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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ituary] 박태준 1927~2011 강철거인 잠들다

[Obituary] 박태준 1927~2011 강철거인 잠들다

12월 2일 포스텍(옛 포항공대)에서는 청암 박태준의 조각상 제막식이 있었다. 평소 즐겨 입던 코트와 중절모를 쓴 청암 동상 앞에는 이런 문구가 헌정됐다.

‘鋼鐵巨人(강철거인), 敎育偉人(교육위인) 朴泰俊(박태준) 博士(박사)’.

제막식 날 청암은 그곳에 없었다. 병상에서 사경을 헤맸다. 그리고 별이 졌다. 2011년 12월13일 오후 5시 20분. 향년 84세.

쇳물보다 뜨거운 생이었다. 군인으로 살던 그가 ‘철(鐵)의 사나이’로 변신한 것은 불혹 나이였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제철소를 맡으라”라는 특명을 받는다. 일본에서 돈을 빌렸다. 대일청구권 자금이다. 영일만 벌판에서 그는 그 유명한 사자후를 토했다. “우리 조상의 혈세로 짓는 제철소입니다. 실패하면 조상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 목숨 걸고 일해야 합니다. 실패하면 우리 모두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합니다.”

5년 후 첫 제품이 출하됐다. 제철보국의 신화는 그렇게 시작했고, 1992년 10월 박태준은 박 전 대통령 묘소에 섰다. 조강생산 2000만t을 돌파한 해였다.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는 불모지에서 용광로 구경조차 해본 일이 없는 39명의 창업요원을 이끌고 포항의 모래 사장을 밟았을 때는 각하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자본과 기술을 독점한 선진 철강국의 냉대 속에서 국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한숨 짓기도 했습니다. … 저희는 철강입국의 유지를 받들어 흔들림 없이 오늘까지 일해 왔습니다. 포항제철은 세계 3위의 거대 철강기업으로 성장했으면 우리나라는 6대 철강국으로 부상했습니다. … 혼령이라도 계신다면, 불초 박태준이 결코 나태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25년 전의 그 마음으로 돌아가 잘사는 나라를 위해 매진할 수 있도록 굳게 붙들어 주시옵소서.”

2004년 소설가 이대환씨가 8년에 걸친 작업 끝에 낸 평전 『세계 최고의 철강인 박태준』에 따르면, 청암의 부친인 고 박봉관 옹은 간명한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울지 마라. 열심히 살고 간다.” 청암 역시 그런 삶을 살았다. ‘짧은 인생을 조국에’ 받쳤다. 54세 나이에 입문한 정치는 그에게 상처였지만, 그렇다고 청암이 남긴 업적과 정신이 훼손될 수는 없다. 전국 8곳에 설치된 분향소를 찾은 5만 여명의 조문객이 그렇게 말한다.

그는 짧은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포스코가 국가경제 동력으로 성장한 것에 대해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더 크게 성장해 세계 최고가 되길 바란다.” 어디 포스코뿐이겠는가.





청암 박태준이 살아온 길


1927년 경남 동래 출생

1945년 일본 와세다대 공대 진학

1946년 와세다대 기계공학과 2년 중퇴

1948년 남조선경비사관 학교(육군사관학교 전신) 6기

1954년 육군대학 수석 졸업, 결혼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1963년 육군소장으로 예편

1964년 대한중석 사장

1967년 종합제철건설사업추진위원장에 임명

1968년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초대 사장 취임

1970년 포항1기 건설착공, 열연공장, 중후판공장 착공.

1972년 영일만 증후판공장 준공, 첫 제품 출하.

1973년 제1고로 첫 출선 성공, 일관 종합제철공장 완공

1981년 포철 초대 회장 취임, 제11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당선(민정당)

1985년 포항공대 설립 착수

1990년 민정당 대표 취임

1992년 광양 4기 설비 종합준공, 포스코 명예회장 추대, 민자당 탈당

1993년 포철 세무조사로 해외 유랑

1997년 귀국, DJP 연대, 자민련 총재 취임

2000년 국무총리 취임과 사임, 포스코 민영화 완료

2001년 폐 밑 물혹 제거수술, 포철 명예회장 재위촉

2008년 포스코청암재단 이사장

2011년 12월 13일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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