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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ghts] 동성결혼 을 지지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

[rights] 동성결혼 을 지지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

2007년 봄 버락 오바마의 대권 도전이 잘해야 비현실적으로(quixotic at best) 보이던 때였다. 전에 그의 연설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기에 그를 좀 더 가까이서 뜯어봐도(under closer scrutiny) 과연 그럴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워싱턴 DC 조지타운의 한 호화 아파트에서 열리는 비공개 모금행사에 초청해 달라고 부탁했다. 기사는 쓰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단지 오바마를 가까이서 보고 그와 그의 성격을 더 잘 이해하고 싶었다.

그 행사의 문답 시간에 한 여성이 모성의 투지(maternal grit)로 밖에 부를 수 없는 비장함으로 오바마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내 아들은 동성애자예요.” 갑자기 장내가 조용해졌다.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권리를 당신은 왜 지지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너무 실망스러워요.” 오바마도 그녀를 계속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저도 당신 아들의 온전한 평등을 원합니다. 결혼에 수반되는 권리와 혜택을 전부 다 받기를 원합니다. 진정입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단어는 종교적 감정을 너무 많이 불러일으킵니다(But the word ‘marriage’ stirs up so much religious feeling). 제 생각에는 시민결합이 최선입니다(I think civil unions are the way to go). 결혼과 평등하게 간주된다면 말입니다.”

가슴이 철렁했다(My heart sank). 이 인정 넘치는 흑인 오바마가 ‘분리 평등(separate but equal)’의 해법을 주장하는가? 차별하지 않는다면서도 흑백을 분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의 결혼을 차별하는 결혼 분리(marital segregation)를 과연 그가 지지하는가(실제로 오바마 자신이 태어났을 무렵 미국의 여러 주에서 그의 부모 같은 흑백 결합을 중죄로 간주했다)? 오바마는 1996년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에 출마할 때 결혼 평등(marriage equality)을 지지한다고 이미 선언하지 않았던가(현재 오바마 행정부는 시카고의 동성애 신문 아웃라인스의 설문지 답변은 오바마의 자필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타이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바마가 시카고에서 다녔던 제러미아 라이트 목사의 교회는 흑인 교회 중 결혼 평등을 지지한 아주 드문 교회가 아니었던가? 그의 갑작스러운 얼버무리기(equivocation)가 이해되지 않았다. 순전히 정치적 계산(pure political calculation)이라면 모를까.

그러면서도 자연스럽지 않다는 사실을 그가 아는 듯이 뭔가 어색한 듯했다. 동성애자의 평등을 원하지만 그들의 결혼은 원치 않는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둘 중 어느 하나만 취할 순 없다. 이 문제에서 오바마의 고통스러운 얼버무리기는 한마디로 그의 긍정적인 메시지 “예스 위 캔”이 아니라 “예스 위 캔트(Yes, we can’t)”에 해당됐다. 그러나 그가 그 여성의 질문에 답한 방식 때문에 그게 그의 진심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가 정치적 계산과 민권에 대한 자신의 핵심적인 믿음 사이에서 고뇌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오바마가 둘 다의 경우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냉철하고(cold) 차갑고(steely) 가차 없고(ruthless) 계산적인 정치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궁극적으로는 올바른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지난주 오바마는 실제로 올바른 일을 했다. 그는 ABC 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동성결혼에 지지를 표했다. 백악관 소식통은 내게 오바마가 그 인터뷰를 한 뒤 어깨에서 짐을 내려놓은 듯이(as if a weight had been lifted off him) 편안해 했다고 전했다. 물론 그는 조 바이든 부통령이 선수를 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일정을 앞당겨 발표했다.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인 바이든은 지난 6일 NBC 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동성 결혼을 전적으로 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해 이 문제를 공론화했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오바마는 재선 전에 동성결혼을 지지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백악관 소식통은 만약 오바마가 지난해 뉴욕의 주상원의원이었다면(주의회가 동성결혼을 합법화시켰다) 찬성표를 던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묻지 않았다. 그래서 ABC의 토크쇼 ‘더 뷰(The View)’에서 자신의 소신을 밝히려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바이든이 선수를 치는 바람에 그는 갑작스러운 소동을 잠재우려고 부리나케 ABC 뉴스의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에서 흑인 앵커우먼 로빈 로버츠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거기에도 계산이 깔려 있었다(Even this was calculated). 두 흑인 사이의 대화에서 동성결혼 지지 발언이 나오면 흑인사회 내부의 반대를 잠재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우연히도 바로 그 전 날 노스캐롤라이나주는 주헌법에서 동성애 커플의 모든 권리를 금지하도록 결의했다. 미국의 동성애자들은 그 화요일 밤의 정서적인 어두움의 캔버스 위에 오바마가 밝아오는 여명을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나는 기대하지 않았다. 많은 다른 사람처럼 실망을 각오했다. 그러나 오바마의 인터뷰를 볼 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 결혼식이 떠올랐다. 머리 속으로는 생각했지만 심정적으로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 순간이 심리적으로 사람을 얼마나 변화시키는 효과가 있는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내가, 그리고 미국의 모든 동성애자가 인간임을 미국 대통령이 확인해 준 순간이었다. 그 사실이 뜻밖의 분수령을 이뤘다. 오바마는 인터뷰 한 건으로 사회의 주류(mainstream)를 바꿔놓았다. 이어 해리 리드, 스테니 호이어 등 민주당 지도부 인사가 오바마를 지지하고 나섰다. 몇 년 전만해도 말도 안된다고 간주되던(only a few years ago was regarded as simply preposterous) 생각을 이제 민주당 전체가 수용했다. 그 반응으로 공화당 대선후보 미트 롬니는 말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다(And in response, Mitt Romney could only stutter).

