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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TV전쟁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World] TV전쟁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올 1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2012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삼성전자가 세계 최대인 55인치 유기EL(Electro Luminescence) TV를 선보이자 박람회장은 환성과 박수로 가득찼다. CES는 해마다 세계의 전자제품 제조사가 모여 신제품을 발표하고 미래의 트렌드를 짚어보는 자리다. 올해 CES에서 가장 큰 화제를 불러 모은 것은 한국의 삼성전자와 LG전자였다. 두 회사는 약속이라도 한 듯 55인치 유기EL TV를 발표했다. ‘꿈의 디스플레이’라 불리지만 대형화가 어려웠던 유기EL TV의 난제를 해결한 것이다. 두 회사의 부스는 종일 관람객으로 가득 차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원래 고품질·고화질 TV는 일본의 자랑이었다. 하지만 트렌드가 브라운관 TV에서 벽걸이 TV로 옮겨가면서 일본 브랜드는 위기를 맞았다. 그 배경은 제품의 디지털화다. 부품만 있으면 누구나 간단히 TV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기술 차별화가 어렵다. 당연히 치열한 가격경쟁을 불러왔고 엔고의 부담을 안고 있는 일본 기업들로서는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투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대형 유기EL TV 생산으로 한국 제조업체와의 기술력 차이가 확연해졌기 때문이다. 파나소닉의 오쓰보 후미오 사장은 “삼성은 TV와 같은 단말기를 인터넷에 연결해 콘텐트를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든 점이 인상적이었다”며 “유기EL이 액정이나 플라즈마를 대신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개발에 힘을 쏟겠다”며 도전 의사를 내비쳤다. 하지만 다음날도 파나소닉의 주가는 하락했다. 그의 열의가 시장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유기EL TV는 액정이나

그 이하 정도로 가격을 낮출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기EL로 새로운 승부수를 띄운다는 의미다. 세계 전자제품 업계는 새로운 리더로 떠오른 한국이 저만치 앞서가고 일본이 뒤따르는 형국이 됐다.



액정 대신 플라즈마 선택해 몰락일본에서도 플라즈마 TV에 사활을 걸었던 파나소닉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지난 10년 간 파나소닉이 내세운 전략은 ‘대형 화면은 플라즈마, 중소형은 액정’이었다. 플라즈마 TV는 일본이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후지츠가 컬러화와 대화면 제작에 성공하고 NEC, 파이오니아, 히타치 등도 잇따라 뛰어들면서 플라즈마는 차세대 대화면 TV의 유력 후보로 떠올랐지만 액정의 기술진화가 더 빨랐다. 2005년 무렵부터 액정을 중점적으로 키우던 샤프와 같은 업체들이 대화면 TV 생산까지 성공하자 플라즈마는 점점 힘을 잃어갔다. 삼성 등 다른 아시아 제조업체도 대형 액정 판넬 공장을 건설해 힘을 키웠다.

자사 액정 판넬 공장이 없는 소니 역시 2005년 플라즈마 TV에서 손을 떼고 액정 TV로 전환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합작사 ‘S-LCD’를 설립했다. 이후 액정 TV는 더욱 거세게 플라즈마 TV를 몰아붙였고 지금은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의 액정 TV는 품질의 향상 속도가 가장 빨랐다. 판넬의 증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동시에 원화 가치 하락을 무기로 순식간에 일본 브랜드를 추월했다. 우수한 디자인과 탁월한 마케팅 능력까지 더해지면서 구미시장을 과감히 공략, 눈 깜짝할 새에 세계 최고 점유율을 차지했다.

