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어렵게 길 닦으니 대형사가 신바람

어렵게 길 닦으니 대형사가 신바람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회사원 강모(31)씨는 8월 말부터 제주도로 닷새 휴가를 떠난다. 회사 일이 바빠 남들보다 늦게 휴가를 떠나지만 오히려 만족하고 있다. 저비용항공사의 저렴한 요금을 최대로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강씨가 저비용항공사인 A사 항공기를 타고 김포에서 제주까지 가는 데 예약한 편도 항공료는 불과 1만9900원. KTX를 타고 웬만한 남쪽 지역에 가는 것보다 싸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국내 저비용항공사(LCC·Low Cost Carrier)들은 여름 성수기에 호실적을 기록했다. 제주항공의 김포·부산·청주~제주 국내선 탑승률은 7월에 94%, 8월 1일부터 15일까지 95%였다. 휴가철이 끝나가는 비수기인 8월 16~31일 예약률도 85%다.

티웨이항공은 국내 LCC 이용객이 많이 찾는 김포~제주 노선에서 올해 2분기 탑승률 1위를 기록했다(4월 94.7%, 5월 90.8%, 6월 91.7%). 7월엔 94.1%, 8월 15일까지 95.2%를 기록 중이다. 이스타항공은 7월부터 8월 14일까지 김포·청주·군산~제주 노선 탑승률이 96%로 전년 대비 5%포인트 늘었다. 진에어와 에어부산 등 대형항공사의 자회사를 포함한 국내 LCC 5개사의 올 상반기 국내선 점유율은 44%에 이르렀다.

국내선뿐만 아니다. 저비용항공사의 국제선 탑승률도 증가했다. 이스타항공에 따르면 이 회사의 인천~나리타(일본), 인천~방콕(태국) 노선은 올해 성수기인 7월에서 8월 14일 기준 탑승률이 각각 81%, 91%였다. 지난해보다 각각 15%포인트, 16%포인트 늘었다.

김포~송산(대만) 노선도 72%로 19%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제주항공의 일본 오사카, 홍콩 취항 노선은 86~94% 탑승률을 기록했다. 이스타항공의 올해 상반기 국제선 탑승객수는 총 22만4298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1.2% 증가했다. 다른 LCC들도 국제선 탑승객수가 전년비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LCC 관계자는 “LCC의 국제선 탑승률이 높은 수준까지 올라온 것은 이용객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안전성 우려를 떨쳤다는 의미”라며 “LCC에 대한 편견을 딛고 신뢰도가 그만큼 높아진 것으로 볼수 있다”고 설명했다.


LCC의 국제선 점유율도 늘어국제선은 다양한 기내판매로 부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뿐더러 해외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이스타항공 관계자

는 “국내선보다는 국제선의 수익성이 좋다”며 “수익성 강화를 위해 LCC들이 국제선 노선 개척과 서비스 강화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일본 나리타에 이어 올해 3월에 오사카, 5월에 김포-대만 타이베이, 7월 태국 푸켓 노선에 새로 취항했다. 제주항공은 9월 27일부터 괌으로 향하는 신규 노선을 취항하는 등 총 14개의 국제선 노선을 구축했다. 티웨이항공도 일본 후쿠오카, 방콕, 타이베이 등의 라인업을 갖춘 채 신규 취항을 노리고 있다.

독립 LCC 3사의 국제선 점유율이 오르자 국내 대형 항공사가 이들을 견제하고 있다.대한항공은 자회사인 진에어를, 아시아나항공은 자회사인 에어부산을 내세워 국제선항로 개척과 여행 상품 홍보 등에서 독립 LCC 3사를 직간접적으로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립 LCC A사 관계자는 “국토해양부가 항공 운수권을 배분할 때 대형항공사계열 LCC가 확률적으로 더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는 구조적으로 별도 법인이 심사에 함께 참가하는 데서 기인한다. 대한항공과 진에어, 아시아나항공과 에어부산은 별도 법인으로 각각 국토부의 배분 심사에 참가해 둘 중 한 곳이 배분 받을 확률을 높이고 있다. 절차적으로 문제는 없지만 경쟁사의 확률은 그만큼 떨어뜨리는 ‘견제 효과’를 내는 것이다.

