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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e-커머스 제왕 글로벌소시스 멀 힌리치 회장

[ceo] e-커머스 제왕 글로벌소시스 멀 힌리치 회장


B2B 전자상거래 사이트 세계 최초 개발…1980년대 삼성·현대 세계시장 홍보창구로 활용
멀 힌리치 글로벌소시스 회장은 9월 21일 조선호텔에서 가진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B2B 전자상거래의 원조는 글로벌소시스”라고 말했다.

‘그는 e-커머스(전자상거래) 업계의 제왕이자 거인이다.’ 1999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례적으로 낯선 인물을 크게 다뤘다. B2B(기업 간 거래) e-커머스 업체 글로벌소시스의 멀 힌리치(Merle A. Hinrichs·70) 회장이 주인공이었다. B2B e-커머스를 대표하는 이는 누가 뭐래도 알리바바닷컴의 잭마(Jack Ma) 창업자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꼽는 사람도 있다. ‘IT투자의 귀재’ 손 회장은 2000만 달러(약 234억원)를 투자해 알리바바닷컴을 세계 최대 B2B 사이트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힌리치 회장은 대체 누구기에 잭마, 손 회장을 제치고 ‘e-커머스의 제왕’이라는 찬사를 받는 걸까.

글로벌소시스 한국지사 설립 40주년을 맞아 올해 9월 19일 한국을 방문한 힌리치 회장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내가 B2B e-커머스를 개발·론칭했다”고 말했다. 그는 1996년 B2B e-커머스 ‘아시아소시스’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오픈했다. 잭마가 알리바바닷컴을 창업한 때보다 3년 빠르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온라인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하면 제품이 아니라 회사가 나왔다. 효과적이지 않았다. 바이어가 원하는 건 사명(社名)이 아니라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상품 중심의 e-커머스 사이트인 ‘아시아소시스’가 론칭된 후 국제무역 웹사이트의 기준도 같은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는 “글로벌소시스가 원조라면 알리바바닷컴은 복제품(copy)”이라고 말했다.



알리바바닷컴은 글로벌소시스의 복제품글로벌소시스는 바이어(기업)에게 구매정보(제조사·상품설명·연락처)가 담긴 자료를 제공하는 B2B 기업이다. 핵심사업은 e-커머스다. 알리바바닷컴·EC21과 함께 세계 B2B e-커머스 ‘빅3’로 꼽힌다. 지난해 매출은 1억9665만 달러(약 2315억원)로 알리바바닷컴(2억3310만 달러)과 비슷하다.

글로벌소시스는 매거진·무역쇼·콘퍼런스 등 다양한 오프라인 채널도 있다. 이를 통해 세계 240여 개국 바이어에게 상품을 연결한다. 상품을 제공하는 등록업체는 26만2000곳에 달한다. 국내기업은 경진일렉트론(헤드셋)·쓰리쎄븐(손톱깎이)·코콤(홈네트워크)·모텍스(전자저울) 등이 있다. 힌리치 회장은 ‘브랜드는 약하지만 기술력 있는 기업’ 발굴에 힘을 쏟는다. 1966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기술력 있는 업체를 찾기 위해 중소기업 CEO들과 ‘릴레이 짜장면 회담’을 열기도 했다.

그가 ‘무명(無名)의 소기업’에 관심을 갖는 건 불우한 어린 시절과 무관치 않다. 그의 부친은 영세 축산업자였다. 어려운 환경 탓에 그는 공부도, 운동도 맘놓고 할 수 없었다.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소에게 밥을 줘야 했는데, (내게) 무슨 기회가 있었겠는가”라며 “기회를 스스로 만들기 위해 죽도록 공부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누구에게든 공평하게 기회를 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빼어난 기술이 있어도 이런저런 이유로 기회를 찾지 못하는 영세기업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는 미 네브래스카대에서 경영학·수학을 전공했다. 매학기 장학금을 받았을 정도로 ‘공부벌레’였다. B2B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 선더버드대 MBA대학원에서 국제무역을 전공하면서다. 그는 “석사과정을 밟을 때 영세기업 제품을 큰 기업에 소개할 수 있는 B2B 사업에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1971년 가족과 친구에게 자금을 빌려 글로벌소시스를 창업했고 B2B 사업에 승부를 걸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자금도 부족한데 사업 방향까지 잘못 잡았다”는 이유였다. 그럴 만도 했다. 당시는 B2B보다 B2C(기업과 소비자 거래)가 주목 받고 있었다.

