 돌리게 했다. 출시 후 7년간 이렇게 뿌린 샘플이 1t 트럭 1200대 분량이었다고 한다. 마케팅 분야에서 체험 마케팅이란 용어가 정착되기도 전에 그에 해당하는 시도를 한 셈이다.

무균무때는 북한 출신의 천재 화학자 궁리환 박사가 개발한 것이다. 궁 박사는 독일에 유학하던 중 망명했다. 그 후 우리 정부의 해외 두뇌 유치 당시 입국해 대덕연구단지 한 화학연구소에 근무했다. 그는 독일에 있을 때 세계적 화학회사 헨켈에 근무한 이력이 있다. 이 회장은 그에게 이 세상에 없는 제품을 개발해 달라고 매달렸다고 한다. 그래서 세상에 나온 게 무균무때다.

“10여 년 전 신제품 발표를 할 때 인체에 무해하다는 것을 보여주느라 제가 입 안에 도마·식탁용 제품을 스프레이로 뿌렸습니다. 당시 피죤은 영국 레킷 벤키저사의 세정제 라이졸을 독점 수입판매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회사가 어느 날 우리에게 무균무때 제조기술을 넘기라고 요구했습니다. 돈은 1억 달러라도 주겠다고 했죠. 또 우리가 응하지 않으면 라이졸 독점판매권을 회수하겠다고 압박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돈 벌려고 이 제품을 개발한 게 아니라고 말해줬습니다.”

이주연 피죤 부회장.
이 일로 피죤은 이 회사와 인연을 끊었다. IMF 체제로 회사가 몹시 어려울 때였다. 미국에서 20억 달러씩 팔리던 라이졸의 국내 독점 판매권이 회수당했음은 물론이다.



궁 박사는 어떤 사람인가요?“무균무때 개발에 대한 그의 기여도가 90%입니다. 북한 김일성 주석이 선발한 독일 유학생이었습니다. 독일인 사이에서도 머리가 비상하다고 소문이 난 분이었죠. 국내에 입국했을 때 나이가 50대 후반이었습니다. 당시 대덕단지로 이분을 찾아가 저녁식사를 하면서 통사정했습니다. 대덕단지는 인프라가 제대로 안 돼 있고 한국인 가운데는 팀원으로 끌어들일 만한 실력자가 없다고 불평하던 그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아주 탁월한 분이었어요. 7년여 후 내가 계속 한국에 있다가는 머리가 녹슬겠다고 하면서 독일로 돌아갔습니다.”



무균무때가 라이졸보다 좋은 점이 뭔가요?“다른 살균제는 인체에 유익한 균을 포함해 아주 많은 균을 죽이지만 무균무때는 인체에 유해한 균 50여 종만 죽입니다. 너무 많은 균을 죽이면 특수 약품으로 분류돼 별도로 제조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수술실 내 사용’ 식으로 용도도 제한되죠.”



그린 제품을 만드는 게 수지 면에서 남는 장사라고 할 수 있나요?“피죤을 떠받치고 있는 세 기둥이 피죤, 액츠, 무균무때입니다. 모두 피죤이 창조한 카테고리로 블루오션을 열었습니다. 그린 제품은 눈에 보이지 않는 블루오션이죠. 많은 기업이 그린을 외치지만 비용 부담이 커 진정한 그린 제품은 만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非)그린 제품이야말로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입니다. 차별화된 그린 제품을 내놓기만 하면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는 시장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바로 경쟁은 없고 잠재력은 있는 블루오션이죠. 블루오션은 창조를 통해 열립니다. 창조하려면 시선이 미래를 향해야 하는데 자연이야말로 우리가 돌아갈 미래죠.”



피죤의 글로벌 전략은 무엇입니까?“중국 시장을 글로벌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 있습니다. 지난해 톈진에 연간 50만t 생산 규모의 공장을 준공했습니다. 중국은 섬유유연제도 잘 팔립니다. 피죤도 짝퉁이 나왔죠. 한때 세계의 공장이었던 중국이 이제 세계의 시장이 됐습니다.”



그린 제품이 중국 시장에서 통하나요?“중국은 환경 관련 규제가 매우 엄격합니다. 한국보다 월등히 규제가 심해요. 중국의 환경 기준을 통과하면 그린 제품에 대한 눈이 높은 세계의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린 제품에 관한 한 중국은 테스트 베드라고 할 수 있어요.”



