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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은 낮추고 만족은 높인다

문턱은 낮추고 만족은 높인다



“분명히 회사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데도 방법이 없습니다. 어디가 아픈지를 모르는 겁니다. 그런데 의사를 찾을 돈이 없습니다. 한 달에 1억원이 넘는 컨설팅 비용을 감당할 중소기업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저희에게는 수억원의 이익보다 이게 더 큰 선물입니다.”NH농협은행이 제공한 컨설팅을 받은 한경영인의 소감이다.

고철을 재생하는 이 중소기업에는 얼마 전까지 현금흐름표조차 없었다. 그러니 돈이 어디서 오고 어떻게 나가는지 알 방법이 없었고 어디선가 새고 있어도 막을 수가 없었다. 이 회사에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바로 NH농협은행이 운영하는 기업경영컨설팅팀이었다. 회계사, 세무사 등으로 구성된 컨설팅팀은 지방에 있는 이 회사로 내려가 3주간 함께 생활하며 회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찾았다. 단기간에 경영자에게는 재무의 중요성을 가르쳐줬고, 실무진에게는 구체적인 자금 계획을 세우는 법을 일러줬다. 한달 뒤가 무서웠던 회사는 어느새 내년과 미래를 내다보는 회사가 됐다. 이렇게 회사를 바꿔놓은 컨설팅의 대가는 0원이었다.

NH농협은행이 제공하는 이 무료 컨설팅서비스는 짧은 시간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히트 상품이 됐다. NH농협은행 관계자는“현재 3개의 기업에서 상담이 진행 중이고 올해만 30여개 업체에 무료로 컨설팅을 제공할 계획”이라며 “중소기업과 상생하는 차원에서 농협 측이 비용을 전액 부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협식 기업금융 사업의 일환이다.


지자체와 손 잡고 금리 우대 혜택사실 NH농협은행은 기업과 친한 은행은 아니다. 1961년 농협중앙회 설립 당시의 신용사업은 고리채 문제 해결, 안정적인 농업자금 공급에 그 목적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농민조합원을 중심으로 한 개인금융이 먼저 발달했다. 본격적인 기업금융의 시작은 2001년 기업여신 전문점포 8곳을 시범 운영하면서다. 아직도 개인금융 비율이 50%를 넘는다. 기업금융과 개인금융 비율이 6:4 정도인 다른 은행들과 차이가 나지만 앞으론 다르다.

시중은행들이 도시지역에 기반을 두고 사업기반을 넓혀온 것과 달리 지역사회에 영업기반을 둔 덕분에 NH농협은행 기업금융의 주 고객군은 자연스럽게 중소기업이 됐다. 2012년 7월말 기준으로 NH농협은행의 기업자금 대출은 총 61조1000억원 규모. 그중 약 77%인 47조3000억원이 중소기업 지원자금으로 비중이 대기업에 비해 월등히 높다. 올해 중소기업 대출 역시 지난해 말보다 1조3000억원이 늘었다. 경기 침체 속에도 중소기업에 빌려줄 돈은 아끼지 않았다는 뜻이다.

NH농협은행 기업금융 점포는 대기업을 전담하는 7개 대기업RM센터와 전국 48개 기업금융점포, 본부 내 1개의 영업부를 포함해 총 56개로 구성돼 있다. 가장 큰 특성은‘지역친화’, ‘중소기업’, ‘농식품전문’으로 요약된다. NH농협은행은 올해까지 94개 지방자치단체와의 155건의 금융협약을 체결했는데 2012년 6월 현재 지자체협약 대출금 규모는 약 4조원에 달한다. NH농협은행 전체기업대출 금액의 약 6.5%에 해당한다. 협약을 맺은 지자체 관내 중소기업에게는 최대 1.4%의 우대금리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또우수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이노비즈), 한국경영혁신협회(메인비즈)와 금융지원협약을 체결하고 회원사에 대해 최대 1.8%의 금리 우대 혜택을 준다. 7월말까지 총 902개 업체에 약 5000억원의 자금을 지원했다. 이정환 NH농협은행 기업금융전략팀장은 “지난해 12월에는 한국환경공단과 금융지원 협약을 맺고 녹색성장기업에도 약 2200억원의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이 절대 다수인 농식품기업에 대한 여신지원 강화는 NH농협은행의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부분이다. NH농협은행은 올해 2월 ‘행복채움 농식품기업 성공대출’을 출시했는데 7월 24일까지 잔액은 약 9조4000억원에 달했다. 거래업체는 10만개를 넘어섰다. 우수농식품기업의 경우 신용여신한도를 최대 50%까지 상향 적용 받을수 있도록 했고, 신규 대출 때 최고 1.8%의 우대금리를 제공해 이자부담을 크게 줄여준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농림수산업자 우대 정책의 하나인 한국은행 C2자금 관련 사업도 최근 결실을 맺고 있다. C2자금은 한국은행이 국내 유동성 조절