물론 그 뒤엔 냉철한 정치가 있다(There was, of course, cold politics behind it). 오바마의 선거자금 모금자 중 동성애자가 6분의 1이나 된다. 오바마는 그들의 돈이 필요하다. 월스트리트는 2008년과 달리 올해는 지금까지 오바마를 재정적으로 지원하지 않았다. 몇몇 유대인 기부자는 이스라엘 문제 때문에 오바마 지원을 보류했다. 또 오바마가 최근 연방정부 하청업체들을 대상으로 반동성애 차별을 금하는 행정명령을 내리지 않겠다고 발표했을 때 동성애 기부자들은 그를 완전히 따돌리겠다고 협박했다. 동성애 파워브로커들의 단합과 열렬함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격언이 지금도 여전히 통한다는 점을 입증했다. “당신의 말에 동의하고 그 일을 하고 싶으니 내가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달라(I agree with you, I want to do it, now make me do it).”

선거자금 외에도 청년층의 지지를 받아야 할 필요성이 그런 결단을 내리게 한 요인이었다. 오바마는 청년층의 지지가 반드시 필요하며, 그들은 결혼 평등을 전폭 지지한다. 최근 30대 미만이 2008년에 비해 염려스러울 정도로 선거에 무관심했다(the under-30s were looking worryingly apathetic). 동성결혼 지지가 그들의 관심을 다시 끌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미트 롬니(동성 커플의 모든 권리를 금하는 헌법 수정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와 정반대 입장을 취함으로써 오바마는 올 11월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핵심 전략을 실행에 옮겼다. 이번 대선을 선택의 선거(a choice election)로 만드는 것이다. 선택의 선거라면 승산이 있지만 경제위기가 휩쓴 지난 4년에 대한 신임 투표(a referendum)라면 패할 수 있다. 지난주 특히 워싱턴포스트지가 청소년 시절 롬니의 동성애 학생 폭행 뉴스를 전한 뒤에는 선택이 더욱 확실해졌다.

더구나 최근의 갤럽 조사가 또 다른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현재 미국인의 절반이 결혼 평등을 지지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지지의 성격이다. 결혼 평등을 지지하는 민주당원은 65%에 이르지만 공화당원은 22%에 불과했다. 그러나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무소속 유권자가 57%나 됐다. 그들이 이 문제에서 공화당보다 민주당에 훨씬 가깝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동성애자 권리가 쐐기 쟁점(a wedge issue, 여론을 분열시키는 사안)이라는 점이 확인됐다. 그러나 2004년과 달리 지금은 민주당에 유리한 쐐기 쟁점이다. 여성도 결혼 평등을 더 많이 지지한다. 그럼으로써 지난 봄 피임과 관련된 논란 후 이미 벌어진 견해의 성별 격차를 더욱 벌여놓았다. 가톨릭은 어떨까? 주교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평신자들은 유대인 다음으로 동성결혼을 지지한다(Catholics are second only to Jews in their support for gay marriage). 조 바이든 부통령이 그들 다수를 대변했다.

