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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용돈은 ‘피터팬 증후군’ 예방주사

[Trend] 용돈은 ‘피터팬 증후군’ 예방주사

명문학교로 알려진 어느 기숙고등학교.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고 나면 이곳 아이들은 엄마에게 전화한다. “엄마 시험 끝났는데, 이제 뭐 하면 돼?” 엄마가 짜준 스케줄에 따라 살아와서인지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할 줄 모른다. 아이들의 이런 모습은 대학을 결정할 때, 직장을 선택할 때도 계속된다. 엄마들은 대학 성적표를 받아 들고 교수에게 전화한다.

“우리 아들 성적이 왜 이렇죠?” 그리고 엄마들은 입사 면접에서 떨어진 아들의 수험표를 들고 인사과로 전화해 왜 자기 아들이 떨어졌는지 따지고, 아들이 여자친구가 생기면 자신이 만나보고 계속 사귈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한다. 엄마들의 이런 사랑(?)은 심지어 결혼 이후, 손주의 문제까지 개입하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자녀들은 나이가 들고 몸은 커졌지만 생각은 어린 ‘어른아이’로 살아간다.

환상 속의 작은 섬 네버랜드에서 살면서 더 이상 자라기를 원하지 않는 피터팬처럼 나이가 들어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고 살아가는 청년이 늘어나고 있다. ‘피터팬 증후군’이라고도 불리는 어른아이 현상은 과거 일부 부유층에 국한된 현상이었지만 저출산과 취업난의 영향으로 점점 확산되고 있다.



‘어른아이’ 점점 늘어 사회문제로 ‘피터팬 증후군’ ‘캥거루족’ ‘니트족’ ‘모라토리엄 인간’ 등 어른아이를 지칭하는 다양한 명칭이 쓰이고 있다. 젊은이들이 어른아이에 머물러 있는 걸 원하고, 어른으로 자라지 못하는 원인은 사회적으로, 개별적으로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 원인 가운데 하나는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 아닐까.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 자신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헬리콥터 엄마’가 나서서 해결해 준 경험 속에서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고 책임지는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직장 선택이나 결혼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녀를 키우는 문제까지 부모에게 기대게 된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미 글로벌한 문제가 되어버린 어른아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개별 가정 수준에서 예방주사로 효과 있는 방법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해 나갈 수 있는 방법,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선택의 결과나 책임 범위가 너무 크거나 무겁지 않아서 어릴 때도 견뎌낼 수 있는 방법이다. 마치 예방주사처럼 가볍게 경험하거나 앓아서 큰 질병이나 문제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바로 ‘용돈 교육’이다.

자녀에게 매주 또는 매월 일정한 금액을 용돈으로 지급한다. 그러면 사고 싶은 것을 사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원하는 것을 사기 위해 용돈을 아껴 저축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아이들은 선택의 어려움을 경험하고, 돈 관리의 노하우를 습득하고, 부모에게 용돈을 더 타내기 위해 지혜를 짜내기도 한다.

용돈을 통한 경제교육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정상적인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적지 않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용돈만 준다고 되는 건 아니고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 세 가지를 실행해야 한다. 우선 정기적으로 일정한 금액을 용돈으로 줘야 한다. 필요하다고 할 때마다 주는 건 아무 효과가 없다. 일정한 금액을 정기적으로 줄 때 아이들은 그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게 되고, 스스로 관리하는 방법을 익혀 나가게 된다. 처음 용돈을 주면 바로 다 써버리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은 다 써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없고 먹고 싶은 것을 사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되고 이런 과정에서 선택을 하는 경험, 선택에 대한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용돈 주는 주기는 초등학교 때는 주간 단위, 중·고등학교 때는 월간 단위가 바람직하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선택의 중요성이 커지고 관리의 노하우가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용돈은 조금 여유 있게 주는 게 좋다. 여유가 있어야 저축도 하고, 정말 원하는 걸 모아서 사는 경험도 할 수 있다.



용돈은 자녀와 소통창구 될 수도다음으로 용돈을 어디에 쓰는지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일일이 간섭하면 교육 효과를 얻기 힘들다. 아이들이 스스로 어떻게 돈을 사용해야 하는지, 어디에 어떻게 쓰는 게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인지를 스스로 아는 게 중요하다. 때로는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하면서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간다. 필자는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고 난 후 처음으로 아이들이 주는 생일선물을 받아 보았다. 그 전에는 ‘아빠, 생일 축하해요’라고 적혀 있는 편지가 전부였지만 용돈을 받은 아이들이 돈을 모으고 두 형제가 돈을 합쳐 아빠가 기뻐할 만한 선물을 고르느라 고민하고 선택해서 선물을 주는 걸 볼 수 있었다. 핵심은 스스로 해 보는 것이다. 많이 실패하고 후회하고 반성하는 경험을 할수록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용돈기입장을 기록하도록 한다. 용돈을 주면서 유일하게 아이들에게 요구할 게 용돈기입장 기록이다. 나이가 들어 소득이 생길 때 스스로 지출을 관리하고 예산을 수립하고 결산할 수 있다면 그 아이는 돈 때문에 겪는 고통 속에 빠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매월 용돈기입장을 기록한 걸 확인하고 다음 달 용돈을 주면 아이들은 기록하는 습관을 기르게 되고, 기록 속에서 체계적인 반성을 하고 계획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

아이나 어른이나 지출명세를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사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걸 알게 되고, 그 사람이 어떻게 돈을 쓰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용돈기입장은 그런 측면에서 자녀들을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된다. 용돈기입장에 적힌 지출명세는 부모들이 알기 힘든 아이들의 사생활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그 정보들은 쉽지 않은 자녀와의 소통을 도와준다.

필자는 큰아들이 용돈을 모아 아이유의 CD를 사는 것을 보면서 아들의 표현을 그대로 살리면 아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아이유님의 숭배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TV에서 아이유가 노래 부르는 모습이 나오면 큰아들을 불러 아이유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같이 감상한다. 아들의 생일이 되면 아이가 갖고 있지 않은 아이유의 CD를 사 주기도 하고, 브로마이드를 선물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필자는 큰아들에게 다른 집 아빠와는 다른 완전 멋진 아빠가 될 수 있었다.

용돈 교육은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현재 대한민국 젊은이가 겪고 있는, 이 사회가 걱정하고 있는 피터팬 증후군에 대한 가장 강력하고도 사용하기 쉬운 예방주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은 아이들이 아니라 부모들이 ‘아이들이 실패하면서 자라는 과정’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아이들의 용돈기입장을 보면서 화가 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겠지만 참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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