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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살아남은 저축은행 안전한가 - 돈 넣기 전 부실비율부터 따져라

[Issue] 살아남은 저축은행 안전한가 - 돈 넣기 전 부실비율부터 따져라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이 ‘몇 개월만 더 시간을 주면 충분히 회사를 살릴 수 있다’며 영업정지 대상에 올랐다는 것을 사실상 자인했다고 보도된 다음 날 서울 대치동 솔로몬저축은행 본점에서 만난 김모(68)씨는 예금을 찾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고 있었다. 김씨는 “저축은행이 하는 소리를 곧이곧대로 믿은 내가 바보”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는 “지난해 토마토저축은행에 예금을 했다가 회사가 퇴출 당해 고생을 한 뒤부터 다시는 저축은행에 돈을 맡기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솔로몬저축은행에서 망할 걱정도 없고 금리도 높다기에 혹시나 해서 돈을 넣었다가 또 낭패를 당했다”며 “이자가 조금 적더라도 이제는 진짜로 시중 은행을 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축은행은 이제 부실과 불신을 대표하는 금융회사가 됐다. 언제 망할지 몰라 불안하고 무슨 비리가 터질지 몰라 찜찜함을 떨쳐내기 어렵다. 금융 소비자들이 이런 인식을 갖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당시 업계 수위 달리던 부산저축은행을 시작으로 지난해 상반기에만 8곳, 하반기에 또 8곳이 영업정지를 당했다. 올 들어서도 4곳이 무너졌다. 다달이 1곳 이상의 저축은행이 사라졌다는 얘기다.



저축은행 신뢰 땅에 떨어져대주주들의 비리는 더욱 실망스럽다. 영업정지 전날 돈을 빼돌려 밀항을 하다가 체포되질 않나, 빼돌린 돈을 그 와중에 친구에게 도난 당하지 않나.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를 쓰고 있다. 검찰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들어가면 대주주의 불법 행위는 고구마 줄기 뽑혀 나오듯 할 것이 뻔하다. 고객들은 과연 저축은행에 ‘피 같은 돈’을 맡길 수 있을지 의심할 수 밖에 상황이다. 게다가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앞으로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선 판이다.

이에 대해 저축은행 업계는 한 번만 더 믿어달라며 앞으로는 괜찮을 것이라고 읍소하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 부실해지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피해를 입었던 저축은행들이 거의 대부분 떨어져 나갔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부동산 PF 대출은 저축은행 몰락의 직격탄이었다. 부동산 PF 대출이란 현재 담보가치보다 부동산 개발을 완료했을 때의 담보가치에 주목하는 상품이다. 개발이 제대로 진행되면 높은 이자에 짭짤한 대출 수수료까지 챙길 수 있지만 그게 안 되면 형편 없는 담보에 거액을 빌려주는 꼴이 된다.

솔로몬·한국·미래저축은행 등 이번에 영업정지를 당한 대형 저축은행을 포함해 금융당국의 구조조정으로 무대에서 사라진 회사 가운데 십중팔구는 부동산 PF 대출에 발목을 잡혔다. 작년 말 기준 3270억원의 PF 대출 자산을 갖고 있었던 솔로몬저축은행의 경우 정상 대출로 분류된 것은 810억원에 불과했다. 한국저축은행도 처지는 마찬가지다. PF 대출 1825억원 가운데 531억원만 정상 대출이었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이번에 살아남은 저축은행들은 부동산 PF 대출을 하지 않았거나 했더라도 비중이 아주 작아 퇴출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매우 작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금융감독원의 ‘한풀이’식 검사로 어지간한 부실은 대부분 잡아냈다는 근거를 대기도 한다. 저축은행이 줄줄이 무너지고 비리에 연루되면서 감독기관인 금감원은 치명상을 입었다. 저축은행의 부실을 덮어주고 심지어 비호해줬다는 혐의로 금감원 소속 20여명이 검찰에 불려갔다. 이명박 대통령은 스스로 개혁을 해보겠다는 권혁세 금감원의 건의를 면전에서 거절했다. 금감원으로서는 뭔가 성과를 내놓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몰렸다. 금감원이 독기를 품게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금감원은 지난해 여름 85개 저축은행에 대한 일제 검사에 앞서 고사를 지냈다. 사무실에 돼지머리까지 사놓고 더 이상 욕된 모습을 보이지 말자며 다짐했다. 전화기는 모두 녹음이 되는 것으로 교체했다. 외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검사에 매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후 저축은행 업계에서는 엄격하다 못해 가혹하다는 불만이 나올 만큼 검사 강도가 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금감원이 자기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조금이라도 어려운 저축은행을 다 망하게 하려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번에 영업정지를 당한 저축은행의 한 대주주는 “감독 당국이 보신주의에 빠졌다”며 맹비난하기도 했다.

