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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희 삼성생명보험 사장 - 한국의 ‘록펠러 가문’ 나오게 돕겠다

박근희 삼성생명보험 사장 - 한국의 ‘록펠러 가문’ 나오게 돕겠다


사진 오상민 기자

취임 1년을 맞은 박근희 삼성생명 사장. 그의 행보는 금융 업계의 관심사다. 2011년 2월엔 국내 금융사 최초로 은퇴연구소를 만들어 은퇴에 대한 인식을 바꿔나갔다. 새해엔 고액자산가를 위한 가문 관리 서비스 ‘삼성패밀리오피스’를 선보인다.
삼성생명 본사 6층 회의실 앞에 선 박근희 대표.

국내 1위 보험사인 삼성생명에서 임직원 6000여명을 이끄는 박근희(59) 사장. 지난 12월 19일 오전 9시 30분 삼성생명 본사 6층 대표실에서 그를 만났다. 월요일 임원 회의가 끝난 뒤였다. 반갑게 악수를 건네며 인사하는 그는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이다. 질문에 대한 답변도 빠르고 명쾌하다. 그의 머리 속엔 회사 관련 모든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는 듯 하다. 이 날 인터뷰는 신년호 기획으로 2~3주 전부터 준비했다. 회사를 경영 하면서 틈틈이 전국 지점을 챙기는 그와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마감 하루를 앞두고 어렵사리 시간을 내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1978년 삼성전관(현 삼성SDI)에 입사한 박 사장은 삼성전관 경영기획실장과 구조조정본부 경영진단 팀장, 삼성캐피탈·삼성카드 사장, 삼성그룹 중국본사 사장 등 그룹 주요 계열사를 두루 거쳐 2010년 12월부터 삼성생명 CEO를 맡았다.



국내 최초 가문 관리 서비스 선보여새해에 박 대표는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인다. 국내 최초로 가문을 관리하는 ‘삼성패밀리오피스’ 다. 1월11일 강남파이낸스센터빌딩 22층에 문을 연다. 패밀리오피스(Family Office)는 말 그대로 가족 회사다. 빌 게이츠, 록펠러, 로스차일드, 캐네디가 등이 대표적인 패밀리 오피스다. 초기엔 한 가문만을 전적으로 지원하는 싱글 패밀리 오피스가 많았다. 점차 여러 가문을 지원하는 멀티 패밀리 오피스를 거쳐 현재는 선진 금융기관이 고액 자산가의 자산을 관리하는 모델로 발전했다. 국내엔 삼성생명이 유일하다.

박 대표는 삼성패밀리오피스는 앞으로 한국에서 존경 받는 제2의 록펠러나 카네기 가문이 나오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부유층은 몇 대에 걸쳐 부를 물려 받거나 도전과 성공에 대한 열정으로 부를 일궜지요. 그들은 쌓은 부를 안정적으로 지키면서 어떻게 잘 사용할 지에 관심이 높아요. 단순한 부의 증식에서 벗어나 부를 잘 계승하고 의미 있게 사용해 명문가로 거듭나길 바라지요.”

자산 뿐 아니라 비재무적인 부분까지 관리 해준다는 게 기존 금융사의 프라이빗뱅킹과 차별화 된 서비스다. “패밀리오피스 도입에 앞서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조사를 한 적이 있어요. 자산관리 서비스에 대한 고객 만족도가 높지 않더군요. 특히 금융사마다 서비스가 비슷하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아마도 다들 종합자산관리라고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수익 추구를 목표로 돈을 운용해주는 정도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죠. ”

그렇다면 삼성패밀리오피스만의 서비스는 뭘까. 박 대표는 크게 자산 관리, 자녀 교육, 노블레스 오블리주, 커뮤니티 등을 꼽았다. 자산관리는 가문 즉 가족 전체 재산을 맡는 방식이다. 고객의 모든 재무정보를 파악한 후 생애 이벤트와 관심사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자금을 운용한다. 특히 기본적인 자산 포트폴리오 구성부터 임대 사업, 가업승계, 절세 등 돈에 관련된 모든 업무를 도맡는다. 여기엔 법률 상담도 포함된다. 재산을 둘러싼 가족간 다툼, 장애가 있는 자녀를 위한 재산권 설정 등 상속이나 자산 관리 때 생길 수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다.

