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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기기 사고파는 ‘디지털 재테크’ - ‘디지털 쓰레기’ 돈 받고 판다

중고 기기 사고파는 ‘디지털 재테크’ - ‘디지털 쓰레기’ 돈 받고 판다

중고전자제품 전문 매장 팝니다닷컴 ‘홍대점’의 내부모습.

직장인 박성현(가명·27)씨는 얼마 전 청소를 하다 대학 시절에 쓰던 CD플레이어를 발견했다.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 2년 넘게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CD플레이어뿐만 아니었다. 용량이 1GB 밖에 되지 않는 MP3플레이어, 구형 휴대용 미디어 플레이어(PMP), 무겁고 뚱뚱한 초창기 시절의 디지털카메라까지 구석에 팽개친 디지털 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구형 휴대폰은 3개나 됐다. 흠집이 조금 있긴 했지만 모두 작동은 됐다. 버리자니 아깝고 또 이대로 두면 몇 년간 방치할 게 뻔했다. 그래도 살 때는 10만원에서 50만원까지 주고 구매한 제품들인데 말이다.



중고 제품에 AS보증서 발급하기도박씨와 비슷한 상황인 사람이 많을 것이다. 휴대용 전자기기는 하루가 다르게 새 제품이 나온다. 몇 달만 써도 구형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버리긴 아깝지만 쓰기도 애매한 이들 제품을 얼마라도 받고 팔 수는 없을까? 중고 가전매장이 모여있는 서울 청계천 근처의 전자상가를 찾아가 봤다. 상가 곳곳에 빈 가게가 눈에 띄었다. 어렵게 소형 가전을 취급하는 매장 몇 곳을 찾았다. MP3플레이어, CD플레이어, 전자사전 몇 개가 진열돼 있다. 가지고 간 물건을 팔 수 있느냐는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CD플레이어는 만원 정도 받고 팔고, 나머지 MP3나 PMP는 팔기 힘드니 웬만하면 그냥 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자상가에서 10년 넘게 장사를 하고 있는 추교철씨는 “중고 물품 거래와 가전제품 수리를 병행하면서 먹고 살았다”며 “디지털 기기는 수리가 어렵기도 하지만 수리해서 쓰려는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전자상가에서 소형 가전 취급점이 줄고 있는 이유다.

올 3월 문을 연 중고 디지털기기 전문 매장 ‘팝니다닷컴’은 다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인기가 좋다. 작동이 되는 제품은 모두 매입한다는 게 이 매장의 원칙이다. 팝니다닷컴의 문홍주 팀장은 “256MB 용량의 MP3플레이어도 구매해 되팔았다”며 “부품만 따로 모아 고물장터(모든 물건을 1000원에 판매하는 코너)에 놓고 팔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단 매입하면 시험작동을 거치고 필요하면 수리를 한다. 사람들이 믿고 물건을 구매할 수 있도록 6개월~1년까지 AS보증서도 발급해 준다. 팝니다닷컴에서는 CD플레이어 1만5000~3만원, MP3플레이어 5000~1만원, 디지털카메라 3만~8만원 정도에 매입한다. 판매가는 매입가에서 1만원 정도 더 붙은 가격이다.

온라인에서도 중고 디지털 기기를 팔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 주로 중고나라(www.junggo.co.kr)나 뽐뿌(www.ppomppu.co.kr) 같은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거래가 활발한 편이다. 중고나라의 경우 하루 방문객만 7만명이 넘을 정도로 중고거래가 활발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오가는 만큼 사기를 당할 위험도 적지 않다. 또 이들 사이트에선 디지털기기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물건을 거래하기 때문에 적당한 가격을 정하기도 쉽지 않다.

합리적인 가격정보를 제공받으려면 분야별 전문 사이트를 이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음향기기, 휴대폰, PMP 등 분야별 전문 사이트에서는 제품의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중고 거래 게시판에선 거래를 한다. 게시판에 내가 가진 디지털기기의 모델명을 입력하면 어느 정도 가격 선에서 거래가 되는지 알 수 있다. 정해진 가격은 없지만 대체로 오프라인보다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CD플레이어의 경우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최상급 제품이라도 3만원 넘게 받기가 힘들다. 하지만 온라인 사이트에선 제품의 상태에 따라 3만~1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또 인기 있는 특정 모델의 경우 구형 CD플레이어라도 10만원 넘게 거래되고 있다. 온라인 매매 가격은 희소성이나 소장 가치에 따라 결정될 때가 많아서다.

절차가 번거롭다는 것은 단점이다. 온라인 중고장터에서 어느 정도 가격 협상이 이뤄지고 나면 지불방식과 거래방식을 놓고 다툼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물건을 받고 입금을 하지 않거나, 돈만 받고 물건을 보내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또 막상 물건을 받았는데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흠집이 많은 경우도 있다. 그래서 택배 거래를 할 것인지 직접 거래를 할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온라인 중고장터를 자주 활용하는 이상훈(28·서울 장충동)씨는 “거래를 하는 상대방의 아이디를 검색해서 예전 거래 기록을 살펴 문제가 없었는지 알아보는 게 도움이 된다”며 “부득이하게 택배 거래를 할 때에는 제품 사진을 찍어서 보여달라고 하는 게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제값을 받기 위해 기억할 게 있다. 우선 기본적으로 제품의 상태가 좋아야 한다. 팝니다닷컴 문홍주 팀장은 “겉이 깨끗한 제품이 잘 팔리는 게 당연하다”며 “몇몇 제품에는 도색작업을 해서 팔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주변 기기를 잘 갖추고 있어야 한다. 특히 단종된 제품의 경우 어댑터, 충전기, 리모컨 같은 주변 기기는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다. 주변 기기 유무에 따라 가격이 두 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이다. 제품 구입 때 포장에 쓴 박스나 사용설명서도 잘 보관하고 있으면 되팔 때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주변 기기 잘 갖춰야 높은 가격 받아팝니다닷컴 백윤준 이사는 “역설적이지만 얼리어답터가 되지 말라”고 말한다. 새로운 디지털기기의 보급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이다. 새로운 물건을 구매해도 ‘얼리어답터’ 소리를 듣는 건 2개월 남짓에 불과하다. 더욱이 잠깐 등장하고 수요가 줄어든 MD플레이어처럼 시장에서 금방 사라지는 제품을 구입할 수도 있다. 백 이사는 “새 제품이 나오면 기존 제품 가격이 급락하게 마련이므로 사양이 한 단계 낮은 제품을 사는 것도 생활의 지혜”라고 덧붙였다. 비슷한 중고 물품부터 구매해 사용해보고 새 제품을 사는 것도 ‘디지털 재테크’의 한 방법이다.

디지털 재테크는 환경을 지키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무용지물이 되는 휴대용 전자제품이 갈수록 늘고 있어 자연스럽게 ‘전자 쓰레기’의 배출량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환경부가 추정한 지난해 폐가전 제품 배출량은 58만t에 이른다. 해마다 5.5% 비율로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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