이 모든 점을 감안하면 오바마의 동기(motives)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순전히 기회주의(opportunism)가 아닐까? 그러나 약간 뒤로 물러나 동성애자 권리에 관한 오바마의 실적을 평가해 보면 사실 이번 동성결혼 지지 표명은 일탈이 아니었다(this was not an aberration)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번 일은 3년 동안 진행돼 온 과정의 불가피한 정점이었다. 오바마는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이 문제를 진행시켰다. 막후에서 조정하며 장기전으로 가져가는 방식을 말한다(leading from behind and playing the long game). 그는 이 쟁점을 정면으로 다루면, 특히 경제가 좋지 않을 때는, 역효과가 난다는 사실을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서 배웠다. 그래서 시기를 기다렸다. 그의 첫 걸음은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의 여행 금지법(HIV travel ban) 폐지였다. 부시 전 대통령이 서명했지만 그때까지 시행되지 않고 있던 법이었다. 이 역시 그 과정이 여러 달 동안 질질 끌었다. 그러나 백악관은 모든 사항이 법적으로 완벽해야 뒤탈이 없다고 고집했고 결국 그 일을 무난히 마무리지었다.

그 다음 오바마는 동성애자의 군복무 문제를 두고 진전이 느리다며 동성애 운동가들과 기자들(나도 포함된다)의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의 오판이었다. 오바마는 현명한 계산에 따라 클린턴과 달리 직접 그 일을 밀어붙이지 않았다. 그는 변화를 주창하는 선구자가 되지 않을 생각이었다(he would not be the front person to advocate the change). 그 일은 대신 마이클 멀린 합참의장에게 떠맡겼고 공화당 소속인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 지원토록 했다. 오바마는 군 최고위 간부와 국방장관을 서서히 끌어들임으로써 공화당의 허를 찔렀다(he outmaneuvered the Republicans). 그런데도 그는 2010년 중간선거 후에야 그 일을 성사시켰다. 그처럼 시간을 끌면서 그는 우리 동성애자들을 짜증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후 공화당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동성애자임을 밝힌 한 군인이 후보들에게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했고, 해군 홈커밍에서 동성 커플이 키스하는 사진이 미국 전역에 깔렸으며, 퇴역 해군이 해병대 남자친구의 부대에 찾아가 청혼하는 등 믿기 힘들 정도로 문화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동성결혼 문제에서도 오바마와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이미 연방 ‘결혼 보호법(DOMA, 결혼은 남녀간의 결합이며 동성 커플에게 연방 정부는 법적 이득을 부여할 수 없다는 내용)’을 위헌으로 간주하고 동성애자 차별에 대한 철저한 법적인 검토가 필요하며, 따라서 행정부가 더는 법정에서 DOMA를 옹호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2011년 2월까지 오바마와 홀더 장관은 결혼 평등의 헌법적 논리를 법무부의 상당한 무게로 떠받쳤다는 이야기다. 그러자 캘리포니아주의 주민발의 8호를 담당하던 변호사들은 이를 중요한 발전으로 평가했다. 법무부의 주장처럼 결혼에서 동성애자 차별이 평등 보호 조항을 위반하는 것이라면 DOMA는 당연히 폐지될 운명이다. 그리고 그 결정을 내림으로써 오바마는 최근 인터뷰에서보다 결혼 평등을 훨씬 크게 증진시켰다. 금상첨화로(To add icing to the cake)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미국의 경우 동성애자 권리가 세계 전체의 인권에 필수적이라고 판단하며 미국은 그에 따라 외교를 수행할 것(the U.S. would conduct diplomacy accordingly)이라고 처음으로 밝혔다.

한 차례의 대통령 임기에서 이처럼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전례는 없다. 꼭 4년만에 오바마는 민권 문제에서 JFK로부터 LBJ로 옮겨갔다. 희망을 주는 멋진 연설로 시작해서 그 영감을 주는 말을 실현했다는 뜻이다. 오바마는 군 지도부 같은 저항 세력을 끌어들임으로써 그렇게 했다. 그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인다는 생각에서 우리는 무절제하게 불만을 표출했다. 나는 CNN 방송에 나가 오바마 대통령이 군복무 금지 문제에서 동성애자들을 배신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의 분노는 점점 커졌다. 때로는 오바마가 의도적으로 우리를 부추겨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도록”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sometimes I wonder if he goaded us into “making him do it.”). 만약 그게 진짜 의도였다면 기막힌 전략이었다.