2007년 가격 경쟁에서 밀린 파이오니아마저 플라즈마 TV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당시 파이오니아 기술자 150여명을 영입한 파나소닉은 역전을 노려봤지만 승패는 이미 결정돼 있었다. 현재 브라운관의 왕좌를 차지한 것은 액정 TV다. TV 시장에서 플라즈마의 점유율은 6% 정도에 불과하고 파나소닉·삼성·LG·창홍(중국) 등 주요 기업 중 플라즈마를 주력으로 하는 곳은 파나소닉뿐이다. 출하대수는 2010년 1844만대로 정점을 찍었으나 출하액은 2006년 183억 달러 이후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 최초로 플라즈마 판넬의 컬러화에 성공한 후지츠의 전 기술자는 “플라즈마가 액정보다 제조 공정이 간단하기 때문에 가격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고 화면의 아름다움도 액정을 웃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소형화가 어려운 플라즈마와 달리 액정은 컴퓨터나 휴대전화용 중소형 판넬로 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부가가치가 더 크다. 세계가 너나없이 액정 투자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고급인력을 확보하려는 한국 기업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판넬 생산에서 철수하는 일본 기업이 속출하고 실적 악화로 각 사의 정리해고가 이어지면서 일본인 기술자 중 상당수가 한국 기업으로 스카우트됐다. 세계 최초로 유기EL TV를 선보인 소니 역시 개발 부진으로 멈칫하는 사이 많은 기술자가 삼성전자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에 2년간 근무한 한 일본인 기술자는 “그들은 의욕이 대단했는데 계약기간 중 밤낮으로 질문을 해왔고 보안도 철저했다”며 “일본 기업이 도저히 당해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마침내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유기EL 디스플레이의 대량생산에 성공했다. “풍부한 자금력을 가진 기업이기에 가능한 일”이라며 한 업계 관계자는 체념한 표정을 보였다.



중소형 판넬시장에 부는 ‘애플’ 바람지금은 TV용 액정 판넬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가격이 폭락하고 업계는 전체적으로 위기에 빠진 상황이다. 세계 최고라는 삼성전자마저 2011년 액정부문에서 적자를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액정계의 숨은 실력자 샤프에 구원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로 세계에 아이폰을 히트시킨 애플이다. 지금까지 아이폰의 액정 판넬은 LG와 도시바 모바일 디스플레이 양사가 공급했다. 하지만 공급이 부족해지자 샤프에도 공급을 의뢰하기 시작했는데 애플은 도시바와 샤프에 각각 1000억엔을 투입해 전용 판넬 라인 설치에 착수했다. 올 봄 가동을 시작한다.

작년부터 샤프는 TV용 판넬 생산을 대폭 축소하고 중소형 액정 판넬 증산으로 방침을 전환했다. 가타야마 미키오 샤프 회장은 “돈벌이가 되지 않는 TV사업은 하지 않겠다” 며 TV 사업 일부를 중국 위탁생산으로 전환했다. 파나소닉도 히메지의 액정 판넬공장을 TV에서 중소형으로 전환했고 치바의 공장은 소니·도시바·히타치의 중소형 액정부문 통합회사인 재팬 디스플레이에 매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중소형 전환이 불가능한 플라즈마의 경우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다. 파나소닉의 최신식 아마가사키 제3공장은 가동 1년반 만에 생산을 중단했다. 상해로의 이전을 검토했으나 이마저도 무산됐다. 매각이 남은 방법이지만 플라즈마의 증산에 관심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 디스플레이 리서치에 따르면 2015년 세계 플라즈마 TV 출하대수는 859만대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플라즈마 생산라인은 다른 제품으로 전용하기 어렵다는 것도 약점이다.

방어전으로 치닫는 형국이지만 일본 TV 업계에 부활의 싹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기EL TV에서는 한국에 완패했으나, 세밀한 대형 TV 개발 경쟁력은 여전하다. CES에서 샤프가 선보인 85인치 ‘8k’는 일반 HD TV의 16배에 달하는 해상도를 자랑한다. 소니의 55인치 ‘크리스탈 LED 디스플레이’는 유기EL에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색상을 실현했다.

파나소닉의 20인치 IPS 액정의 ‘4k’도 관심을 모은다. 도시바나 샤프, 삼성 등 여러 회사가 먼저 개발했지만 파나소닉이 세계 최소 사이즈를 실현했다. 플라즈마 TV도, 대화면 TV도 아닌 새로운 영역에서 파나소닉의 독특한 기술력을 입증한 것이다.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번역=김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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