자녀 교육에 관심이 높은 자산가를 위해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도 선보일 계획이다. 프로그램에선 금융·제조·컨설팅 등 각 분야 전문가가 교육을 맡는다. 세무, 투자 포트폴리오 등 실무적인 자산관리에 대한 기본 교육도 병행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빼놓을 수 없다. 가문의 명예와 명성을 남기길 원하는 부유층의 니즈를 고려한 것이다.

박 대표는 자산가들이 기부하거나 사회 공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라고 했다. 특히 공익 재단을 세우는 데 필요한 절차와 노하우를 핵심 자문 서비스로 구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커뮤니티 서비스가 있다.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에 따라 커뮤니티를 만들 계획이다. 예를 들어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한 경우엔 인문학 공부 모임을, 경영 네트워크를 원하면 CEO 커뮤니티를 만드는 식이다. 박 대표는 패밀리 오피스를 운영하는 데 삼성생명이 충분히 강점이 있다고 자신한다. 자산 150조원을 운용한 경험이 있어서다.

“삼성생명 내 자산운용본부는 세계 경제 흐름을 살피고 최대한 투자 위험을 낮춰 주식·부동산 등 다양한 금융상품에 자금을 운용하고 있지요. 그만큼 투자 정보가 풍부하고 운용 경험이 뛰어납니다. 보험회사 특성상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애 설계나 절세에 적합한 보험과 연금 상품도 갖추고 있어요. 삼성생명 공익재단이 운영하는 고급 시니어 타운인 노블 카운티와 삼성의료원이 있어 노후 생활에 도움이 되는 종합 라이프 케어를 받을 수 있답니다.”

패밀리 오피스는 1년여의 준비 과정을 거쳤다. 지난 11월 SC제일은행에서 스카우트한 윤태경 상무가 총괄한다. 그는 15년간 고객들의 자산관리를 해온 스타PB다. 그 동안 운용한 고객 자산 규모가 1000억원을 넘는다. 윤 상무를 중심으로 가문 관리를 해줄 FO(Family Officer)와 세무·부동산·주식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팀이다. 모두 20여명. 전문가들은 각 분야에서 10년 이상 경험을 쌓은 베테랑이다.

윤 상무는 삼성패밀리오피스는 현대판 집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 집사가 왕가나 귀족 자산을 종합적으로 관리했던 것처럼 자산가들의 재무적인 부분뿐 아니라 비재무적인 영역까지 관리해 명문가로 대를 이을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비스뿐 아니라 공간도 기존 PB센터와 차별화했다. 내부는 496m² (약 150평)로 넓고 실용적이면서 한국의 정취가 느껴지도록 꾸몄다. 한옥의 문살 무늬를 인테리어에 활용하거나 방마다 감색, 비취색, 모시색 등을 사용했다. 한국 가문을 위한 곳이니 화려하기보다는 고풍스러운 한국적인 정취가 느껴지도록 만들라는 박 대표의 주문이 있었다고 한다.



은퇴연구소, 1년 동안 580회 강연 패밀리 오피스는 박 대표의 중·장기 계획 중 하나였다. 2011년 5월12일 그는 삼성생명 상장 1년을 맞아 향후 성장의 축으로 은퇴시장, 부유층 시장, 해외 시장을 꼽았다. 세 가지 성장 축을 기반으로 2015년까지 연평균 7~8%의 성장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이 중 부유층 시장을 공략한 게 바로 패밀리 오피스다. 그의 계획대로 척척 진행되는 모습이다. 첫 번째 성장 축으로 꼽은 은퇴 시장은 이미 진출했다. 2011년 2월 10일 FP센터 산하 은퇴연구소를 퇴직연구소와 합쳐 CEO직속 연구소로 확대 개편했다. 국내 금융사 최초 은퇴 연구소다. 한국펀드평가를 세운 우재룡 상무가 초대 소장을 맡았다.

박 대표는 한국이 빠른 속도로 나이 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2018년에는 노인 인구 비율이 14.3%로 높아져 고령사회로 접어들고, 2026년에는 그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겁니다. 100세 시대에 들어서는 거예요. 노인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데 비해 사회적인 인식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퇴직금, 국민연금 등 가장 기본적인 연금 마련을 제외하곤 은퇴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지요. 은퇴 패러다임을 바꾸는 게 은퇴연구소가 할 일이에요. 재무적인 컨설팅뿐 아니라 비재무적인 준비를 도와 국민이 오히려 은퇴를 기다리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40~50대부터 시작하는 것도 늦어요. 대학 졸업하고 취직하자마자 은퇴 이후의 삶을 생각해야 합니다. 삼성그룹부터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룹에선 신입 사원을 뽑으면 생애설계 교육부터 시킵니다. 이제 오래 살 일을 대비해야지요.”

