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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은 지금 - 변화와 개혁의 신호탄으로 기대

탈북자들은 지금 - 변화와 개혁의 신호탄으로 기대

탈북자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천안함 사건을 담은 DVD와 대북전단을 북으로 날려보내고 있다.

“꽃을 어떻게 구하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12월 19일. 2년 전 탈북한 김현미(가명·43)씨가 뉴스를 보며 한마디 던졌다. 현재 북한당국은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을 애도하기 위해 평양 시민들을 김일성 동상 앞에 모이게 해 헌화하고 묵념하는 집단적인 애도 행사를 벌이고 있다. 문제는 이때 동상 앞에 바쳐야 하는 꽃이 생화여야 충성심을 인정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김씨는 “충성심 경쟁 때문에 엄동설한에 생화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닐 가족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면서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데 천정부지로 오른 꽃값을 감당하기도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김정일의 죽음을 바라보는 탈북자들의 심경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대개 김정일 사망에 대한 애도보다 북녘 땅에 두고 온 가족들의 ‘살 걱정’이 우선이다. 함경북도 출신인 이정옥(35) 씨는 “국상을 당했으니 당국이 장마당을 폐쇄시킬 것”이라면서 “북의 가족들은 장마당에서 ‘하루 벌이’를 하며 근근이 살고 있는데 이마저 못 열게 하면 먹고 살기 힘들 것”이라고 걱정스레 말했다.



카카오톡에 ‘ㅋㅋㅋㅋㅋ’ 메시지 탈북대학생인 장민혜(가명·24)씨는 탈북자 지인들과 주고 받은 카카오톡 대화창을 내밀었다. 대화 내용은 주로 웃음을 뜻하는 ‘ㅋㅋㅋㅋㅋ’를 비롯해 ‘드디어 죽었다!’ ‘축 김정일 사망’ 등 대부분 김정일 사망 소식을 기뻐하는 내용이었다. 장씨는 “북한에 있을 때 김정일이 빨리 죽고 정치가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다”면서 “북한이 싫어서 목숨을 걸고 넘어온 탈북자들 가운데 김정일의 죽음을 슬퍼할 이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탈북자 지원단체인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의 신미녀 대표는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와는 분위기가 확실히 다르다”고 전했다. 신 대표는 “오랫동안 탈북자들을 도왔지만 김일성을 나쁘게 말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면서 “반면 김정일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여기는 탈북자들 대부분이 이번 죽음을 두고는 기뻐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9년 탈북한 김정희(40) 씨는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조문 명령을 내렸다는 소식을 북한의 지인에게 들었다”고 전했다.

“하루 세 번씩 조의를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대요. 1994년도에는 그런 지시가 없어도 자발적으로 하는 분위기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 조용하고 우는 사람도 없어서 좀 당황스럽다고 이야기 할 정도에요.”

앞으로 전개상황을 두고 탈북자단체들은 “김정일의 죽음은 북한 주민들을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그의 사망은 북한의 변화와 개혁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김규호 북한인권연합회 집행위원장은 “김정일의 사망을 계기로 앞으로 북한이 적극적인 개방 의지를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재평 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국장 역시 “북한주민과 탈북자가 박수를 칠 일”이라고 설명했다.

기대와 더불어 북한 내부의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북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일성 사망 때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때는 김정일이 이미 정권을 어느 정도 장악했지만 김정은은 달라요. 북한 주민조차 잘 몰라요. 그만큼 김정은이 정권을 장악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대비책을 확실히 세워야 합니다.“

탈북자들은 후계자인 김정은에 대해선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1년 전 남한에 온 강정식(가명·36) 씨는 “북에서 김정은에게 경칭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면서 “꼬맹이나 새끼돼지로 부르는 김정은을 존경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는 “북한 내부에서는 외국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는 김정은이 개혁을 잘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한다”면서도 “다만 화폐개혁 실패로 후계자에 대한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북한 주민들은 (2009년 말 단행한) 화폐개혁이 김정은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마니에 250원하던 쌀값이 무려 5000원으로 올랐죠. 한국은 물가가 4~5%만 올라도 난리가 나는데 북한 주민은 오죽하겠습니까? 김정은이 되레 살림살이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생각해 원망하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면 북한 체제가 흔들려 대량 난민이 발생 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호택 피난처 대표는 “우리 정부는 중국과 긴밀하게 조율해 기존의 재중 탈북자는 물론 추가로 발생할 탈북 난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체제가 당장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란 예측도 있다.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는 “당분간 큰 파동은 없을 것”이라며 “이미 지난해부터 김정일이 오늘 같은 사태를 예견하고 김정은을 부각시키는 등 많은 준비를 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김정일 사망과 발표 시점의 시차가 이틀에 불과하고, 그 과정에 보안이 잘 지켜진 점 등은 김정은이 북한 체제를 장악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탈북자 이영희(48)씨는 “후계자 김정은이 나이가 어려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비롯한 실세들의 주도 하에 기존 체제를 공고하게 다진 후 개방을 하더라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력체제 흔들리진 않을 것” 실향민들은 고향 땅을 밟을 희망을 가지면서도 평화가 깨지지 않을까 염려하는 등 신중했다. 평안남도 출신인 백진기(가명·85)씨는 “북한이 조금이나마 문을 열어 실향민의 한을 풀어줬으면 좋겠지만 그동안 6자회담 기피 등 수시로 입장을 바꾼 모습을 볼 때 쉽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강도가 고향인 조명호(74)씨도 “김일성이 죽었을 때도 많은 기대를 했지만 그 이후 달라지는 게 없었다”면서 “이번에는 조용히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탈북자와 실향민들의 공통된 걱정은 북한 주민들의 삶이 더 팍팍해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탈북동포회 소속 한성현(64)씨는 “이 엄동설한에 끼니도 제대로 못 때우고 추모 집회에 동원될 동포들을 생각하니 안타깝다”고 전했다. 탈북자 김성태(49)씨 역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나타냈다. 김씨는 “당장 통일은 아니더라도 서신 왕래 등 외부와 소통으 폭이 점점 넓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면서도 “당에서 주민 동요를 막기 위해 통제를 강화할 텐데 북에 두고 온 가족이 잘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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