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Trend] 우리 시대 푸어들의 슬픈 자화상

[Trend] 우리 시대 푸어들의 슬픈 자화상

푸어들의 전성시대다. 가난을 뜻하는 푸어(Poor)라는 단어가 조합된 용어가 난무하고 있다. 집만 있고 금융자산이나 소득은 적은 하우스 푸어(House poor), 156만 가구에 550만명이나 되는 사람이 집 살 때 받은 대출이자와 원금을 갚아나가느라 가난하게 살고 있다. 하루 종일 일을 열심히 하지만 가난한 생활을 면하지 못하는 워킹 푸어(Working poor), 낮은 임금 때문에 풀타임으로 일해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아간다. 나이가 들어 은퇴하고 아무런 노후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실버 푸어(Silver poor)라는 말도 생겼다. 넉넉한 연금을 받으면서 은퇴하는 외국노인들, 정년 연장을 반대하는 그들과 달리 우리나라의 실버 푸어들은 늙어서도 일하고 싶어 하고,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가난하다.



하우스 푸어 156만 가구우리 사회에 속해 있는 가난한 사람의 다양한 모습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우울하게 한다. 우리의 가족, 형제, 이웃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최근 이 땅의 젊은 30대, ‘허니문 푸어(Honeymoon poor)와 베이비 푸어(Baby poor)’에 대한 이야기가 인터넷을 달구었다. 치솟은 전세가와 감당하기 힘든 결혼비용 때문에 결혼과 함께 이들은 가난해졌다고 한다. 결혼 전에는 데이트도 하고 문화생활도 즐기면서 살았지만 전셋집 구하느라 대출을 받았고, 결혼비용 때문에 대출을 받아 신혼부터 빚 갚는 전쟁을 치르느라 아이 낳을 생각은 엄두도 못 낸다고 한다. 이들이 바로 허니문 푸어들이다. 이들이 아이를 낳으면 더 심각한 베이비 푸어가 된다.

아이가 생기면서부터 각종 검사에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고, 아이가 태어나면 아기 침대, 수입 유모차 등 감당하기 힘든 유아용품의 가격 때문에 가난하게 산다고 한다.

허니문 푸어와 베이비 푸어는 이 땅의 루저(loser)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스펙을 쌓으면서 대학을 다녔고, 바늘구멍보다 좁다는 취업을 문을 뚫고 당당한 사회인이 되었고, 결혼에 성공해서 가정을 이룬 이 땅의 보통 젊은이들 이야기다.

30대 후배 직원들과 이 문제를 놓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늦어지는 취업, 늦어지는 결혼, 주위의 시선과 한번뿐인 결혼식을 멋지게 치르고 싶은 소망, 신혼여행에 대한 미혼 직원들의 기대, 구차하게 신혼살림을 시작하고 싶지 않은 바람 등 대한민국 30대들이 왜 허니문 푸어가 되어 가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뒤 이어 아이를 갖게 되면서 맞벌이를 중단하게 되고, 하나밖에 낳을 수 없는 현실에서 그 아이에 대한 사랑이 고가의 유아용품, 수입 유모차에 눈길이 가게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후배들의 이야기에 수긍을 하면서도 ‘인생 선배의 조언’이라고 주장하는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현실과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세대가 달라도 공감이 된다. 갑자기 올라버린 전세가격에 대한 당황스러움은 집이 없는 40대들도 같이 겪고 있는 문제고, 만혼이 대세인 시기에 한번뿐인 결혼식을 기억에 남는 멋진 이벤트로 꾸미고 싶어 하는 마음, 아이들 하나 키우기 힘든 현실도 모두 공감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오늘의 30대가 누리고 있는 삶의 질이 이전 세대가 누렸던 것보다 훨씬 못한 삶인가. 내가 결혼하던 시기에도 호텔이나 고급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 가난했던 친구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젊은이들은 그 이야기를 모두 자신의 이야기로 생각하고, 그렇게 하지 못할 때는 가난함에 슬퍼한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자녀가 생기면 친정이나 처가에서 산후조리를 했다. 산후조리원을 찾는 사람들은 그런 상황이 안 되는 일부분에 불과했다. 요즈음은 많은 젊은이들이 고가의 산후조리원을 자신의 이야기로 생각한다. 외제 유모차와 옷, 신발, 아기침대 등 고가의 유아용품들도 마찬가지다. 집안에 언니가 있으면 물려받았고 주변에 돌잔치를 치른 사람이 있으면 뭐 얻을 것 없는지를 살피면서 돌 반지 비용 본전을 뽑으려고 했다. 이전 어느 세대도 호텔에서 결혼하고, 풀바가 있는 고급 리조트로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방이 2, 3개 있는 아파트에서 시작하면서 부자가 될 수는 없었다. 아이들에게 수입유모차를 태우고, 고가의 아기 침대를 사고, 영어유치원에 보내면서 부자로 살 수 있는 세대는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눈앞의 이벤트에 지출 줄여야서로의 이야기 끝에서 찾은 해답은 희망 찾기다. 문제는 하우스 푸어도 아니고 허니문 푸어도 아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호프 푸어(Hope Poor)가 문제고 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현실이 가장 심각하다. 하우스 푸어들은 대출금과 점점 하락해가는 주택가격을 보면서 희망을 잃어버렸고, 젊은 워킹 푸어들과 허니문 푸어, 베이비 푸어들은 자신들의 선배나 부모세대가 누렸던 성장과 풍요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잃어버렸다.