상표권 보호 취약, 인건비 상승 등 중국 진출의 리스크도 적지 않은데요?“인건비 상승은 자동화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피죤 톈진 공장은 국내 공장보다 자동화율이 훨씬 높습니다. 그래도 잡무를 할 사람은 필요한데 이런 인력은 용역회사를 통해 썼습니다. 노무 문제에서도 벗어난 것이죠. 중국 시장의 일차적 가치는 물론 거대 시장 그 자체입니다. 국토가 아열대에서 한대에 걸쳐 있어 생활용품 제조업체로서는 신제품을 개발하기도 좋은 여건이죠.”
이윤재 회장의 아들인 이정준 미국 메릴랜드 주립 타우슨대 교수. 이 회장은 그가 피죤 경영에 참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1녀1남을 뒀다. 딸인 이주연 부회장은 96년 피죤에 입사해 디자인팀장·마케팅실장을 지냈고 관리총괄부문장을 거쳐 2009년까지 대표이사를 맡았다. 피죤은 현재 이 회장과 이은욱 사장의 공동 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디자인을 총괄하는 한편 회사 내부 시스템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디자인은 그의 전공과 관계가 깊다. 서강대 영문과 출신인 그는 미국 유학길에 올라 회화를 전공했고 퀸스대 대학원에서 미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서울여대·동국대에서 강의했고,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에서 MBA를 한 후엔 이화여대 디자인대학원에서 소비자행동론과 마케팅을 가르쳤다.



이 회장은 “이 부회장이 통합적인 디자인 경영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디자인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고 디자인 쪽도 부단히 혁신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소비자 눈높이에서 우리 제품을 어떻게 쓰는 게 더 편리한지, 소비자가 제품을 사용할 때 어떻게 해야 편익이 극대화되는지 따지는 건 남자가 여자를 못 따라갑니다. 더욱이 이 부회장은 비즈니스 센스도 갖췄죠.”

이 부회장의 남동생인 정준씨는 피죤의 대주주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 스탠퍼드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메릴랜드 주립 타우슨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년도 보장 받았다. 회사 경영엔 뜻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그에 대해 이 회장은 본래 활동적인 성격으로 젊었을 때와 달리 경영 쪽에 관심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종신직을 보장 받긴 했지만 교수 생활이 본래 단조롭지 않습니까? 동양인으로서 미국 주류사회에서 성장하는 데 한계도 있고. 아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한국에서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꼭 CEO가 되지 않더라도 경영 활동을 통해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을 거예요.”



이 교수가 경영에 참여할 수도 있나요?“참여하더라도 10년가량은 경영수업을 하게 될 겁니다. 누가 됐든 선배들에게 배워야지 곧바로 회사 경영을 맡을 순 없어요. 그만한 역량이 될 때 회사도 맡는 겁니다. ‘내 집 의자니까 내가 앉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은 맞지 않습니다.”

10년이면 이 부회장이 디자인팀장으로 입사해 부회장으로 승진할 때까지 걸린 기간과 맞먹는다.



후계자는 누구입니까?“이 부회장이 여자라서 못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일부만 맡을 수도 있죠. 그렇게 되면 늦게나마 자기 전공을 살릴 수 있겠죠.”



경영권 승계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일인데요? 이 교수가 맡는다면 지금쯤 경영 수업을 시작해야 하지 않습니까?“조금 늦었죠. 사실 진작 시작했어야죠.”



피죤의 증시 상장은 어떻게 돼 가나요?“여러 곳에서 상장을 권유 받았고 그래서 내년께 상장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당분간은 하지 않기로 유보했습니다. 피죤 중국법인(벽진일용품유한공사)에 대해서도 몇 회사로부터 투자 제의를 받았지만 제값을 받기 어려워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상장이 회사 성장의 모멘텀이 될 수도 있는데요?“자금력이 좋아지고 기업 이미지와 지명도도 높아지겠죠. 그래도 무리해서 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 회장은 기업은 영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연인으로서의 사람은 유한하지만 법인은 이론적으로 영원하다는 것이다.

“오너를 포함해 종사자의 구성이 달라질 뿐이죠. 기업이 이론적으로만이 아니라 현실의 세계에서 영속하려면 영원히 갈 수 있는 영구적인 목표가 필요합니다. 그 목표를 저는 그린으로 정했습니다.”



중국 다음으로 노리는 시장은 어디인가요?“동남아와 중동입니다. 어쩌면 다음 세대의 몫이 될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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