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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사옥엔 건축주의 감성
도시와 어울림이 담긴다

[ARCHITECTURE] 사옥엔 건축주의 감성
도시와 어울림이 담긴다


커다랗고 우뚝 솟은 사옥은 기업의 자부심이었다. 이제 여기에 다양한 요소가 추가됐다.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갖춘 여러 형태의 건물이 늘어났다. 이 중 눈에 띄는 사옥을 디자인 한 사람들을 만났다.

서울 태평로의 삼성본관, 광화문의 대림산업 사옥, 서울역 앞 옛 대우 사옥. 모두 네모난 건물이다. 예전에는 공간을 최대로 사용하는 이런 형태의 건물이 대부분이었다. 이제 네모나지 않은 건물이 종종 눈에 띈다.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양의 SK-T 타워부터 전통 가구 짜임을 형상화한 삼성 서초타운까지, 사옥은 각 기업의 정체성을 다양한 형태로 반영했다. 겉 모양뿐 아니다.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건물 등에는 사옥에 갤러리를 만들었다. 엔씨소프트는 사옥 안에 보육시설을 만들었다.



한종률 삼우 부사장

금호아시아나 본관한종률(57) 삼우 부사장은 2005년 직원들과 점심을 먹으러 중국집에 갔다. 금호아시아나가 서울 신문로에 지을 본사 설계를 공모할 때다. 어떤 컨셉트로 제안할 지 고민하던 그는 밥이나 먹고 하자는 생각에 중국집에 간 것이다. 여기서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탁자에 있던 냅킨에 스케치를 했다. 이 스케치를 토대로 한 삼우의 디자인은 2005년 금호아시아나 현상설계 공모전에 당선됐다.

한 부사장은 “아시아나항공 이미지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그는 비상하는 비행기 이미지와 한국 고유의 선을 표현하고 싶었다. 처마나 도자기, 한복에서 볼 수 있는 곡선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곡선을 넣을 수는 없었다. 덕수궁부터 정동교회, 러시아 대사관 터를 뒤로 하고 서울의 심장부를 앞으로 하고 있는 부지 위치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활처럼 휜 건물의 뒷편은 역사 유적을 품으면서 앞면은 항공사의 이미지를 살려서 비상하는 느낌을 줬다.

설계 공모 프레젠테이션에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직접 참석했다. 당시 한 부사장이 디자인한 건물 전면에는 ‘K’를 형상화한 모양이 들어가 있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CI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계획을 바꿔야 한다. 박 회장이 “우리 CI가 곧 바뀔 건데…”라고 말한 것. 한 부사장은 “기회를 주신다면 새로운 CI를 반영하겠다”고 제안했다.

직선 위주 건물 사이에 세련된 곡선형 건물을 지어보자는 그의 컨셉트를 박 회장은 마음에 들어했다. 층수도 지상 20층으로 발표했지만 좀 더 높이 지을 수 있다는 제안도 함께 했다(현재 금호아시아나 본사 사옥은 29층이다). 한 부사장은 이런 경제적 측면 역시 건축주의 공감을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됐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건물을 지을 땅은 이미 주차장 등 지하 공사가 끝난 상태였다. 지상 일부 철골도 올라와 있었다. 발주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공사가 중단된 것이다. 이후 금호아시아나가 부지를 소유하게 됐지만 지하부터 다시 공사를 할 수는 없었다. 시간적, 경제적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 부사장은 최대한 기존 지하 설계를 유지하되 일부 기둥의 위치를 수정해 건물을 올리기로 했다. 이와 함께 얽매이지 않은 새로운 시도를 계속했다. 세 개의 엘리베이터가 다니는 세 개의 길을 따라 건물 외벽에 LED를 설치했다. 도시에 표정을 심어보려는 시도였다. 이후 유행처럼 다른 많은 건물에 LED가 설치됐다. 건물외벽 유리도 위와 아래를 차별화 했다. 위는 반사가 잘 되는 유리로 하늘이 투영돼도록 만들었다. 1층 부분은 투명하게 건물 안쪽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오가는 사람들이 금호아시아나에 대해 투명한 이미지를 갖도록 했다.

박 회장은 설계와 시공 상황을 두 달에 한 번씩 직접 체크했다. 유리문 색을 어떤 것으로 할 것인지, 커튼과 프레임, 바닥의 돌 색깔이나 종류는 뭘로 할 지 꼼꼼히 챙겼다. 한 부사장은 원래 건물의 전반적 유리 색을 초록색으로 계획하고 있었다. 박 회장은 ‘웜 그레이’로 할 수 없겠냐고 제안했다. 웜 그레이는 아시아나 항공의 상징 색깔이다. 아시아나항공 승무원 유니폼이나 비행기에 이 색깔이 쓰인다.