그러나 오바마에게는 냉철하게 계산하는 정치나 민권 수호 약속보다 더 깊은 무엇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역사를 통해 동성애 경험의 핵심은 자기가 늘 있던 자리에서 쫓겨나는 느낌이었다. 소속감은 있지만 실제로 소속되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a sense of belonging and yet not belonging). 동성애자는 대부분 이성애자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하면서 이유는 잘 모르지만 자신의 부모와 같은 결혼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다른 사람, 심지어 부모에게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그런 사실을 끝까지 숨긴다. 이런 미묘한 소외감(this sense of subtle alienation), 즉 가족을 사랑하지만 그들에게서 배제됐고 동년배들과 다르다는 느낌을 모든 동성애 어린이들이 갖는다. 수치심의 날카로운 고통도 느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전부가 무슨 뜻인지 깨닫게 된다. 과거에는 대개 부모와도 나눌 수 없는 비밀을 혼자 간직한 채 침잠했다. 가족의 내부자인 동시에 외부자로서 살아갔다(living as an insider outsider).

방식은 다르지만 오바마가 살아온 이야기도 그와 다르지 않다. 그는 흑인 아이로 하와이, 인도네시아에서 백인 조부모와 백인 어머니의 손에 자랐다. 그런 곳에선 피부색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옛 라이프지를 읽다가 자신의 ‘다름(otherness)’을 발견했다. 피부를 희게 보이려고 표백 치료(bleaching treatment)를 받은 흑인들에 관한 기사였다. 그들은 백인이 돼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오바마는 회고록에서 당시의 감정을 이렇게 돌이켰다.

“얼굴과 목이 화끈거렸다(I felt my face and neck get hot). 온몸이 뻣뻣해졌다(My stomach knotted). 글자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the type began to blur on the page). ... 자리를 박차고 나가 내가 알게된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면서 설명이나 확약을 받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무엇인가가 나를 제지했다(But something held me back). 꿈에서처럼 새로 알게된 두려움을 이야기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와서 나를 집으로 데려갈 때는 나는 미소를 지었고 잡지는 제자리에 꽂아졌다. 방과 공기도 이전처럼 조용했다.”

버락 오바마는 동성애가 아니라 흑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커밍아웃’해야 했다(Barack Obama had to come out of a different closet). 그는 자신의 흑인 정체성을 찾고 그 정체성을 백인 가족과 조화시켜야 했다. 동성애자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고난 뒤 이성애 가족과 조화시켜야 하듯이 말이다. 오바마가 성장한 미국에는 자신과 같은 아이를 위한 공간이 없었다. 흑인이지만 사랑스러운 백인들에게 둘러싸였고, 그리워하던 아버지와 떨어졌고(동성애자가 흔히 겪는 또 다른 경험이다), 이름에서 배리와 버락 사이를 오갔고, 커가면서 미국적인 인종 정체성이 필요했지만 그에 반항하거나 때로는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어른이 돼서 자신의 집과는 전혀 다른 공동체를 발견한 뒤 제자리에서 쫓겨나거나 소외되지 않고서 양쪽 모두에 속하려고 발버둥치는 상황, 이런 게 바로 동성애자의 경험이다. 지금은 그러기가 어느 때보다 쉬워졌다. 그러나 정서적 상처가 완전히 없을 수는 없다. 동성애자가 동성애자가 되는 방법을 알게 되듯이 오바마는 흑인이 되는 방법을 배웠다(Obama learned to be black the way gays learn to be gay). 그리고 오바마가 의지가 굳고 카리스마 강한 전문직 흑인 여성과 결혼하면서 자신의 진정한 가족을 배제하지 않고 이전과 다른 가족을 형성했다. 오바마는 차별을 없애려고 열심히 노력했고(did the hard work of integration), 이전에는 자신을 위한 공간이 없던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대통령으로서 그는 우리 전체를 헌법상으로 대표했다.

나는 늘 오바마가 동성애자와 그들이 처한 곤경을 직감적으로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상황과 너무도 비슷하기 때문이다(because it so mirrors his own). 그리고 그는 결혼의 사랑과 희생이 영혼을 치유하고 통합하고 재건할 수 있다(the love and sacrifice of marriage can heal, integrate, and rebuild a soul)는 사실을 잘 안다. 아무튼 동성애자 권익 운동의 요점은 사람들이 동성애자가 되도록 돕는 게 아니라 그들이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도록 해주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이것이 오바마가 평생 해온 일이었다. 최근 그는 많은 다른 사람을 위해 그 공간을 더욱 넓혔다. 동성애라는 정체성의 다른 우리 속에 갇혀 해방을 간절히 원하며, 사랑하는 가족과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존엄성을 되찾고 싶어하는 사람들 말이다(trapped in different cages of identity, yearning to be released and returned to the families they love and the dignity they deserve).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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