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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S급 인재는 누구인가? ] “원하는 입사조건 대부분 들어줘”

[삼성의 S급 인재는 누구인가? ] “원하는 입사조건 대부분 들어줘”

20년 넘게 세계에서 인재를 모아온 삼성전자는 최근 특급 인재 유치에 더욱 열중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삼성전자의 S급 인재로 영입돼 현재 근무 중인 A박사를 만나 인재 확보를 둘러싼 삼성전자 내부 이야기를 들어봤다.

A박사는 몇 년 전 삼성전자에 특채된 기술진 인재다. 그는 외국에서 공학 박사를 마친 후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해외 회사에서 단기간에 상당한 실적을 쌓았다.

그의 연구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주제를 다룬 건 아니었다. 또 거대한 연구나 대형 프로젝트에서 실적을 쌓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창조적인 해법을 내놓는 일을 종종 해낸 게 인정을 받은 것 같다”며 “거대 연구나 대형 프로젝트는 오히려 연구자 개인의 기여도를 확인하기 어려워 좋은 커리어가 못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으로 치면 부장급으로 해외에서 근무 중일 때 삼성전자 한 임원으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았다. 임원은 그와 같은 대학에서 다른 전공으로 박사를 받았던 모 직원의 소개로 전화를 걸었다며 “우리 회사를 좀 도와달라”는 말로 저녁식사를 권했다. 저녁에 만난 그 임원은 당시 고향 이야기나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 이야기, 맛있는 식당 이야기 등으로 대충 시간을 보낸 뒤 “사람 만나는 게 일이라서 보자고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다리 건너 비슷한 전공자라며 당시 발표한 논문 이야기를 묻기도 했다.

한 달 뒤 그 임원은 A박사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더 근사한 식당이 있으니 술이나 한잔하자”며 저녁에 초대했다. 임원은 그 자리에서 “삼성은 이제 보통 회사가 아니다”며 “나라를 위한 기업이 되도록 도와달라”고 본심을 털어놨다. 또 A박사에게 한국에서,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의미를 강조했다.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 가장 일을 잘할 수 있는지 자세히 물었다.

그 자리에선 파격적인 복지책이나 연봉액수를 내놓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오랜 시간을 두고 인재를 모으고 있으니 급할 것 없다”며 “충분히 시간을 드릴 테니 생각해 보고 원하는 게 있으면 기탄없이 말해 달라”는 말만 남겼다. A박사는 “그 후 직장을 옮겨 출근하기까지 3개월이 더 걸렸는데 원하는 입사 조건을 거의 대부분 들어주더라”고 회상했다.

최근 삼성전자는 이 회장의 S급 인재 확보 지시 이후 A박사에게 “S급 인재로 괜찮은 사람을 빨리 추천하라”고 재촉했다.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눈여겨봐온 사람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찾아내 리스트업하라는 것이다. A박사는 “(S급 인재로서) 내가 맡은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다른 인재를 뽑아오는 것도 중요한 실적”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A박사에게 S급 인재에 대한 기준을 알려주지 않았다. A박사도 “S급 인재로 어떤 사람을 추천해야 할지 나도 궁금하다”며 “기준을 딱히 뭐라고 말하진 않지만 다들 어느 정도 컨센서스는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는 분명히 학벌, 경력을 깡그리 무시해도 된다지만, 어느 정도 수준 있는 인사의 최소한의 요건은 엇비슷하게 마련”이라며 “추천하는 사람 자체가 이미 어느 정도 학벌과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만족하기 위한 주관적인 요건은 분명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박사는 일단 영어권 대학에서 박사를 받으면 회사 커뮤니케이션에서 유리할 것으로 봤다. 국적은 관계없고, 외국인이어도 상관없다. 한때 삼성전자가 외국인을 더 선호한 적은 있지만 외국인 비율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그런 선호 기준이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석사나 학사 등 좀 더 젊은 시절에 영미권에서 공부했다면 더욱 유리할 거라고 예상했다. 과거에는 비영미권 중 독일 대학 출신자를 선호한 적도 있었지만, 몇 년 만에 금방 인기가 시들해졌다고 한다.

A박사가 영어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는 본인의 경험 때문이다. 그는 부모의 직업 특성상 중등교육 과정부터 외국에서 학교를 다녔다. 우리말을 포함해 3개국어에 능통하다. 단순히 여러 외국어를 구사하는 수준을 넘어 외국어로 설득력 있는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는 정도다.

