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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ss] 독일의 여유에 속타는 유럽

[compass] 독일의 여유에 속타는 유럽

나무에 수액이 차오르는 요즘 정부들은 시들어간다. 모든 유럽 강국이 국민성에 따라 행동한다.

심각한 금융위기가 한창인 때 프랑스는 최근 75%의 부자 과세와 퇴직연령 하향조정 공약을 내건 ‘부자 사회주의자(a champagne socialist)’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리스의 선거에서도 기성 정당들이 군소정당들에게 패했다. 이는 선거를 또 다시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한편 요즘 청년 실업률이 50% 안팎에 이른 스페인에서는 구슬픈 플라멩코 음악이 통곡처럼 울려 퍼진다.

런던에 도착해 몇 시간도 안 돼 탑승한 지하철에서 이런 안내방송이 들렸다. “발차가 지연되고 있음을 사과 드립니다. 필수 인력이 늦게 도착했기 때문입니다(기사가 늦잠을 잤다는 뜻). 하지만 런던 지하철은 거의 정상적으로 운행되고 있음을 고객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그 ‘거의’란 말은 참으로 영국적인 표현이다.

3일 뒤 베를린에서 마침내 제대로 돌아가는 유럽을 목격했다. 어느 정도까지만 말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나는 유럽연합에게 가장 부유하고 성공한 나라의 지독한 게으름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쿠르퓌르스텐스트라세 거리에 있는 카페 아인슈타인의 녹음 우거진 정원에서 오후 3시가 됐는데도 점심식사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목요일이다. 요즘은 독일 보통사람의 근로시간이 한국인보다 연간 1000시간 적다는 사실을 아는가? 휴가여행지에 도착할 때 독일인이 이미 거기에 있고 여행이 끝날 때도 그들은 남아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니 많은 미국인 투자자가 유럽을 포기할 법하다. 그들은 2년간 유럽에서 세계에서 가장 따분한 드라마를 지켜봤다(“앙겔라 독일 총리가 새로 등장한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사이 좋게 지낼 수 있을까? 허수아비 정치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대신 새로 들어선 마리오 몬티 총리는 해결사 역할을 해낼까?”) 그리고 마침내 그리스가 리먼브러더스(파산으로 금융위기를 초래한 미국의 투자은행) 역할을 맡아 유로존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건 시간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편 독일인들은 여전히 “시간을 벌자”는 이야기를 한다. 유럽중앙은행이 계속 돈을 찍어내서 부실한 지중해 연안국가 은행들에

돈을 빌려줘 그들이 허약한 지중해 연안국 정부의 채권을 사들이도록 하는 한 결국에는 만사가 잘 풀릴 것이라는 뜻이다. 착각이

다. 남유럽 국가들의 경제는 거덜난 상태다. 대공황 때의 상황에 필적한다. 실제로 적자재정을 지속할 만한 정책적 대안도 소진된 상태다. 부채는 이미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하지만 불황에 맞서 세금인상과 지출 감축을 실시하는 독일의 긴축처방은 한 주 한 주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적인 신용을 잃어간다.

갑자기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해 옛 통화 드라크마로 복귀하고 대폭적인 평가절하의 영향을 감수하기로 하는 도박을 감행하는 상황도 그렇게 비현실적인 일은 아니게 됐다. 갑자기 투자자들이 “그들이 떠날 수 있다면 다음은 누가 될까?”라는 뻔한 질문을 던지는 끔찍한 상황도 비현실적인 일은 아니게 됐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토마스 사전트가 훌륭한 수상기념 강연에서 지적했듯이 유럽은 현재 1781년 연합규약(미국 최초의 헌법) 제정 이후 1789년 현재의 헌법으로 대체되기까지 미국의 상황과 얼추 비슷하다. 지금은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 같은 인물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는 각 주가 안고 있는 부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연방 정부가 떠맡도록 준비작업을 했다. 유럽의 현연합구조가 1999년 창설된 통화통합과 양립할 수 없다는 인식이 절실히 필요하다. 해법은 있다. 지난해 11월 이후 유럽집행 위원회는 ‘안정화 채권(Stability Bonds)’의 발행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왔다. 이 채권은 회원국의 국가부채 중 최소 일부라도 유럽 연합(즉 독일)의 전적인 신의와 신용으로 떠받치게 된다. 개별적으로 보면 이들 부채 중 일부는 턱없이 많다. 하지만 모두 뭉뚱그려 유로존 전체 GDP와 비교하면 감당할 만한 수준이 된다.

걸림돌은 프랑스 사회주의나 그리스의 포퓰리즘이 아니다. 독일의 자기만족(complacency)이다. 베를린은 살기 좋다. 독일 제조업의 수도인 뮌헨은 살기가 더 좋다. 주점에서 맥주를 마시는 독일 보통사람을 붙들고 왜 독일 GDP의 최대 8%를 해마다 지중해 연안 국가들에게 이전할 각오를 해야 하는지를 설명해 보라. 벽을 보고 말하는 격이다. 내 국민성 이야기의 반전이 여기에 있다. 독일은 2세대에 걸쳐 무력으로 유럽을 정복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지금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가능해졌는데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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