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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사·적대적 M&A’ 꽃놀이패 확보

‘백기사·적대적 M&A’ 꽃놀이패 확보

일동제약 2대 주주로 올라서…현 경영진 거들며 사업 시너지 노릴 수도



녹십자가 일동제약을 급습했다. 녹십자는 12월 10일 블록딜(시간외 대량거래)로 환인제약이 보유하고 있던 일동제약 주식 177만주(지분율 7.06%)를 사들여 일동제약 보유 지분을 15.35%(384만6800주)로 늘렸다. 지난 3월 일동제약 지분 8% 정도 사들이며 단순투자라고 했던 녹십자다.

이번에 주식을 추가로 매입함에 따라 녹십자는 일동제약의 2대 주주로 올라섰다. 현재 윤원영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27.2%(681만6385주)다. 녹십자와 지분율 차이는 12%포인트에 불과하다. 녹십자 고위 관계자는 지분 추가 매입과 관련 “회사에 여유자금이 있어 일동제약 주식을 추가로 사들인 것”이라며 “단순투자 목적일 뿐 경영권에는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일동제약 보유지분이 적잖은 만큼 일동제약과 다양한 업무제휴를 기대하고 있다”며 단순투자 이상의 목적이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일동제약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녹십자가 일동제약 지분을 대거 매입하면서도 일동제약 현 경영진과 사전 논의를 전혀 하지않았기 때문이다. 일동제약 관계자들은 환인제약이 블록딜을 하겠다고 밝혔을 당시 블록딜 상대방을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일동제약 측은 “아직 녹십자 측과 접촉하지 않았기 때문에 입장을 표명할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녹십자의 속내는 무엇일까. 지분율이 취약한 윤원영 회장을 돕기 위해서 일까. 아니면 적대적 M&A일까.



일동제약 최대주주 지분율 27% 불과업계에서는 녹십자가 당장 일동제약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서기를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일동제약의 지분을 대량으로 보유하면서 앞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동제약 현 경영진은 취약한 지분구조탓에 경영권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일동제약 현 경영진과 녹십자 외에도 이호찬(12.57%), 피델리티(9.99%), 안희태(9.85%) 등도 일동제약 지분 5%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간의 조합으로도 경영권의 향배는 언제든 갈릴 수 있다. 특히 이호찬씨와 안희태씨는 현 경영진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워왔다. 3월 정기주총에서 일동제약 측은 ‘이사책임 경감’ 항목이 포함된 정관 일부 변경 안건을 제안했지만 안희태씨와 피델리티가 반대표를 던지면서 부결된 바 있다.

일동제약과 안씨 측 간의 분쟁은 2009년부터 계속됐다. 안씨는 2009년 정기 주총에서 사외이사 2명과 감사 후보를 추천했지만 표대결에서 고배를 들었다. 이후 안씨는 2010년 정기주총에서 감사 후보를 추천하면서 또 다시 분쟁을 예고했다. 하지만 이금기 회장이 퇴진하고 주총에서 안씨의 제안이 받아들여지면서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녹십자가 이호찬, 안희태씨 등 개인투자자들의 세를 규합하면 지분 37.77%를 확보, 일동제약을 어렵지 않게 인수할 수 있다. 또 녹십자가 이들 개인투자자들의 지분을 블록딜로 매수할 경우 일동제약 최대주주는 간단하게 바뀔 수 있다. 녹십자의 현금성 자산은 1900억원 정도다. 맘만 먹으면 개인투자자들의 지분을 살 수도 있다는 의미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녹십자가 한쪽 발을 담궈놓고 기회를 노리는 상황”이라며 “일동제약 입장에서는 유쾌한 상황일 리 없다”고 평가했다.

녹십자의 부인에도 적대적 M&A설이 불거지는 이유는 녹십자가 일동제약을 인수했을 때 시너지 효과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것 때문이다. 지난해 녹십자 매출 6936억원 중혈액제제의 비중은 44.2%, 백신제제의 비중은 17.1%로 비화학물 의약품 분야가 매출의 60%가 넘었다.

지난해 녹십자의 화학물의약품의 비중은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을 합쳐 27.2% 수준이다. 일동제약은 녹십자와 정반대로 화학물 의약품이 전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일동제약 매출 3385억원 중 아로나민 등 일반의약품은 22%, 전문의약품 66%였다.

김지현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일반적으로 제약사들은 판매품목이 거의 겹쳐 M&A가 이뤄지더라도 별다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반면 혈액과 백신 위주인 녹십자는 화학의약품 전문 제약사와 합쳐질 경우 시너지 효과가 커 M&A에 대한 욕심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제약업계에서는 단 한 차례도 적대적 M&A가 이뤄진 적이 없다. 사업구조가 비슷해 시너지를 노리기 어렵다는 것도 이유지만 제약업계 오너들의 사이가 끈끈하다는 점도 이유로 꼽히고 있다. 제약산업은 국내에서도 가장 업력이 긴 산업이다. 특히 창업주 세대들은 어려운 시기를 함께하며 끈끈한 친분을 나눠왔다.

일동제약 윤원영 회장과 녹십자의 고 허영섭 회장도 과거 교류가 활발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윤원영 회장의 아들 윤웅섭 부사장과 허영섭 녹십자 창업주 아들 허은철 부사장은 영동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평소 친분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제약업계는 여전히 오너들 간에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며 “녹십자가 적절한 명분을 내놓지 못한다면 적대적인 방식의 M&A는 이뤄지기 어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 한미약품이 동아제약의 주식을 대거 사들였을 때도 한미약품이 적대적 M&A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제약업계 원로들이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을 지지하면서 적대적 M&A 시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녹십자가 일동제약의 백기사로 나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녹십자가 개인투자자와 갈등을 빚고 있는 현 경영진의 손을 들어주면서 경영권 방어에 도움을 주고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다. 녹십자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취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에 근거를 둔 시나리오다.



녹십자는 제약업계 M&A의 귀재특히 녹십자가 그동안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국내 제약업체의 인수를 시도해왔다는 점도 적대적 M&A설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녹십자는 제약업계에서는 드물게 M&A를 자주 진행한 회사다. 녹십자는 2010년 삼천리제약의 인수전에 뛰어들었고 이후 중소제약사를 중심으로 인수를 타진해오다 최근 바이오업체 이노셀을 150억원에 인수했다.

녹십자는 2003년 대신생명을 인수해 녹십자생명을 설립했다. 녹십자는 몇 차례 증자 과정을 거쳐 녹십자생명에 총 1600억원 정도를 투자했다. 녹십자는 지난해 현대차그룹에 녹십자생명을 매각했다. 매각금액은 2283억여원으로 녹십자는 8년 만에 약 683억원의 차익을 올렸다.

또 취약했던 일반약 부문을 보완하기 위해 상아제약과 경남제약을 인수했는데 경남제약은 시너지 효과가 적다고 판단해 다시 매각했다. 녹십자는 2003년 10월 210억원에 경남제약을 매입했고, 2007년 245억원에 경남제약을 HS바이오팜에 매각했다. 녹십자는 2002년 상아제약을 481억원에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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