한 부사장은 “처음에는 투명한 유리에 그런 색을 내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고 말했다. 유리 회사와 꼬박 두 달에 걸쳐 연구했다. 반사율을 따져가며 샘플을 만들었다. 결국 금빛이 은은하게 들어간 회색 유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금호아시아나 본관은 2008년 굿디자인상, 2009년 한국건축문화대상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한 부사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2년간 한국에서 설계를 하다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미시간 대에서 건축석사를 받은 그는 뉴욕에서 10년간 일했다. 1993년 한국에 돌아와 삼우에 입사해 대구오페라하우스, 삼성서초타운, 금호아시아나본관, 명동예술극장 등의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1980년대 한국에서는 건물이 그냥 네모여야 했어요. 제가 잠깐 한국에 들어왔을 때, 조금 재미있게 하려고 건물 모서리를 둥글게 하면 뾰족한 모서리 작은 공간도 아까워할 정도였죠. 하지만 요즘은 융통성이 많이 생겼습니다. 형태가 복잡해지면 공사비도 올라가고 비효율적 공간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것을 이해해 주는 건축주가 많아졌습니다.”

그는 건축주가 말하는 단어 하나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가령 건축주가 “난 그냥 평범한 것이 좋아”라고 말했을 경우, 평범하다는 게 어떤 것을 뜻하는지 알아채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평범하다’는 것이 세련되고 심플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최대한 공사비를 안들이고 지으라는 뜻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가 사옥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기업의 특징이다. 그는 “직설적이지 않더라도 기업의 아이덴티티가 건물 어딘가에는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부사장은 좋은 건축물을 짓기 위해선 평소 여러 건물을 보러 다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곤란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1980년대 그는 호텔 설계를 맡았다. 그런데 그는 가난해서 그 때까지 호텔에 가본 적도 없었다. 무작정 엘리베이터를 타고 객실로 올라가 청소하느라 열려 있는 방이 있으면 양해를 구하고 구경했다. 호텔 레스토랑도 식사는 못하고 구경만 했다. 그는 “창조적 상상을 하려면 머릿속에 들은 게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상상력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진구 정림건축 대표

엔씨소프트 R&D센터서울 테헤란로의 엔씨소프트 R&D 센터. 하나, 둘, 셋…. 건물 칸 수를 세어보니 마흔 개가 족히 넘는다. 그런데 옆 건물과 비교하면 40층이라고 하기엔 너무 낮다. 실제 이 건물은 15층이다. 비밀은 한 층을 3분할한 디자인.

김진구(59) 정림건축 대표는 “컴퓨터 게임이라는 것이 가상의 현실”이라며 “이 건물에도 그런 비현실적 게임의 세계를 반영해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유발시키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 건물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세 개로 나뉜 창으로 테헤란로를 바라본다. 앉아서 일 할 때와 서서 바라볼 때의 풍경이 다르다. 김 대표는 “일반적인 건물에서 볼 수 없는 경험”이라고 했다. 무턱대고 한 층의 창을 3등분 한 게 아니다. 이를 위해 정림건축은 직사광선을 차단하면서도 밖을 잘 볼 수 있는지 고민했다. 컴퓨터를 주로 사용하는 엔씨소프트 개발자들의 업무 환경에 맞추기 위함이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최적화된 수치를 찾아냈다.

2008년 완공된 이 건물은 테헤란로의 고층 건물에 비해 소박하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의견 때문이었다. 김택진 대표는 단순하면서도 참신한 디자인을 원했다. 김진구 대표는 “오히려 장식을 많이 넣고 화려하게 하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과제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김택진 대표는 굉장히 섬세하고 감성이 강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택진 대표는 마네킹이 아닌 사람이 살 것 같은 건물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빛이 들어오고 그림자도 지고 숨을 쉬는 건물을 원했다. 김택진 대표는 “눈이 오면 내리는 눈이 창턱에 떨어지는 것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감성적인 주문도 했다고 한다.

김진구 대표는 설계 전 테헤란로의 다른 건물들부터 살펴봤다. 그는 “마치 백과사전처럼 여러 표정의 건물이 다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요란하지 않지만 몇 십 년이 지나도 엔씨소프트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방법을 고민하다 지금의 디자인을 하게 됐다.

김택진 대표는 설계를 보고받을 때 그래픽에 민감했다. 김진구 대표는 “게임회사를 운영하는 분답게 설계 그래픽도 굉장히 사실성 있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김진구 대표는 그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항상 재료 샘플과 그래픽을 함께 보여줬다.

