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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불 껐지만 불씨는 남았다

급한 불 껐지만 불씨는 남았다

유로존-IMF 구제금융 재개로 위기 넘겨…무디스·씨티그룹은 디폴트 가능성 전망



현재 그리스 경제는 최악이다. 5년째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실업률이 계속 상승하고 국가 부채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6월 이후 구제금융 자금을 지원받지 못해 1~3개월짜리 초단기 차입금에 의존하고 있다. 만약 그리스가 국가부도(디폴트)와 유로존 탈퇴를 선언할 경우 유로존 붕괴를 초래할 수 있는 ‘판도라 상자’를 여는 것과 같은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중앙은행(ECB)의 무제한 국채매입 정책으로 9월 이후 시장이 진정되고 있으나, 그리스 문제를 방치하면 스페인 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스는 여전히 유로존 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는 뇌관인 셈이다.

그리스 문제 해결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도 그리스 문제를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을 받고 있다. 독일에서는 총선이 다가옴에 따라 유로존 위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야당의 공세가 갈수록 거세지고, 대외적으로는 은행동맹과 중기 EU예산 합의 등 주요 사안을 처리해야 하는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다.

따라서 독일로서는 그리스 문제를 차일피일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11월 27일 유로존과 국제통화기금(IMF)이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 재개와 부채 경감을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지원패키지에 합의했다.



구제금융 재개와 부채 경감이번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에서 합의된 지원 패키지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6월 이후 중단됐던 구제금융 지원 재개다. 초단기 차입금에 의존하고 있는 그리스 정부가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긴급 자금 수혈이 필요하다. 이번에 그리스에 지원되는 금액은 총 437억 유로다. EU-IMF는 회원국들의 승인절차가 완료되고 민간 보유 채권의 매입 작업이 끝나는 12월 13일에 우선 344억 유로를 지원할 예정이다.

238억 유로는 은행자본 확충에, 106억 유로는 정부재정에 사용될 것이다. 나머지 93억 유로는 2013년 1분기에 트로이카와 합의한 세제개혁 등 긴축이행 여부를 판단해 세 차례로 나누어 지급될 예정이다. 구제금융 자금 지원이 재개되면 그리스는 당분간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전망이다.

둘째는 긴축목표 달성 시한의 2년 연장과 채무경감 조치다. 현재 그리스는 심각한 경기 침체로 EU-IMF와 약속한 ‘2014년 재정적자 3% 이내 축소’를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번 재무장관회의에서 재정적자 비율을 2016년까지 3% 이내로 낮추도록 수정했다.

국가 부채도 1차 채무탕감(1070억 유로) 조치에도 애초 감축 일정에 차질이 예상된다. 현 추세대로라면 2020년 국가부채 비율이 120%가 아닌 144%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유로존 국가들은 국내총생산(GDP)의 20%(약 400억 유로)에 해당되는 그리스 채무를 탕감해 국가부채 비율이 ‘2020년 124%, 2022년 110%’이 되도록 할 방침이다.

채무탕감은 민간 보유 국채의 저가 매입과 공공부문 채무조정을 통해 이루어질 예정이다. 먼저 12월 12일에 약 100억 유로를 투입해 민간이 보유 중인 630억 유로의 국채 중 절반 정도를 매입한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유로존 국가들과 ECB, EFSF 등이 갖고 있는 그리스 채권에 대해 만기 연장, 이자감면 등을 통해 채무부담을 줄여줄 방침이다.

구체적으로는 유로존 국가들이 그리스 정부에 제공했던 차관(513억 유로)의 금리 1%포인트 인하(1.5%에서 0.5%로 인하), ECB 보유 그리스 채권의 투자수익금(2010년까지 약 110억 유로 예상) 양도, 모든 채권의 만기 15년 연장, 그리스 부담의 EFSF 대출금 보증수수료 0.1% 인하, EFSF 구제금융자금 이자 10년 면제 등이다. 채무탕감이 이루어질 경우 2022년 국가 부채는 GDP 대비 20%포인트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스 정부는 이번 합의에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무디스, 씨티그룹 등은 이번 조치가 유동성 위기를 일시적으로 모면하기 위한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무디스는 ‘원금 탕감’ 조치가 있지 않는 한 그리스의 디폴트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고 보고 있다. 왜 그럴까. 우선 민간 보유 채권의 저가 매입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그리스 정부가 채권 매입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불분명하다. 또한 민간 채권단이 채권을 헐값에 매각할 가능성도 작은 상황이다. 현재 그리스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민간 투자자들은 1차 채무탕감 당시 자발적 채무조정에 참여하지 않는 헤지펀드 등 위험자산에 투자한 투자자들이어서 불리한 가격조건으로 채권을 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새로 수정된 구제금융 프로그램은 그리스 경제에 대한 낙관적 전망에 근거하고 있다. EU집행위는 2012년 추계 경제전망에서 그리스 경제가 내년까지 6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한 후 2014년부터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씨티그룹은 11월 28일 유럽경제전망 보고서에서 그리스 경제가 2015년까지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그리스가 트로이카와 약속한 긴축목표 달성이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스는 2013년 2분기 이후 다시 위기에 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셋째, 이번 채무탕감 조치는 그리스 부채문제를 해결하는 데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대출금리 인하와 만기 연장 등은 채권국 입장에서 분명 경제적 손실이 따르는 결단의 산물이지만, 원금 탕감 조치가 없기 때문에 그리스의 국가채무를 줄이는 데 직접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다.

독일 의회가 11월 30일 그리스 지원을 즉시 승인한 것도 독일 국민들이 반대할 정도로 이번 합의의 재정적 부담이 크지 않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리스의 경제상황이 악화돼 부채비율이 계속 증가하면 원금 탕감 등 특단의 조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는 채권국들이 가장 원치 않는 시나리오다.

독일, 네덜란드 등은 국민 혈세로 지원했던 그리스 차관의 원금을 탕감해줄 경우 국민 저항이 거세질 것을우려하고 있다. 특히 2013년 9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메르켈 총리로서는 원금 탕감 문제가 거론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또한 도덕적 해이 문제도 원금 탕감을 어렵게 하는 정서적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원금 탕감 없인 위기 재발 가능성넷째, 그리스의 추가 긴축을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다. 경제상황이 최악인 가운데 정부의 긴축조치에 대한 국민들의 원성이 극에 달해 있다. 경기 침체가 심화하면 그리스는 새로운 구제금융 자금을 받기 위해 추가 긴축이 불가피하나 정치적으로 더 이상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내각이 불신임을 받게 되어 조기 총선이 치러지면 급진좌파 정당인 시리자가 집권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그리스의 디폴트 및 유로존 탈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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