여기에 대형 항공사들은 운수권 획득 후 노선을 모회사-자회사간 공동 운항 방식으로 활용하거나, 기존에 갖고 있던 국제선 노선 일부를 자회사에 이양하는 식으로 LCC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국토부가 운수권 배분 때 LCC가 다녀야 할 단거리 노선에도 대형사를 참여하게 하는 건 사실상의 특혜”라며 “필리핀 같은 단거리 노선의 경우 국토부가 LCC 배점에 신경을 더 써

서 운수권을 고르게 줄 수 있도록 기회를 확대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공항 이용료, 운수권 배분 배려해야국토부 관계자는 운수권 배분에 대해 “LCC 5개사가 레드 오션에서 경쟁하는 상황인데 국가가 나서서 육성책을 내놓을 시기는 지

났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민간 전문가 11명이 참여하는 항공교통심의위원회가 공정하게 배분 심사를 하고 있다”며 “오히려 새로운 운수권 배분이 있을 경우 대형사 위주 시장에서 LCC들한테 더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토부는 항공운수권 배분 심사에서 안전성, 이용자 편의성, 시장 개척 노력도, 지방공항 활성화 노력도, 항공운송사업 연료효율 개선도(온실가스 감축) 등을 평가 항목으로 두고 있다.

독립 LCC 측에서는 영업과 정비 면에서도 불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독립 LCC의 B사 관계자는 “진에어와 에어부산은 모회사에서 영업과 정비를 거의 다 해준다”며 “이들은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릴수 있지만 우리는 정비에 더 많은 비용을 쏟아야 하고 영업에서도 불이익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대형 항공사들이 수시로 여행사들을 ‘관리’하면서 자신들의 자회사가 아닌

다른 LCC 상품을 얼마나 쓰고 있는지 살피는 등 눈치를 준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독립 LCC들은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C사 관계자는 “저운임을 유지해 많은 이용객의 편의를 증진함으로써 여행업과 경기 활성화에 기여하는 게 LCC의 존재 이유인데도 정부 지원은 미비하다”며 “예컨대 공항 이용료를 좀 더 저렴하게 해주는 등의 혜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LCC들은 공항 임대 때 시설 이용료를 일반 대형항공사와 동일하게 책정 받고 있다. C사 관계자는 일본 오사카 간사이 공항의 사례를 들면서 “우리나라도 공항 이용료 변경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한다.

간사이 공항은 따로 LCC 전용 터미널을 갖추고 피치항공 등 공항을 이용하는 LCC에게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용료를 부과한다. 일본 정부가 뒷받침하면서 대형 항공사보다 이용료 면에서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국토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공항 이용료의 경우 공항공사 쪽에선 적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만큼 우리 마음대로 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권은비부터 김지원까지...부동산 큰손 ‘연예인 갓물주’

2현대차그룹 계열사 KT?...대주주 심사 받는다

3尹, 24일 용산서 이재명 회담?...“아직 모른다”

41000만 영화 ‘파묘’ 속 돼지 사체 진짜였다...동물단체 지적

5비트코인 반감기 끝났다...4년 만에 가격 또 오를까

6‘계곡 살인’ 이은해, 피해자 남편과 혼인 무효

7“적자 낸 사업부는 0원”...LG화학, 성과급 제도 손질

8“말만 잘해도 인생이 바뀝니다”…한석준이 말하는 대화의 스킬

9 비트코인 반감기 완료...가격 0.47%↓

실시간 뉴스

1권은비부터 김지원까지...부동산 큰손 ‘연예인 갓물주’

2현대차그룹 계열사 KT?...대주주 심사 받는다

3尹, 24일 용산서 이재명 회담?...“아직 모른다”

41000만 영화 ‘파묘’ 속 돼지 사체 진짜였다...동물단체 지적

5비트코인 반감기 끝났다...4년 만에 가격 또 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