김진구 대표는 “예나 지금이나 사옥에서 바뀌지 않는 것은 사람”이라며 “하지만 예전에는 사회적 분위기가 일단 짓고 보자는 생각이 컸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예술성과 실용성, 편의성을 함께 추구한다. 엔씨소프트 R&D센터가 그 예다.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직원을 위해 마감재 하나, 문 하나에도 신경을 썼다. 휘트니스센터, 보육시설, 식당은 호텔 뺨친다. 대표이사 방이 있는 맨 위층은 최소한의 공간을 제외하고 옥상정원으로 꾸며 직원들이 쉴 수 있게 했다. 이 건물은 2008 건축문화대상 우수상, 2008 서울시건축상 장려상을 받았다.

김진구 대표는 정림건축 공채 1기다. 대학 졸업 후 입사해 여의도 MBC 사옥을 시작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스퀘어, 중국 심양 롯데월드 등 여러 건물을 설계했다. 아내 역시 정림건축에서 만났다. 아들 역시 정림건축에서 일하고 있다.

김 대표는 “건축은 굉장한 정신적 노동”이라며 “후배들에게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는 반드시 육체적인 활동을 하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그의 취미 역시 활동적이다. 그는 아버지, 형과 함께 사냥을 즐긴다. 부인은 20년 넘는 테니스 파트너다.



김태성 간삼건축 본부장

동국제강 페럼타워

김태성(46) 본부장은 1월 마지막 주에 두바이를 다녀왔다. 새로 진행하게 된 LG U+ 사옥 설계를 앞두고 건축주와 새로운 건물들을 벤치마킹 하기 위해서였다. 두바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의 디자인과 건설사들의 기술이 적용된 최신 건물이 많아 ‘오피스 전시장’으로 불린다. 하지만 김 본부장이 보기에 마치 그곳은 세트장 같았다. 각자의 모습을 뽐내고 있지만 모두가 어우러진 조화로운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건물 사이의 길들,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표정을 담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그는 “좋은 사옥은 도시와 어우러지는 공공성을 갖춘 건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0년 8월 모습을 드러낸 서울 을지로 동국제강 사옥을 설계할 때도 공공성을 염두에 뒀다. 부지를 둘러싼 길과 길을 연결하는 길을 만든다는 컨셉트였다. 길은 건물에도 만들었다. 그늘 아래서 작은 이벤트도 할 수 있는 1층 공개공지에서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2층에 갤러리가 나온다. 동국제강 사옥 터가 조선시대 때 도화서였다는 점에 착안했다. 사람들에게 미술 작품도 보여주고 작가들에게 싼 값에 전시공간을 빌려줘 공공성을 살렸다. 여기서 이어지는 슬로프를 따라 가다 보면 3층 공연장과 마주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면 식당 등 상업시설과 연결된다. 길을 통해 3층까지 공간을 대중에게 개방한 셈이다.

이런 공공성을 인정받아 동국제강사옥 페럼타워는 2011 서울특별시 건축상 우수상, 2011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이 건물은 큰 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을지로 입구 큰 길에서는 건물 전체가 보이지 않는다. 김 본부장은 “대로에서 보이는 형태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고민을 하던 중 그는 철광석의 날카로움을 표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보석 원석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철광석 원석을 표현할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동국제강 사옥은 기업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도 기여했다. 현재의 동국제강 CI역시 이 건물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것이 김 본부장의 설명이다. 설계를 마치고 3년 정도의 공사 기간 동안 CI가 만들어졌다. 건물이 표현하려 했던 날카로움이 들어간 CI다. ‘철’이라는 의미가 담긴 ‘페럼타워’라는 이름도 붙여졌다.

김 본부장은 “건축은 감동을 줘야 한다”며 “건축은 논리적인 작업이지만 건축주의 감성적인 좋고 싫음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건축주에게 진행 상황을 찔끔찔끔 보여주는 것 보다 완벽하게 완성됐다 싶을 때 보여준다”며 “감동을 주는 비법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김태성 본부장은 LIG손해보험 사천연수원, 현대해상 광주사옥, 대구 EXCO 증축 등을 설계했다. 그는 “건물의 모티브가 되는 기본 컨셉트를 잡는 데는 2~3주밖에 걸리지 않는다”며 “이 시기는 화장실에 가고 싶은 변비 환자 같은 상태”라고 말했다. 프로젝트를 좌우할 큰 밑그림을 그리는 때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떠오를 때까지 이 고민은 밤이건 낮이건 이어진다. 그는 “건축가가 생각하는 것을 많이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 좋은 건축주”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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