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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C의 에버랜드 투자 - ‘묘책’인가 ‘실책’인가

KCC의 에버랜드 투자 - ‘묘책’인가 ‘실책’인가

‘삼성카드 울고, KCC 웃었다’. 12월 12일, 삼성카드가 보유한 삼성에버랜드 주식 17%(42만5000주)를 KCC에 팔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나온 시장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삼성카드가 에버랜드 주식을 너무 싸게 팔았다는 게 이유다. 과연 그런가.

삼성카드가 KCC에 매각할 지분은 주당 182만원이다. 금액기준으로 7739억원이다. 이 가격을 두고 증권가에서는 ‘실망스러운 가격’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물론 삼성카드나 삼성카드 주주 입장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삼성카드 측은 “에버랜드의 회사 가치, 환금성이 낮은 비상장주식에 대한 유동성 할인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헐값 매각 논란은 설득력 없어에버랜드 1주의 장부가는 214만원이다. 삼성카드가 8월에 에버랜드 주식·부동산 자산을 고려해 반기 보고서에 산정한 것이다. 이번에 결정된 매각 가격 182만원은 장부가 대비 14.5% 낮다. ‘헐값 논란’이 나온 이유다. 하지만 따져 볼 게 많다. 에버랜드는 비상장 주식이다. 삼성 오너 일가와 계열사가 86%를 보유하고 있어 시중에 유통되지도 않았다. 주식값을 측정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동안 증권가에서는 에버랜드 주당 가치를 250만~300만원 정도로 추정했다. 하지만 이는 에버랜드가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라는 프리미엄과 향후 기업공개(IPO)를 염두에 둔 가격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다른 요인은 제외하고) 에버랜드의 재무제표만 본다면 이번 거래 가격이 낮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에버랜드는 매출 2조2186억원, 영업이익 1623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카드 또는 삼성그룹 입장에서 보면 이번 거래는 협상력이 떨어지는 게임이었다. 삼성카드는 2007년 8월 개정된 금산법(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에 따라 내년 4월까지 에버랜드 지분 25.6% 중 20.6%를 팔아야 했다. 기한 내에 지분을 매각하지 않으면 과징금(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하루 3억원 정도다. 또한 삼성그룹이 2008년 초 4~5년 내에 순환출자 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밝힌 이상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울러 삼성카드는 9월에 지분 매각을 본격화하면서 기업공개 계획이나 주식매수청구권(풋 옵션)을 포함하지 않았다. 이번 KCC와의 거래에도 이 원칙이 그대로 적용됐다는 것이 삼성카드 측 설명이다. 다시 말해 지분을 사는 제 3자 입장에서는 단기간 내 투자 회수가 어렵다는 리스크가 있다. 여기다 다량의 지분을 한꺼번에 파는 블록딜은 대게 4~6%, 많게는 10% 정도의 할인율이 적용되는 게 관례다. 15% 할인이 그리 과도한 게 아니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가격이라는 얘기다. 익명을 원한 삼성카드의 한 임원은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가격에 팔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장이 간과한 요인도 있다. 장부가격은 고정된 게 아니다. 자산 가치에 따라 변한다. 에버랜드 주식의 가치는 삼성생명 주가와도 관련이 있다. 에버랜드는 이건희 회장(20.76%)에 이어 삼성생명의 2대 주주(19.34%)다. 삼성생명 주가는 올 상반기 9만~11만원 사이에서 움직였다. 최근 3개월간 주가는 8만~9만원, 12월 15일 종가는 8만3500원이다. 연중 최저 수준이다. 이에 대해 삼성카드 현성철 경영지원실장(부사장)은 “상장 이전 에버랜드의 가치는 삼성생명 주식가치와 연동한다”며 “삼성생명 주식 가치가 많

이 떨어지는 바람에 장부가보다 많이 떨어졌다”고 밝혔다.

오히려 KCC의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범 현대가인 KCC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에버랜드 2대 주주가 됐다는 것 자체도 파격적이지만, 시장에서는 ‘왜’라는 의문을 거두지 않고 있다. 투자 목적이나 회수 방안 모두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KCC가 무수익 자산에 과도한 투자를 한 셈”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하나대투증권 이정현 연구원은 “자기자본의 14.2%, 시가총액의 25.9%에 해당하는 거액을 시너지 효과를 위해 투자한다고 보기에는 이해되지 않는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양사가 밝힌 대로라면 이번 ‘빅딜’은 단순한 지분투자인데, 확실한 수익률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점이 시장의 의혹을 부추기는 것이다. 12월 14일 국제신용평가사인 S&P(스탠더드 앤드 푸어스)는 “에버랜드 지분인수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부족하고 인수한 지분에 대한 향후 계획을 예측하기 어렵다”며 “(이번 투자가) KCC의 취약한 기업지배구조를 보여주고 있다”고 일침을 놨다. 다음날 무디스는 “에버랜드 지분 인수는 시너지 효과가 제한적이고 유동성을 약화시킬 수 있어 KCC 신용도에는 부정적”이라고 밝혔다.

KCC가 밝힌 투자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에버랜드 주식의 미래 가치에 대한 수익 기대, 페인트·건자재·카드 등 주력 사업 관련 삼성그룹과의 시너지 효과, 바이오·신재생에너지 분야 진출이다. 삼성그룹 측은 “KCC는 재무투자자(FI)로 보면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KCC는 차익은 물론 사업 확대까지 바라본 전략적투자(SI)라는 얘기다. 종합해 보면, 삼성그룹은 순환출자의 고리를 끊으면서 안정적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할 수 있는 파트너를 고른 것이다. KCC는 단기적으로 삼성그룹과의 사업 관계를 강화하고 에버랜드가 상장되면 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는 ‘윈-윈’이라는 게 양사의 입장이다.



에버랜드 1년 동안은 상장 불가향후 시장의 관심은 ‘에버랜드 상장’에 쏠릴 것으로 보인다. 에버랜드의 수익성이나 성장성, 그룹 내 위상 등을 감안할 때 지금도 상장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게 증권가의 대체적인 평이다. 삼성카드가 보유한 8.6% 지분 중 금산법 적용을 받는 나머지 지분 3.6%를 매각해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25.1%), 이부진 호텔신라·에버랜드 사장(8.37%),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8.37%),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3.72%) 등 삼성그룹의 지분율이 67.68%에 달하기 때문에 경영권 유지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 또한 범 현대가인 KCC가 삼성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인 에버랜드의 2대 주주 지위를 장기간 유지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경영권이 없는 대량의 지분을 사들인 KCC 입장에서 IPO 외에는 투자를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는 점도 ‘에버랜드 조기 상장설’를 뒷받침한다. 시장에서는 ‘에버랜드 상장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성급한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삼성카드가 지분을 매각하면서 에버랜드의 최대주주는 이재용 사장으로 변경됐다. 법적으로 상장심사 청구일 이전 1년 동안은 최대주주 변경이 금지돼 있다. 당분간 에버랜드 상장은 수면 밑에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최대 관건은 삼성그룹이 에버랜드의 지주사 전환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추진하느냐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야 KCC의 이번 투자가 ‘묘책’인지 ‘실책’인지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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