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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국내 1호 알뜰주유소 - 아직 알뜰하지 않은 알뜰주유소

[Repo]국내 1호 알뜰주유소 - 아직 알뜰하지 않은 알뜰주유소

영동고속도로 용인IC를 빠져 나와 용인 시내에서 이천 방향 42번 국도로 접어들면 오른쪽에 국내 1호 알뜰주유소가 눈에 띈다. 지난해 12월 29일 문을 열어 1월 5일 개점 1주일을 맞았다. 소문대로 밀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발 디딜 틈이 없다.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씨에다 상대적으로 덜 붐비는 낮 12시경인데도 주유기마다 기다리는 차량 행렬이 늘어섰다. 알뜰주유소 관계자는 “출퇴근 시간에는 50m 떨어진 식당까지 줄이 이어지기도 한다”며 “근처에 스키장이 있어서 금요일을 포함해 지난 주말에는 하루 종일 서서 손님을 맞았다”고 말했다.

일주일 동안 알뜰주유소를 찾은 고객은 하루 평균 1000여 명. 이름이 알려져서인지 입구를 지나쳤다가 간판을 보고 뒤늦게 출구로 들어오는 차들도 눈에 띄었다. 근처에 물류센터가 위치해 크고 작은 용달차들이 오가서 경유 수요가 특히 많은 듯했다. 길게는 십여 분 이상 기다려야 하지만 알뜰주유소를 찾은 손님 대부분은 ‘기다려도 기름을 싸게 넣을 수 있다면 괜찮다’는 반응이었다. 신갈 부근에 사는 김명호 씨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건너편에 알뜰주유소가 있는 걸 보고 유턴을 해 들어왔다”며 “집에서 조금 멀지만 아무래도 가격이 싸다 보니 이쪽으로 자주 온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알뜰주유소를 찾았다는 박재욱 씨 역시 “정부가 품질과 가격을 보증한다니 믿을 수 있지 않겠느냐”며 “셀프 주유소라 조금 불편하지만 확실히 가격이 싸다는 게 느껴져 이번 기회에 단골 주유소를 바꿀 계획”이라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1월 5일 알뜰주유소의 판매가격은 휘발유가 리터당 1843원, 경유는 1694원이다. 전국 평균과 비교하면 휘발유나 경유나 리터당 90원가량 저렴하다.



50m 떨어진 식당까지 줄 서기도전국에서 기름값이 가장 비싸다는 서울과는 무려 150원 정도 차이가 났다. 5만원을 결제하고 직접 휘발유를 주유해봤더니 27.516리터가 들어갔다. 서울은 25리터 정도다. 알뜰주유소가 저렴한 가격으로 기름을 공급할 수 있는 건 공동구매를 통해 일반 주유소보다 30~50원 저렴한 가격에 석유를 구매해 셀프주유소 형식으로 판매하기 때문이다. 휴지나 생수 등 서비스 상품도 없애 비용을 줄였다.

알뜰주유소 인근에 위치한 10개 주유소의 평균 판매가격은 휘발유의 경우 리터당 1888원, 경유는 1740원이었다. 알뜰주유소보다 비싸지만 전국 평균보다는 훨씬 싸다. 알뜰주유소가 위치한 용인시 처인구 마평동 일대는 원래부터 주유소간의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하지만 격차가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알뜰주유소가 생기면서 인근 주유소들도 가격을 따라 내려서다. 인근 A주유소 사장은 “알뜰주유소 탓에 손님이 줄어 20원 정도 가격을 내렸다”고 말했다. 다른 주유소들도 많게는 25원까지 가격을 내렸다. 알뜰주유소를 확산시켜 전반적인 기름값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 것이다.

시작은 그럴 듯 했지만 알뜰주유소가 과연 물가안정이라는 본연의 목표를 달성할 지는 아직 미지수다.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곳곳에서 부작용도 노출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허술한 관리 체계가 드러났다. 알뜰주유소를 찾은 정유진 씨는 “옆 주유소보다 50원 정도 싼 것 같은데 카드 할인이 안 돼 오히려 손해 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알뜰주유소에서는 아직 카드사 할인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다. 현재 단 6개 카드에 한해서만 60~80원 가량의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데 이 역시도 대부분이 주유 전용카드다. 협약을 체결한 카드사라면 거의 모든 신용카드에 할인 혜택을 주는 일반 주유소와 다른 점이다.

인근 S주유소는 알뜰주유소와 같은 셀프주유소다. 이날 이 주유소의 판매가격은 휘발유가 리터당 1885원, 경유는 1736원이었다. 알뜰주유소보다 42원 정도 비싼 수준이다. 현금이라면 당연히 알뜰주유소에서 주유하는 것이 이득이겠지만 카드를 사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주유소는 대부분의 카드사들과 협약을 맺고 리터당 40~60원 정도의 할인 혜택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카드 할인 혜택을 받으면 알뜰주유소와 같거나 오히려 더 싸게 기름을 넣을 수 있다. 알뜰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일이 오히려 알뜰하지 않은 소비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는 일반 신용카드 할인 폭의 2배(리터당 120원)를 깎아주는 알뜰주유소 전용 신용카드를 1분기 중에 출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알뜰주유소에서 전용카드로 결제하면 저렴한 판매가격과 추가적인 카드 할인으로 월 20만원 주유 시 1만4000원 정도의 절약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알뜰주유소 인근 자영 주유소 운영자들의 반발도 만만찮다. 알뜰주유소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B주유소 사장은 “하루 평균 200대 정도가 들어왔는데 알뜰주유소가 생긴 이후 손님이 반 이하로 줄었다”며 “가격은 가격대로 내리고 손님은 손님대로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주유소에는 70대 노인 3명이 일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이달 안에 모두 그만둬야 할 처지”라며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하는 정부가 현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걸 왜 모르느냐”고 항의했다. C주유소 사장 역시 “정유 관련 유통비용을 줄여보겠다고 시작한 정책인데 애꿎은 소매 자영업자만 피해를 보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정부는 1월 초 ‘2012년 서민생활물가 안정방안’을 발표하면서 일반 주유소의 전환을 유도해 올해 안에 알뜰주유소를 전체 주유소의 5% 수준인 700개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300여 개의 농협 주유소와 도로공사가 운영하는 주유소 등 400여 개의 주유소를 알뜰주유소로 전환하고, 일반 자영 주유소의 신청도 받아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내용이다.



알뜰주유소 확대 정책 실효성 의문하지만 농협 알뜰주유소는 이번에 문을 연 알뜰주유소와는 성격이 다르다. 알뜰주유소 1호점은 경동이 설립한 사회공헌형 주유소다. 기업이 사회에 공헌한다는 취지에서 마진을 거의 남기지 않고 판매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국 평균보다 100원이나 싼 가격에 판매할 수 있다. 반면 앞으로 알뜰주유소로 전환한다는 농협 주유소의 경우 사회공헌형이 아니기 때문에 1호점보다는 더 많은 마진을 남겨야 한다. 가격 인하 폭이 소비자의 기대만큼 크지 않으리란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영 주유소 역시 마찬가지다. 알뜰주유소로 전환하면 마진을 줄여야 하는데다 수급 상황까지 일일이 정부에 알려야 하는데 자영업자들이 이를 감수하고 알뜰주유소로 전환할 지는 의문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소비자 입장에서 가격 인하는 당연히 환영할 일이지만 성급한 제도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칠 수 있다”며 “물가 안정을 도모한다며 시작한 새 정책이 오히려 여러 곳에 혼란만 주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원석 이코노미스트 기자 ubiquitous8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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