및 통화 관리를 위해 공급하는 중소기업지원자금으로 서울 이외 지역의 중소기업에 최고 1%까지 금리우대를 제공하는 금융자금이다. 법 개정에 따라 올해부터 시행됐는데 은행이 C2 자금을 차입 받아 기업의 대출 금리를 낮춰주는 방식이다. 담보가 부족한 경영약체 중소기업을 위해 신용보증기관에 1500억원을 특별 출연해 보증서담보대출을 확대한 점도 눈에 띈다.

이정환 팀장은 “최근에는 동산담보대출을 출시해 신용대출보다 저렴한 금리로 부동산담보가 부족한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있다”며 “과거 은행이 정규담보로 인정하지 않았던 기계, 재고자산은 물론 농축산물(소, 쌀, 냉동식품 등)까지 정규담보로 인정해 자금애로 해소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NH농협은행은 하반기에도 중소기업 여신 자금 2조7000억원, 추석명절 중소기업 운전자금 5000억원과 함께 적극적인 만기 연장을 실시할 계획이다.


허남선 NH농협은행 기업고객부장

“비올 때 우산 빼앗지 않는다”
2010년 1월 충북의 A건설업체가 부도 위기를 맞았다. 1500억원 가량의 거래가 오고 갈만큼 건실한 회사였지만 무리한 투자에 100억원의 당좌를 막지 못하고 1차 부도를 냈다. 다음날 5시까지 100억원을 구하지 못하면 최종 부도에 몰리는 상황에서 해결사로 나선 사람은 허남선(56) NH농협은행 기업고객부장이었다. 당시 투자금융부를 이끌던 허 부장은 오랫동안 거래해온 A사의 사정을 외면할수 없었다. 이 정도로 무너질 회사는 아니라는 생각에 그는 한 캐피탈사를 찾아가 A사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여신위원회까지 열렸지만 결과는 부결. 위험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않았다. 이번 부도만 막아주면 NH농협은행이 책임지고 회사를 살려놓겠다고 했다.

그러자 해당 캐피탈사는 허 부장의 각서를 요구했다. 고민 끝에 허 부장은 ‘민형사상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를 쓴 뒤 100억원을 빌렸고 A사는 위기를 넘겼다.“시스템상 저희 은행이 당장 지원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순간의 유동성 위기에 무너져서는 안 될 회사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 회사도 그랬겠지만 각서까지 썼으니 저 개인적으로도 최대의 위기였습니다. 다행히 회계법인과 사내 심사역이 한달 동안 회사를 파악한 뒤 살릴 수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의사는 한 번에 한 명의 환자를 살리지만 은행은 한 순간의 판단으로 수백, 수천명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가뜩이나 비가 오는데 우산마저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NH농협은행은 이후 400억원 가량을 지원하며 A사의 회생을 도왔다. 덕분에 A사는 현재 대출을 거의 갚고 안정을 되찾았다. 허 부장은 지금도 후배들에게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되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금 회전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NH농협은행은 대출 외에도 중소기업 컨설팅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같은 취지다.“지난해 기업금융컨설팅팀을 신설해 회계사, 세무사, 상속전문가 등 4명의 전문가가 거래 중소기업의 신청에 따라 무료로 경영 컨설팅을 해주고 있습니다. 컨설턴트가 대상기업에 3주간 상주하면서 경영전략부터 재무회계, 인사조직까지 종합적인 컨설팅을 제공하는데 인기가 좋습니다. 그만큼 이런 서비스에 목말라있었다는 얘깁니다.”

NH농협은행의 기업금융 규모는 다른 시중은행에 비해 작지만 농수산식품 업계나 중소기업에 특화돼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허 부장은 땅에서 출발한 은행인 만큼 끈끈한 정이 느껴지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고 했다.“다른 은행들은 오랫동안 기업금융을 해 온 만큼 어느 창구에서나 기업금융을 할 수 있을 만큼 인력 풀도 갖췄고 노하우도 쌓여 있습니다. 전문가들을 키워내는데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턱이 낮은 은행이 되려면 저희가 더 많이 알아야 합니다.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 등과 적극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기업이 만족하는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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