어떻게 해야 길어지는 푸어들의 대열을 중단시킬 수 있을까? 희망을 복원할 수 있을까? 지금처럼 살면 젊은 세대들의 끝은 실버 푸어다. 88만원세대, 허니문 푸어, 베이비 푸어를 거쳐 교육에 올인하는 에듀케이션 푸어(Education poor)를 지나 실버 푸어로 가는 고리를 끊는 것은 결국 삶의 프레임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한번뿐인 결혼식이기에 화려하게 치르는 것이 아니라 한번뿐인 삶이기에 검소한 결혼식을 치르고 절약한 돈으로 신혼집 마련하는 데 보태거나 투자의 종자돈으로 삼는 것, 하나밖에 없는 아이이기에 고가의 유아용품과 수입 유모차를 사는 것이 아니라 물려 받고 물려주면서, 알뜰하게 키우면서 아이의 꿈을 지켜줄 수 있는 통장을 아이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결혼식 비용을 줄이고, 허니문 여행을 검소하게 치르면 돈이 생긴다. 원래 돈이 없으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경제적인 상황에 맞지 않는 과소비를 하면 누구라도 가난해진다. 결혼식 비용을 줄인 돈을 집구하는데 쓰면, 투자의 종자돈으로 쓰면 허니문 푸어는 줄어들 것이고, 가난의 고통은 견뎌낼 수 있을 만큼이 된다. 아이들의 출산용품을 알뜰하게 구입하고, 형제들에게, 지인들에게 물려받으면 돈이 생긴다. 그 돈은 몇 년 뒤에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 해외여행에 쓸 여행자금이 될 수 있고, 아이의 대학등록금이 될 수도 있고, 집을 넓히는 요긴한 종자돈이 될 수도 있다.

눈앞에 닥친 이벤트가 아니라 인생 전체를 놓고 돈, 소비, 저축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이어지는 가난의 고리를 끊고 희망을 씨앗을 만들어 가는 결정과 행동이 필요하다. 허니문 푸어, 베이비 푸어에서 에듀케이션 푸어, 실버 푸어로 이어지는 삶의 끝을 생각해 보면 끔찍하다. 지금 벗어나지 못하면 결국 그런 삶을 살게 된다. 선배로서, 조금 있으면 청년이 될 아들을 둔 이 시대 가장으로서 가난한 연인들과 가난한 신혼부부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풀기 어려운 숙제를 떠맡겨버린 부담과 미안함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간절한 것은 가난의 사슬 끊기를 결심하기 바라는 마음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 日기시다 "북일 간 성과를 내는 관계 실현은 쌍방 이익에 합치"

2삼성 반도체 매출 세계 1→3위로 추락…인텔·엔비디아 선두로

3“먹는거 아닙니다, 귀에 양보하세요”…품절대란 ‘초코송이’ 이어폰 뭐길래

4마침내 ‘8만전자’ 회복…코스피, 2800선 돌파 기대감 ‘솔솔’

5최태원 SK 회장 둘째딸 최민정, 美서 헬스케어 스타트업 차렸다

6 이재명 인천 유세현장서 흉기 2개 품고 있던 20대 검거

7영천 최무선과학관, 새단장하고 오는 30일부터 운영 재개

8조각 투자 플랫폼 피스, ‘소비자 추천 글로벌 지속가능 브랜드 50′ 선정

9어서와 울진의 봄! "산과 바다 온천을 한번에 즐긴다"

실시간 뉴스

1 日기시다 "북일 간 성과를 내는 관계 실현은 쌍방 이익에 합치"

2삼성 반도체 매출 세계 1→3위로 추락…인텔·엔비디아 선두로

3“먹는거 아닙니다, 귀에 양보하세요”…품절대란 ‘초코송이’ 이어폰 뭐길래

4마침내 ‘8만전자’ 회복…코스피, 2800선 돌파 기대감 ‘솔솔’

5최태원 SK 회장 둘째딸 최민정, 美서 헬스케어 스타트업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