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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論濁論] - 돌려막기 복지, 그 파편

[淸論濁論] - 돌려막기 복지, 그 파편

초등학교 5학년짜리 남자아이가 실의에 빠졌다. 새 학기에 ‘방과 후 과학교실’을 신청해 다니려 했던 계획이 무산된 탓이었다. “지난 학기에 다른 형 다니는 것 봤는데….” 이렇게 같은 말만 되풀이 하는 아들이 하도 딱해 어머니가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예산이 없어 과학교실을 꾸리질 못해요. 저희도 어쩌지 못하니 어머니께서 양해하세요.” 담당 교사의 이 말에 어머니는 다시 “작년까지 있던 그 예산, 올해 어디로 갔어요?”라고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 “잘은 모르겠는데 아마 무상급식으로 다 들어가고 돈이 없나 봐요.”

사실 그렇다. ‘공짜 점심’ 대느라 초등학교 주위 돈의 씨가 마르고 있다. 그러니 ‘방과 후 교실’이 예전처럼 돌아갈 리 만무하다. 개중 한 학기 12주로 편성된 과학교실은 참 괜찮은 프로그램으로 통했다. 한 주에 한 번, 80분 수업인데 20분은 설명을 곁들인 강의, 나머지 60분은 실험과 실기로 채워졌다. 아이들은 외부에서 온 전문강사와 함께 과학실험이나 모형물 만들기 등에 빠져들었다. 학부모는 수익자 최소경비 부담의 원칙에 따라 실험과 실기 준비물 구입 비용으로 한 학기 3만5천원가량 냈다. 그나마 저소득층 학생에겐 면제혜택이 주어졌다.

‘싼 게 비지떡’이라 코웃음 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 대학부설 연구소나 지역별 특화 연구단체가 프로그램을 만들고 강사를 엄선해 학교에 투입했다. 그 일련의 과정과 성과는 교육부 산하 한국과학창의재단에 의해 체크되면서 피드백돼 개선점을 찾아나갔다.

어머니는 너무 황당해 말문을 열지 못했다. 무상급식의 불똥이 과학교실로 튀어 아들의 기다림을 저버릴 줄이야! 가뜩이나 미래 과학인재 발굴·양성, 과학적 사고 함양과 창의력을 강조하는 나라에서….

어렵게 접촉할 수 있었던 한 강사. 그는 대기업 기술연구소장과 고위임원을 지내고 은퇴한 박사급 엔지니어였다. 그는 “허수룩해 보이는 초등학교 ‘과학교실’에서 한국의 미래를 읽었다”는 말을 먼저 던졌다.

“흔히 우리 공교육 다 망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가 보니 살아 있더라고요. 한 20명의 아이들이 준비물을 놓고 기본원리를 먼저 공부한 다음 실험과 실기에 임했습니다. 초등학생들이 제법 진지하게 과학 도구와 준비물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그 자체가 교육이거든요. 혹시 압니까? 세계적인 과학인재 한 명이 거기서 싹을 틔우며 자라날지 말입니다. 그런 미래를 포기하고 오늘 공짜 밥 먹이는데 몰두하는 것을 보노라면 씁쓸하죠. 아니 심각한 사태죠.”

문제는 무상급식 논란이 4·11 총선으로 전선을 옮겨 다시 불붙고 있다는 점이다. 새누리당의 ‘선택적 복지’와 민주통합당의 ‘보편적 복지’ 대립구도가 바로 그것이다. 새누리당은 유치원까지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려면 1조4380억원 가량이 추가로 드는데 이는 결국 시·도 교육청 다른 부문의 예산에서 끌어와 충당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앞세운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학교 급식은 단순히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차원이 아니라 심신 발달과 인격형성에 도움이 되는 공교육 기능의 하나”라며 강행론을 굽히지 않고 있다.

무상급식뿐 아니라 다른 복지공약이나 정책도 다 마찬가지다. 한쪽을 새로 채우려면 결국 다른 한쪽을 헐어야 한다. 이름하여 돌려막기다. 심지어 보이는 선심성 복지를 위해 보이지 않는 알짜 복지까지 허무는 우를 범할 우려마저 생긴다. 초등학교 ‘방과 후 과학교실’이 딱 그 모양이다. 지금 공짜 밥 먹자고 무형의 미래 과학기술 복지를 포기하는 게 얼마나 안타깝고 위태로운가? 아무튼 ‘화끈한 복지는 다른 화를 부른다’는 말만큼은 꼭 되새김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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