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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패닉과 한국 경제-악화되는 물가불안] 물가 4% 목표 달성 ‘물 건너간 듯’

[금융패닉과 한국 경제-악화되는 물가불안] 물가 4% 목표 달성 ‘물 건너간 듯’

김중수 한은 총재는 “미 신용등급 강등으로 국내외 불확실성이 커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고 말했다.

“현재 3.2%인 한국의 기준금리를 최소 4%까지 올려야 한다.”(8월 5일 IMF 한국 연례협의 최종 결과) “높은 7월 물가로 금리인상 전망.”(7월 말 각 증권사 리포트)

올 7월 중순까지만 해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의 8월 기준금리 인상은 확실해 보였다. 올 들어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7월 소비자 및 생산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각각 4.7%, 6.5% 올랐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8월 1일 “9월 이후 기저효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낮겠지만 물가상승 압력이 감소하는 건 아니다”며 금리인상을 시사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물가안정을 우선과제로 삼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기준금리 동결, 물가상승 압력 거세져8월 5일(현지시간) 돌발변수가 터졌다. 국제신용평가사 S & P(스탠더드앤푸어스)가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세계 각국이 패닉에 빠졌다. 대외불안이 가중되자 금통위 안팎에서 ‘금리인상이 어렵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금통위는 11일 예상대로 기준금리(3.25%)를 동결했다. 올 6월 10일 3.00%에서 3.25%로 0.25%포인트 올린 뒤 2개월 연속 동결이다. 김중수 총재는 금리동결을 발표하면서 “기준금리 정상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미 신용등급 강등으로 국내외 불확실성이 커져서 기준금리 인상이 트릴레마에 빠졌다”고 덧붙였다. 트릴레마는 환율·물가·금리의 3중고를 말한다.

시장은 이번 금리동결에 대해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말한다. 금리를 섣불리 올리면 경기가 둔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기준금리 인상은 가계·기업의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가계의 이자 부담을 높이고 기업 투자를 줄인다. 하이투자증권 이승준 연구원은 “농산물 물가가 8월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탈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은 대외리스크를 해소하는 게 물가보다 먼저”라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 진은정 연구원은 “경기가 침체됐을 때 금리를 올리면 소비가 위축되는 등 시장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기준 동결은 현명한 조치라고 말했다.

물론 금리가 동결된다고 물가가 오르는 건 아니다. 미국 경기가 침체되면 원화가치가 상승해 수입물가가 낮아지고 물가상승 압력이 약해질 수 있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는 “오바마 행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수출전략을 사용할 전망”이라며 “그러면 약(弱)달러 정책을 고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원화가치가 상대적으로 올라 물가가 진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원화가치가 10%포인트 상승하면 물가는 0.5%포인트 내려간다. 경기침체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해도 물가안정에 도움이 된다. 대외경기가 악화되면 일반적으로 국제 원자재값이 떨어진다. 경기침체로 원자재 수요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미국 금융패닉으로 국제유가를 비롯한 원자재값은 벌써 하락세를 탄다. 원자재 가격의 국제기준으로 간주되는 CRB지수는 8월 1일 341.41에서 9일 316.12로 25.29포인트 하락했다. 구리가격은 같은 기간 9.5%포인트 떨어졌고, 니켈·아연가격 하락률은 10%포인트가 넘었다. 원유값도 떨어지고 있다.

WTI(서부텍사스유)는 9일 배럴당 79.3달러를 기록해 2010년 9월 이후 가장 큰 수준으로 하락했다. 오정적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금융패닉으로) 하향조정되고 있다”며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8월만큼은 금리를 인상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폭우·장마·폭염 등 기상이변으로 7월 생산자물가가 급등해 채소·과일 대란이 우려된다. 한국물가협회의 자료를 보면 무(1.5㎏) 1개 가격은 2780원으로 한 주 만에 17% 올랐다. 배추 상품(2.5㎏)의 가격도 전주 대비 27% 오른 3500원을 기록했다. 추석이 되면 물가는 다시 한번 급상승할 공산이 크다. 고물가로 서민경제가 위축된다는 얘기다. 더구나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면 인플레 압력이 생겨 물가가 오른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금리가 낮으면 유동성이 늘어나 인플레가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8월 물가상승률 5% 넘을 수도다른 지적도 있다. 일부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현재 기준금리가 ‘긴축’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수준인데 경기침체를 지나치게 의식해 기대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한금융투자 이성권 리서치센터 상무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기준금리인 3.25%는 긴축이라기보다는 성장에 적합하다. 조금 올려도 경기침체를 극복하는 데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 물론 조금 올리면 물가를 잡는 것도 여의치 않을 거다. 하지만 기대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다. 물가가 오를 것 같으면 소비자는 사재기를 하는 것처럼 더 많이 사려는 경향이 있다. 이게 물가상승을 유인한다. 이번 금리동결로 기대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한 게 아쉽다. 서민은 두 달 이상 고물가에 시달릴지도 모르겠다.” 그는 추가 금리인상 시기를 “올 4분기 또는 내년 1분기 정도”라고 전망했다.

7월 금리동결로 정부의 4%대 물가상승률 목표 달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성권 상무는 “8월 물가상승률이 5%를 넘을 수도 있다”며 “4%대 물가상승률 목표는 달성하기 어려울 전망”이라고 말했다. 물가불안 역시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수요압력과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등으로 높은 수준의 물가상승률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경기침체도 우려되지만 물가상승도 걱정이다. 진퇴양난이다.

이윤찬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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