우재룡 소장은 “박 대표는 은퇴연구소가 앞장서 은퇴 문화를 바꿀 수 있도록 시스템 마련과 교육을 강조한다”고 들려줬다. 현재 은퇴연구소는 한국 시장에 맞는 선진형 은퇴 설계 모델을 개발 중이다. 미국·유럽·일본 등 한국보다 빨리 고령화를 겪은 선진국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은퇴 문화를 만들어왔다. 그 발자취와 모델을 배운다면 수 많은 시행착오를 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은퇴 교육도 열심이다. 2011년 한 해 동안 은퇴연구소는 전국 곳곳을 돌며 580회 이상 3만명에게 은퇴 교육을 했다.



인도·인도네시아 등 해외 시장 공략마지막 성장의 축인 해외 시장은 어떨까. 박 대표는 올해 인도와 인도네시아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사가 해외 시장을 넓히는 일은 만만치 않아요. 정부 규제가 많기 때문이죠. 현재 8개 국가에 12개 해외 거점을 둔 상태예요. 이 중 중국과 태국은 현지 합작법인을 세웠고요. 중국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태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어요. 한국 보험시장에 비해선 발달이 더디다는 점에서 경쟁력이 충분합니다. 게다가 FC들이 고객을 일 대 일로 만나 맞춤형 생애 설계를 짜준다는 강점이 있지요. 여기에 은퇴 관련 다양한 상품을 이용해 시장을 개척해 나갈 생각입니다.”

박 대표는 한 번 계획한 일은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회사 전체 돌아가는 일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가 삼성생명 사장에 취임하자 전국 지점을 찾아 다녔다. 1년 동안 800개 지점 중 절반 이상을 방문했다. 그는 현장에 모든 경영의 문제와 답이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 현장에 가서 보는 것과 임원 보고만 듣고 경영 판단을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1년 동안 열심히 다녔는데 아직 반 밖에 못 봤습니다. 제게 현장 방문은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직원과 소통하고 격려하는 중요한 업무랍니다.”

그의 현장 경영은 삼성생명뿐 아니라 그룹 내에서 유명하다. 일화도 많다. 2004년 삼성카드 대표 시절에 지점장들에게 구두를 한 켤레씩 선물했다. 이 신발이 닳도록 열심히 하라는 의미였다. 2005년 이후 6년 동안 삼성그룹 중국본사 사장을 맡았을 땐 중국 현안을 샅샅이 살폈다. 지금도 삼성그룹 안에서 중국 얘기가 나오면 ‘박근희한테 물어봐라’는 말이 나올 만큼 중국통이 됐다.

박 사장은 재임 기간에 중국 내 삼성 공장들의 변신을 주도했다. 중국 쑤저우의 노트북 공장은 취임 초기인 2005년에 100만대를 만드는 데 불과했다. 2009년 생산량은 600만대로 확 늘었다. 생산량이 늘어나는 동안 공장 증설은 없었다. 박 대표의 꼼꼼한 현장 분석으로 부품조달 시스템 등을 개선해 이룬 실적이다.

현장 경영을 중시하는 데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박 사장의 의지가 담겨있다. 청주대 상학과를 졸업한 그는 군 제대 후 78년에 삼성에 입사했다. 처음 발령 난 곳은 삼성 SDI 수원공장 경리과였다. 꿈꾸는 자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조직 내에서 ‘경리 업무는 최고여야 한다’는 각오로 일했다고 한다. 26년 뒤 그는 동기 200여명 중 유일하게 사장이 됐다.

박 사장의 1등 사랑은 여전하다. 그는 “삼성생명은 국내에서 절대적인 1등을 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국내에만 머물 수는 없다”며 “앞으로 글로벌 1위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삼성생명은 2011년 9월말 기준 총 자산은 150조2630억원에 달한다. 2006년 4월 100조원을 넘어선 지 5년 5개월 후 50조원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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