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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 1년 맞는 일본 경제 - 지진보다 나라빚 공포에 떤다

대지진 1년 맞는 일본 경제 - 지진보다 나라빚 공포에 떤다

1년여 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다. 그 사이 일본 경제는 유럽 재정위기에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 중국의 경착륙 논란, 엔화 가치 급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특히 수출 강국 일본의 무역수지가 31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다. 자연 재해가 발생한 후 경제가 이른 시간에 회복세를 보인 과거 패턴과 딴판이다.

대지진 발생 직후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는 1995년 한신 대지진 이후 급격한 성장률 회복을 근거로 일본 경제의 빠른 회복을 예상했다. 버블 붕괴 이후 부진의 늪에서 허덕이던 일본 경제가 한신 대지진 이후 엔화가 급등한 상황에서도 회복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달랐다. 쓰나미 탓에 발생한 원전 사태와 방사능 유출로 피해지역의 복구가 더뎠다. 원전 사고로 전력 부족 문제가 불거져 제조업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았다. 위축된 소비심리 역시 좀처럼 살아날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급등한 엔화 가치 때문에 수출 기업의 실적이 악화됐다.



일본 경제는 사면초가에 놓여외부 환경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일본의 성장동력인 수출이 유럽 재정위기로 타격을 받았다. 그 결과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투자를 늘린 덕에 성장률이 다소 올랐지만 수출·소비 감소로 다시 떨어졌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3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올 1분기에도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속도가 더딜 수 있겠지만 일본 경제는 동일본 대지진의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는 일본 경제가 예전과 같은 위상을 되찾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 단기적으로 회복할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1000조 엔을 넘은 일본의 국가 채무 문제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어서다. 일본의 국가 채무 문제는 그리스나 이탈리아보다 심각하다. 2011년 6월 말 기준으로 GDP 대비 국가 부채비율은 이탈리아가 129%, 그리스가 159%인 반면 일본은 212.7%에 이른다. 일본 국채의 95%를 자국 금융회사와 개인이 보유하고 있고, 오랜 제로금리 정책으로 국채 금리가 낮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과 다를 뿐이다. 그나마 일본의 이런 구조에 따른 낙관론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일본 국채 가격의 폭락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이 유럽의 뒤를 이은 재정 파산국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일본에게 불길한 징조는 2011년도 일본의 정부 예산안에서 나타났다. 2차 수정 예산안에서 일반세출 총액은 과거 최대 규모인 94조7000억 엔에 달했다. 그런데 세수는 약 50조4000억 엔에 불과했다. 차액인 44조3000억 엔은 국채를 새로 찍어 조달해야 한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예산안은 2009년부터 3년 연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94조7000억 엔의 지출 내역이다. 사회보장비(26조4000억 엔)의 뒤를 이어 국채 이자비용으로 21조5000억 엔이 나간다. 국채를 새로 발행해도 그것의 50%를 이자비용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일반 가정의 1개월 가계부에 비유하면 월 소득 40만엔의 세대가 월 75만엔을 지출하면서, 이 중 35만엔을 은행에서 빌려오고 그 가운데 17만엔을 이자로 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은행이 부족한 35만엔을 매월 빌려줬지만 언제 대출을 거부할지 모르는 것이다.

또 다른 불길한 징조는 일본에서 가장 큰 은행인 미쓰비시도쿄UFJ은행이 일본 국채 가격이 폭락할 때를 대비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이 2월 2일에 이런 사실을 보도했다. 일본의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5.6%)한 은행이 4~5년 후의 가격 폭락 때 수 조엔의 국채를 매도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보고, 국채 가격 하락의 징후가 보일 때를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 측의 시나리오에서는 2016년 무렵 일본의 경상수지가 적자로 전환되고 국채 신용등급이 떨어져 현재 1%인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3.5%로 급등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래서 10년 이상의 장기 국채 약 3조 엔어치를 가급적 조속히 매각하거나 1년 미만의 단기 국채로 전환하는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때 다른 투자자도 국채 매각에 나서면 금리가 일시적으로 위험 수준인 7%로 급등하면서 이탈리아와 같은 재정 위기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 재정 파탄에 처하면 세계 경제가 겪을 대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마지막으로 일본 국채의 위기감은 소비세 증세 논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법인세(40%)를 매기고 있는 일본은 세수를 늘리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소비세를 올릴 방침이다. 일본 정부는 현재 5%인 소비세율을 2015년에 10%로 단계적으로 올리는 안을 올 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야권은 물론 여권 일각에서도 소비세 인상에 반대하고 있다.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다. 그나마 소비세를 올려도 국채 이자를 감당하기에 벅찬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소비세 증세 문제를 풀지 못할 때다. 이 경우 재정 상황이 악화돼 국제 금융시장에서 일본 정부의 신뢰가 떨어지면 대외 자금조달 능력이 더 떨어질 수 있다. 여기에 일본 금융권까지 등을 돌린다면 일본 국채의 지위는 순식간에 곤두박질칠 수 있다. 물론 일본 국채의 불안설이나 폭락설은 과거 10년 동안 양치기 소년의 외침처럼 꾸준히 제기됐다. 현실은 달랐다. 일본 국채는 여전히 안전자산으로 여겨져 세계 경제가 불안해질 때마다 투자 자금이 몰리고 있다. 일본이 경상수지 흑자국이며, 환율에 대한 조정 능력을 일정 수준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31년 만의 무역수지 적자, 10년간 약 30조 엔에 이르는 재해 복구비,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급격한 사회보장비 증가 등 일본의 재정을 위협하는 요인은 수두룩하다. 언제 어느 때 일본의 금융회사와 개인이 국채 매입을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다.



재정 위협 요소 수두룩이런 일본 경제를 지척에서 지켜보는 한국 경제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금융위기의 쇼크에서 벗어나 기초 체력을 키워 놓을 틈도 없이 유럽 재정위기의 파고에 휩쓸리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방향을 잃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복지논쟁이 한창인데 지금이라도 서둘러 재정 건전성을 탄탄하게 다지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기업과 가계도 빚을 줄이고 현금을 일정 부분 보유할 필요가 있다. 고속도로 무료화, 아동수당 지급 등 재정 불안을 키운 일본의 실책을 되풀이 한다면 한국도 일본에 이어 아시아의 재정불안 국가로 낙인 찍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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