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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수산업] 미국 파고 높은데 중국 쓰나미도 온다

[위기의 수산업] 미국 파고 높은데 중국 쓰나미도 온다

요즘 전국 항구에는 궂은 날씨가 아닌데도 묶여 있는 어선이 즐비하다. 출어를 포기한 배들이다. 기름값 때문이다. 지난해 면세유 한 드럼(200ℓ) 당 평균 가격은 18만3000원으로 전년 대비 32% 올랐다. 올 3월 초 면세유 가격은 경유가 20만원을 넘었고, 휘발유는 21만7000원까지 올랐다. 사상 최고였던 2008년 8월 수준에 육박했다. 어선에 많이 쓰는 경유는 최근 6년간 70% 가까이 올랐다. 어선이 한 번 출어할 때 드는 비용에서 유류비는 60%를 차지한다. 어민들이 고기잡이 나갈수록 손해라며 출어를 포기하는 이유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2011년 연근해에서 조업한 우리나라 전체 어선의 조업일수는 930만 일. 전년에 비해 30만 일 줄었다. 해양수산개발원은 올해 조업일수는 900만 일에 그칠 것으로 추정한다.



불안에 떠는 어촌어가 경제도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1990년 대 초반 40만 명 안팎이던 어가 인구는 현재 17만 명으로 줄었다. 100명 중 23명은 65세 이상 고령인구다. 어업생산량은 2009년 318t에서 지난해 303만t으로 줄었다. 가까운 바다(연근해) 어획량도 2000년 110만t에서 2010년 113만t으로 거의 제자리다. 어획량이 한계에 달했다는 얘기다. 통계청에 따르면 어가 소득은 도시근로자가구 소득 대비 74% 수준이다. 부채는 가구당 3562만원으로 농가부채(가구당 2721만원) 대비 30% 많고, 도시가구 평균 부채보다 120% 높은 수준이다.

이래 저래 힘겨운 어민들을 한숨 짓게 하는 일은 또 있다.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협상이 진행 중인 한·중 FTA가 특히 걱정이다. 수협중앙회 산하 수산경제연구원 관계자는 “한·미 FTA가 파고라면, 한·중 FTA는 쓰나미”라고 말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수입한 수산물은 1억3900만 달러, 5만600t이다. 우리가 미국으로 수출한 수산물은 9600만 달러다. 기획재정부는 한·미 FTA로 국내 수산업 생산 규모가 향후 15년간 44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은 우리나라 수산물 4위 수출국, 5위 수입국이다.

한·중 FTA 여파는 더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수산물 생산국이다. 중국 어업국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해 수산물 수출액은 177억9000만 달러. 세계 수산물 전체 수출의 15%를 차지한다. 10년 연속 세계 1위다. 수입액은 80억2000만 달러다.

더욱이 중국은 우리나라의 수산물 최대 교역국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수산물 주요 수입국은 중국, 러시아, 베트남, 일본, 미국 순이었다.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수산물은 10억6000만 달러어치다. 우리나라 전체 수입시장의 34%를 차지한다. 반면 수출은 4억1400만 달러였다. 전년대비 110% 증가했지만, 대중국 수산물 무역 적자 폭은 크다.

중국과 FTA가 체결되면 상황은 더 나빠질 게 뻔하다. 수산업계에서는 한·중 FTA 체결에 따른 국내 수산업 피해 규모가 7000억~1조2000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한다. 수산경제연구원은 “한·중 FTA 체결시 중국은 기존의 저가 수산물 시장만을 공략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우수한 양식 기술을 기반으로 우리나라의 고급 수산물 시장까지 점유 기반을 확대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해양수산개발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중국은 한국과 같은 어장에서 동일 어종을 어획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어획물의 상당량을 한국에 수출하고 있다”며 “이러한 교역 구조 아래서 FTA가 체결되면 우리 수산업계의 피해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중국 수산물 가격 경쟁력이 우리보다 높고, 현재 수산물 관세도 우리보다 중국이 오히려 낮아 교역수지가 더욱 악화하면서 국내 생산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정부는 수산업 피해 보전 대책을 마련하면서 동시에 수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았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수산분야 10대 전략품목 육성안이 대표적이다. 10대 전략품목 육성안의 기본 전략은 주력 수출분야를 원양어업에서 양식산업으로 전환하고, 젊은 세대가 도전할 수 있는 수산업 여건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5~10년마다 반복된 기존의 개방 대응책보다 진일보한 정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수산분야 연구소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의 대책은 새로운 정책을 획기적으로 수립하는 게 아니라 이미 있는 정책을 재탕하는 게 많았다”며 “이번 육성안은 신규 사업이 많다는 점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정부가 선정한 10대 전략 품목은 갯벌참굴, 해삼, 전복, 광어, 참치, 김·미역, 새우, 뱀장어, 능성어, 관성어다. 정부는 어장확보, 기술개발, 시설 현대화 등을 통해 2020년까지 국내 생산량을 2010년 대비 40% 늘리고, 수출액은 9배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또한 전략품목 생산을 위해 2만 여명의 정예인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수산인력 양성시스템을 구축해 나갈 방침이다.



젊은 인력 수산업계 유입돼야어장 진입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정책이 특히 눈에 띈다. 국내에서 어업 활동을 하려면 면허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동안 면허·허가 제도가 기득권자에게 유리해 젊고 유능한 신규 인력 진입을 막아왔다는 지적이 많았다. 면허·허가 기간이 끝나면 기존 어업인에게 우선 순위를 부여하는 관행이 단적인 예다. 정부는 이와 관련, 그동안 어촌계원이나 조합원만 행사할 수 있었던 마을어장 어업권을 어업회사법인이나 영어(營漁)조합 등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젊은 인력이 수산업으로 유입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지원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수산업이 위기지만 동시에 기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동일본 대지진 여파로 중국·아세안·미국 등에서 우리 수산물이 일본 상품을 대체하고 있고, 일본 내에서도 자국산에 대한 불안감으로 한국 상품 수입이 늘고 있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미역의 대일본 수출은 전년 대비 158%, 전복은 40% 증가했다. 중국인의 수산물 소비량이 급증하는 것도 기회다. 특히 중국은 자국 수산물에 대한 불신이 깊어 해산어, 해삼, 굴 같은 고가 품종 수입이 늘고 있다. 이와 관련 서규용 장관은 “주변국 여건변화와 수산시장 글로벌화로 우리 수산업이 다시 없는 기회를 맞고 있다”며 “수산·어업 정책과 제도 개혁을 통해 발전적인 대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윤 이코노미스트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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