그는 “삼성전자 안에는 외국인 직원이 워낙 많아 영어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며 “일반적인 회화 수준으로는 논쟁 성격이 강한 토론에 감히 끼어들지 못하며 토론에서 소외되면 좋은 프로젝트를 받을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영어를 네이티브처럼 하는 A박사도 “이따금 실리콘밸리에서나 통하는 최신 유머를 따라잡지 못해 머쓱해진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전공 선택도 중요하다. A박사의 전공인 공학 분야에 한정해 살펴보면, 일단 삼성전자에서 권위자가 없는 전공이 유리하다. 비슷한 전공 분야를 중복으로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고, 있다 해도 권위자에게 밀려날 가능성이 커서다.

전공은 박사학위 논문의 키워드로 판단한다. 과거 인기 있는 전공보다는 보다 진취적인 분야를 선택한 사람이 눈길을 끈다. A박사는 “사업부(삼성전자)와 기술원(삼성종합기술원)이 각기 뽑으려는 인재의 전공을 다소 엇갈리게 잡아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만든다”고 전했다. 경력은 좀 더 결정적이다. 박사를 받고 다른 연구소 등에 들어가 있던 사람보다는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회사에서 일한 경력이 먹힌다. 대략 10년 정도 근무한 40대 초중반이 주요 영입 대상이다.

삼성전자를 그만두고 모 대학으로 옮긴 B교수는 “세월이 지남에 따라 인정받는 경력 수준도 변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20여 년 전 삼성전자 설립 초반기에는 미국 박사가 부장으로 바로 영입됐다. 10여 년 전 회사가 도약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미국 박사이면서 유명 회사 경력이 있어야 부장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최근에는 부장급 중에서도 고참부장이나 임원급이 돼야 S급 인재 후보로 이름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지위가 상당히 올라갔고 외국 기업에 젊은 임원이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직전 직장에서 일하면서 얻은 특허를 가진 사람은 이직이 다소 까다롭다. 특허 소유 관계 때문에 삼성이 데려오는 데 따른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B교수는 “전에는 전자 쪽 중요 특허를 가진 사람을 주로 천거했는데, 이제는 특허 이전 문제를 미리 해결했거나 특허를 오롯이 개인이 소지한 사람을 바라는 편”이라고 말했다.

A박사가 새로운 후보자를 물색하는 방법은 해당 분야 저널이나 해외 유명 미디어의 인터뷰를 통해서다. 그는 “굳이 수준을 제시하자면 IEEE펠로에 이름을 올릴 정도가 S급 후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전기전자학회 석학회원을 의미하는 ‘IEEE펠로’는 IEEE 회원 상위 0.1% 내에 있는 회원에게만 부여하는 최고 등급이다. 반도체, 전기, 전자 등 각 분야에서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회원 가운데 탁월한 자질과 연구개발 업적으로 사회 발전에 기여한 사람 중에 선정한다. 삼성전자 현직 임원 중에도 IEEE펠로는 흔한 편이다.

해외 미디어에 한번쯤 이름이 올랐다고 S급 후보는 될 수 없다. 그가 속한 분야 학회의 활동 상황, 최근 논문 및 상벌 상황을 꼼꼼히 살펴본 뒤 월드와이드급 실적을 다년간 유지해야 S급 후보가 될 수 있다.

삼성전자 기술직군의 연구직원 C과장은 “회사 직원 대부분이 저마다 프라이드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웬만큼 뛰어나서는 S급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면서 “다른 사람에 대해 평가할 시간에 맡은 일 열심히 해서 사내 경쟁에서 자신이 이기겠다는 생각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촉망받는다는 여러 인재도 삼성전자에 들어왔다가 무참히 깨지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신임 부장이 실무능력이나 기술이 부족하면 과장들이 회의 자리에서 정면으로 반박해 창피나 면박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 사정에 어두운 해외 유학파가 이론만 제시하며 회의를 끌어가다 강한 비난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연구 현장에서 오랫동안 실무를 쌓은 과장급 이하 직원들의 기세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 말씀은 몇 년 전 어떤 학회 프로시딩(발표논문집) 몇 페이지 몇째 줄에서 누가 제시했다가 이런저런 문제로 오류를 인정한 건데, 논문을 끝까지 안 읽어보셨어요? 실험 한 번 해보면 다 아는 거 아닌가요?’라는 식이다. 영원한 S급 인재가 없다는 이야기다. 삼성전자 사람들이 생각하는 ‘S급 인재’에 대한 기준은 여러 가지다. 그러나 S급 인재라는 게 입사할 때나 회자되는 이야기일 뿐 입사 후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언제든 S급 타이틀을 잃어버린다는 건 공통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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