힌리치 회장에겐 ‘비장의 카드’가 있었다. 아시아였다. “선더버드대 MBA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잠시 일본에서 일한 적 있다. 기업 매거진 ‘임포터(Importer)’를 발행하는 회사였는데, 일본은 물론 한국 제품의 뛰어난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 ‘세계시장에 잘 알려지지 않은 아시아 제품을 소개하면 성공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의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아시아 기업의 제품을 미국·유럽 기업에 연결하면서 글로벌소시스는 성장의 물꼬를 텄다. 글로벌소시스를 발판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도 있다. 삼성전자는 1980년대 글로벌소시스가 발행하는 매거진 ‘일렉트로닉스 컴포넌츠(Electronics Components)’를 국제 홍보창구로 활용했다.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도 같은 시기 글로벌소시스의 등록업체였다. 힌리치 회장은 “삼성전자는 현재 세계에서 둘째로 큰 스마트폰 제조사로 우뚝 섰다”며 “삼성전자의 성장에 일조한 것 같아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글로벌소시스의 중심은 지금도 아시아다. 중국에만 40개 지사가 있고, 마닐라·방콕·홍콩·싱가포르·인도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힌리치 회장은 “나는 아시아 B2B 업계의 할아버지”라며 “아시아 곳곳에 숨어 있는 뛰어난 기업과 제품을 발굴하는 게 임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그가 아무 기업에나 기회를 주는 건 아니다. 글로벌소시스의 등록업체가 되려면 무엇보다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는 글로벌소시스에 등록된 업체의 제품이 국제규격에 맞는지, 품질·AS기준을 충족하는지를 꼼꼼하게 따진다. 글로벌소시스에는 등록업체를 다시 검증해 솎아내는 조직까지 있다. 힌리치 회장은 “돈을 벌기 위해 등록업체를 무분별하게 늘리면 거짓정보가 난무할 가능성이 크다”며 “기업과 기업을 연결하는 글로벌소시스 같은 업체의 평균 생존율이 5년 미만인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혁신의지가 기업 성공의 포인트그가 등록업체를 선별하는 기준은 또 있다. 혁신의지다. 힌리치 회장은 “혁신의지가 없는 기업의 제품은 볼 것도 없다”며 “글로벌소시스도 혁신하지 않았다면 문을 닫았을 것”이라고 했다. “1966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대부분의 한국 업체는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을 하고 있었다. 지금 한국 기업을 보면 ‘아! 이렇게 성장할 수도 있구나’ 싶다. 혁신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다. 방심할 때는 아니다. 많은 중국 기업은 지금 혁신에 힘을 쏟고 있다. 중국 기업이 한국처럼 성장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힌리치 회장에게 물었다. “e-커머스 업계의 제왕이라는 별칭이 좋은가, 아니면 e-커머스의 선구자라는 평가가 좋은가.” ‘혁신주의자’를 자칭하는 그를 시험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그는 1초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 “업계에서, 회사에서, 집에서 나를 부르는 별명은 다를 수밖에 없다. 친구들 사이에서 내 별명은 ‘대부(Godfather)’다. ‘제왕’이라는 별명은 중요하지도, 의미도 없다. 제왕은 언제든 바뀔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선구자는 다르다. 사람들은 언제나 ‘최초’만 기억한다.” 우문현답이었다.

이윤찬 이코노미스트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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