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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좋은 투자 기회는 절로 오지 않는다

[CEO] 좋은 투자 기회는 절로 오지 않는다

공무원→민간기업 대표→공기업 대표. 7월 17일 3년 임기를 마치는 진영욱(60) 한국투자공사 사장의 이력이다. 한국투자공사는 외환보유액·공공기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해 나라 자산을 늘리고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2005년 7월 출범한 공기업. 정부와 한국은행에서 위탁 받은 자산을 관리·운용하고 금융 전문 인력도 양성하는 대형 투자기관이다.

공직을 떠난 고위 공무원이 민간기업 또는 공기업에 가는 사례는 흔하다. 진영욱 사장은 좀 다르다. 민간기업과 공기업의 대표를 모두 경험했다. 드문 경우다. 진 사장은 한국투자공사의 전임 사장 2명과 달리 3년 임기도 다 채웠다.

진 사장은 “투자 원칙을 무시하면서까지 공격적으로 나설 이유는 없지만 실패가 두려워 몸을 사려서도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한국투자공사처럼 인지도가 낮고 자산 규모가 작은 투자자는 적극 나서서 투자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덧붙여 그는 “해마다 조금씩이라도 자산 규모를 늘려야 중국투자공사처럼 투자 기회가 늘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민간기업·공기업을 두루 경험한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를 7월 7일 오후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의 한국투자공사에서 만났다.



3년 임기를 무사히 마쳤다.“한국투자공사가 2005년 출범했는데 내가 세 번째 사장이다. 한국투자공사는 국민의 돈인 외환보유액을 밑천 삼아 투자한다. 그런 만큼 투자의 일관성이나 장기 안목이 중요하다. 사장이 자주 바뀌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다행히 나는 3년 임기를 채웠다.”



취임하자마자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다.“리먼브러더스 사태 후 시장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굉장히 난감하고 힘든 시기였다. 2009년 1분기 때가 최악이었다. 피 같은 돈으로 투자했는데 반 토막이 예사였다. 그걸 회복하려면 무척 어렵다. 이른바 ‘숫자의 장난’이다. 자산 가치가 50% 떨어진 경우 50% 오른다고 100%가 되지 않는다. 반 토막 난 자산 가치의 100%가 올라야 겨우 본전이 된다. 사람들은 많이 떨어졌으니 많이 오른 것 아니냐고 쉽게 말하지만 억울하다. 직원들이 무척 애를 썼다. 지금까지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에서 410억 달러를 받았는데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도 50억 달러 정도 이익을 내고 있다. 시장이 살아나기도 했지만 전략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이익을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떤 전략을 썼나.“예일대 투자운용팀을 이끄는 데이비드 스완슨 교수가 있다. 자산운용업계에서 전설적 인물로 통한다. 한국투자공사에서 스완슨 교수를 초청해 세미나도 같이 했는데, 그가 말하는 자산운용의 요체는 자산 배분이다. 주식, 채권, 헤지펀드, 부동산 등 여러 자산 가운데 언제 어디에 얼마나 투자하느냐에 따라 성적표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한국투자공사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 주식과 채권 투자 비율을 50대50에서 40대60으로 바꿨다. 정부의 투자 가이드 라인 한계까지 채권 비중을 늘렸다. 주가는 많이 떨어졌지만 채권 수익률은 올라 시장평균보다 선방했다. 수익률 자체는 마이너스여서 자랑할 일은 아니었지만 전문가들은 평가를 해줬다.”



요즘은 어디에 투자했나.“지난해부터 사모펀드·헤지펀드를 비롯한 대체 투자를 늘리고 있다. 지난해 6월 미국 2위의 천연가스 회사인 체사피크에 2억 달러를 투자한 게 대표적이다. 무의결 전환우선주에 투자했는데 연 5.75%의 확정 배당금을 받을 수 있고 언제라도 약정된 전환가격에 보통주로 바꿀 수 있다. 1년이 지난 현재 평가액은 3억3300만 달러다. 메릴린치 투자 이후 첫 전략적 투자였는데 지금까진 성공적이다.

이와 달리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의 채권은 모두 정리했다. 내 기억으로 빚 탕감을 받지 않고 채무 재조정을 했던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우리나라는 민간부문의 빚이 문제였다. 우량기업을 싸게라도 팔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스 등은 다르다. 정부에서 이리저리 써버리고 돈이 없다. 팔 것도 없다. 오죽하면 섬을 내놓겠나. 채권자가 빚을 탕감해주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는 구조다. 지금이야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넘치니까 넘어가지만 1년쯤 지나면 이들 나라의 채권을 가진 금융회사는 호되게 당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다시 요동칠 수도 있고.”

진 사장으로선 세계 금융시장의 위기가 남의 일 같지 않다. 재무부 은행과장·증권발행과장·자금시장과장, 재정경제원 금융정책과장 등을 지낸 금융 전문가인 그는 외환위기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더구나 외환위기 후 정책 실패의 논란이 일자 공직에서 물러났다. 한편으론 그런 경험이 지금의 파고를 넘는 원동력이 됐다. 그는 “한화증권·한화손해보험에서 일하며 경제를 거시적인 관점뿐 아니라 미시적인 측면에서 보는 안목을 기른 것도 도움이 됐다”고 들려줬다.



공직에 있을 때 제3자 관점에서 보던 기업에서 직접 일해 보니 뭐가 달랐나.“금융정책과장도 지내 시장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금리와 통화량 문제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증권회사와 보험사에서 일해 보니 시장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거시정책 측면에서는 전문가였는지 모르지만 시장 참여자 입장에서 보니 제한적인 지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시장의 효율성 관점에서 보면 시장이 얼마나 역동적이고 빨리 움직이는지 놀랄 때가 많았다. 검찰까지 나선 ELW(주식워런트증권) 문제만 봐도 그렇다. 논란이 있지만 돈벌이가 핵심인 시장에서는 새로운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다만 대기업도 생각보다 관료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모 은행장을 지낸 후배도 자신이 있던 국내 굴지의 그룹이 정부보다 더 관료적이라고 하더라.”



정부와 기업의 경험을 어떻게 활용했나.“공기업은 최악의 경우 정부보다 관료적이면서 기업의 효율성은 따라가지 못할 우려가 있다. 무엇보다 조직이 관료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임직원과 자주 만나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려고 했던 것도 그래서다. 여행, 독서, 음식 등 다양한 주제로 회사 인트라넷에 글을 올려 소통 창구도 확대했다. 지난해 거의 2주에 한 편꼴로 글을 띄웠다. 언젠가 막걸리 이야기를 썼더니 어느 직원이 술 사달라고 댓글을 올렸다.”

영화, 막걸리, 김연아, 축구, 이솝우화 등 생활 주변의 이야기부터 심오한 논쟁까지 다루는 진 사장은 박학다식하기로 유명하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고민 끝에 꿈을 접었지만 그는 애초 역사학도가 되려고 했다. 경제학을 전공한 후 공무원의 길을 걷지 않았다면 강단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수나 선생님이 됐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딱딱한 경제정책만 다룬 고리타분한 사람은 아니다. 고교시절 ‘세상을 살아가는 데 인문학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당시 이어령 경기고 은사의 말을 가슴에 새긴 그는 이른바 문학·역사·철학을 기본으로 정치·경제·사회 관련 지식을 쌓았다. 그가 “어느 조직에서든 직원들의 창의와 자율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임기가 끝나면 여행을 하며 좀 쉬고 싶다”는 그는 “공직에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정부 관련 일이라면 조언자 역할로 족하다는 그는 “민간기업에서 일할 기회가 있다면…”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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