금감원의 이번 검사가 정당한 것이었는지 조직방어 차원에서였는지 모르겠지만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다. 지금 살아 남은 저축은행들은 금감원이 나름대로 열과 성을 다해 진행한 검사를 통과한 곳들이다. 하지만 저축은행이 괜찮다고 확신하기에는 여전히 불안하다.

저축은행은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몰려 있다. 은행들이 사업 영역을 치고 들어오는 상황에서 새마을금고·신협 등 경쟁관계에 있는 상호금융 업계와의 힘든 싸움도 이겨내야 한다. 저축은행은 골프장, 콘도업, 대형 식당, 사우나 등에 독점적으로 대출해 줄 수 있는 지위를 은행에 빼앗겼다. 저축은행 업계가 입만 열면 ‘먹을거리’가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이유다.

대출뿐만 아니다. 은행보다 절대적 우위에 있던 예금 금리도 옛날 이야기가 됐다. 저축은행 영업정지 전 마지막 영업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증산빌딩에서 벌어졌던 일은 저축은행 업계가 얼마나 어려운 사정에 빠져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증산빌딩 1층에는 산업은행이 있고 2층과 3층에는 각각 솔로몬저축은행과 미래저축은행이 자리잡았다. 이 날 솔로몬저축은행과 미래저축은행 고객들은 줄을 서서 예금을 뺀 다음 다시 줄을 서서 산업은행에 돈을 맡겼다. 산업은행의 1년 만기 특판 정기예금의 금리는 연 4.3~4.5%다. 같은 상품의 저축은행 업계 평균인 연 4.35%보다 못할 게 없다. 저축은행은 새마을금고나 신협처럼 비과세 상품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야말로 ‘샌드위치’ 신세다.



구조조정도 진행 중개인 신용대출을 늘리려고 해도 여의치가 않다. 중간 이하 신용등급의 고객에 빌려주는 돈은 경기가 조금만 사나워지면 금방 부실채권으로 둔갑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가계대출은 한국 경제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저축은행 M & A업계의 한 전문가는 “개인 신용대출이 언제 화약고로 돌변할지 알 수 없다”며 “저축은행을 사겠다고 나서는 곳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부동산 PF 위험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저축은행들의 부담을 일시적으로 덜어주겠다며 2008년부터 맡아준 부동산 PF 대출은 아직도 5조원 이상 남아있다. 이 채권은 내년부터 만기가 돌아온다. 한숨 돌린 저축은행은 캠코로부터 다시 부동산 PF 대출을 받아와야 하고 대손충당금을 또 쌓아야 한다.

저축은행의 약점을 이렇게 나열하다 보면 ‘상종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여러모로 따져볼 때 저축은행이 어려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다. 안전한 저축은행도 많다. 신한, KB, 우리금융, 하나 등 시중은행이 인수한 저축은행은 ‘뒷배’가 든든하니 망할 우려가 적다. 동부저축은행 등 내실 경영을 꾀해 구조조정 파고를 남일처럼 보는 저축은행도 있다. 무엇보다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5000만원까지는 정부가 책임지고 보장해주니 과도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저축은행의 건전성을 확인해보려면 공시를 찾아보면 된다. 공시자료를 통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 10% 이상인지 확인한다. 10% 미만이라면 다소 주의할 필요가 있고 5% 이하는 금융당국의 적기 시정조치 대상이다. 이자를 3개월 이상 받지 못하는 대출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지는 고정이하 여신비율은 10% 미만이라야 한다. 공시자료를 찾기 번거롭다면 저축은행중앙회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주요 경영지표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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