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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irement - ‘고독 남편 vs 우울 부인’ 갈등 고조

Retirement - ‘고독 남편 vs 우울 부인’ 갈등 고조

회사형 인간의 대량 은퇴로 가족붕괴 가속화…노인범죄도 사회문제로 떠올라



바야흐로 한국도 고령·장수사회로 접어 들었다. 고령대책이 절실하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 정부 재원은 한정돼 있다. 은퇴세대의 자발적인 노후준비도 부족하다. 가진 자산은커녕 일거리조차 없어 은‘ 퇴=빈곤’의 함정에 빠지기 일쑤다. 있는 돈도 부동산에 물렸거나 밑 빠진 자녀양육에 거덜난 지 오래다. 가족해체까지 우려된다. 묘책은 없을까. 차선은 있다. 일본 사례의 교훈이다.



2012년에 단카이세대 본격 은퇴 시작2012년은 장수대국 일본 사회의 중대한 분기점이었다. 2012년을 계기로 확실한 은퇴대국 꼬리표가 붙기 시작해서다. 전후 베이비부머(단카이세대·1947~49년생)의 선두주자가 65세로 본격 은퇴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이들 대량 은퇴는 3년간 모두 800만명에 달한다.

애초 60세 정년을 감안해 2007년에 발생할 걸로 봤지만 법률개정으로 정년을 5년 늘린 결과다. 재정 불안으로 연금지급을 늦춘 것의 후속조치다. 그 5년이 2012년에 끝났다. 앞으로 새로 꺼낼 카드가 없다는 얘기다. 일부 기업이 법정정년(60세)을 초과한 것도 모자라 65세 이후까지 계속 고용 중이지만 아직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에따라 은퇴자를 둘러싼 갈등·폐해 이슈가 빈발하고 있다.

갈등은 다각적으로 목격된다. 먼저 은퇴 남편은 가족붕괴를 가속화시킨다. 적어도 가족해체를 야기한 불씨를 댕겼다는 혐의는 짙다. 현역시절 40년 넘게 ‘회사인간’이었던 일본 남편에게 정년퇴직은 익숙함과의 결별을 뜻한다. 낯선 세계와의 불가피한 조우다. 출근은 없어졌고 명함은 사라졌다. 대신 상실감만큼 낯선 ‘가족’이 불현듯 눈앞에 나타난다. 뒤늦게 가족애를 외치며 의탁공간을 찾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요리를 대접하고자 부엌을 전전하지만 누구도 반기지 않는다. 세탁기 작동방법조차 모른다. 자식과의 대화는 허공을 가른다. 성격을 ‘죽이면’ 그나마 버틴다지만 직장간부로 끝낸 외길인생에 양보·타협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냥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아내에게 빌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물기 뭍은 낙엽(濡れ落ち葉)’이니 버리기가 더 힘든 ‘산업폐기물·대형쓰레기(粗大ゴミ)’란 별칭이 생겨난 배경이다. 맘 붙일 데라곤 애완견뿐이다.

물론 나름 변신은 시도한다. 잃어버린 가족을 찾으려는 고군분투다. 하지만 대부분은 때가 늦었다. 처음엔 애쓰다 대부분 나중엔 포기한다. 집안에서 남편 공간은 하나하나 없어졌기 때문이다. 소파에 앉았지만 유령 취급의 투명인간일 뿐이다. 이는 ‘코슈(孤舟)’로 비유된다. 망망대해에서의 외로운 배 신세다. 자폐적인 상황에서 알코올중독자로 연결되는 출발점이다. 지켜보는 가족은 더 혼란스럽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가장의 존재는 그간의 가정질서를 어지럽힌다.

아내 반응을 예로 보자. 급작스런 남편과의 하루 24시간은 실로 위협적인 스트레스다. 그래서 ‘남편재택 스트레스증후군’이란 병명까지 등장했다. 심하면 우울증으로 번져 극단적 선택까지 낳는다. 심하면 그간 당해왔던 울분해소를 위해 가장권위가 떨어지자마자 ‘가족복수’에 착수한다.

현역시절 고압적으로 가족을 무시·방치한 것에 대한 뒤늦은 보복이다. 은퇴 이후의 가정회귀가 야기한 부메랑이다. 때문에 ‘황혼(熟年)이혼’도 많다. 2007년부터 후생연금 분할제도가 적용돼 남편 연금을 나눠 받을 수 있자 기꺼이 갈라서는 경우다.

은퇴 남편의 문밖 출입은 한층 위험하다. 고독·갈등 해소의 돌파구를 집밖에서 찾을 때 왕왕 범죄 등 사회병폐로 연결돼서다. 키워드는 ‘망주(妄走)노인’ 혹은 ‘폭주(暴走)노인’이다. 2010년 베이비부머의 사회부적응을 다룬 『단카이 몬스터』란 책은 이들을 미쳐서 날뛰는 괴물로 비유한다.

은퇴 세대의 망주(妄走)로 가슴앓이 중인 피해대상이 그만큼 많다는 이유에서다. 개별 가정은 물론 지역과 기업도 포함된다. 부제는 더 놀랍다. ‘망주(妄走)노인들의 사건부(事件溥)’다. 주요 언론도 베이비부머의 대량 퇴직이 기형화된 고령괴물을 양산했음에 주목한다. 착각에 빠져 도저히 쓸 수 없는 아이 같은 아저씨가 야기한 사회갈등이 대표적이다.

책은 은퇴 중년의 민폐를 몇몇 에피소드로 표현해냈다. 착각에 빠져 사는 정년자, 시키기만 하는 관리직, 쓸 수 없는 베테랑, 쇼와(昭和, 1925~89년의 연호)적인 인간 등이 그렇다. 젊은이가 바라보는 고령 선배의 부정적 이미지다.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힘들뿐더러 집요하게 불만을 쏟아내는 회사인간의 현재 모습도 부정적이다.

퇴직했는데도 회사에 출근해 이전 부하에게 이리저리 명령하는 사례는 유머를 넘어 섬뜩하기까지 할 정도다. 그래도 자부심은 강하다. 일본 경제를 일으킨 주역이란 프라이드다. 또 본인은 절대 노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퇴직 후 지역공동체에 들 때도 전성기 기업전사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

문제는 집이다. 주눅이 들 수밖에 없어서다. 인생후반전의 준비는 빈약하다. 추상적인 스케줄로 갈팡질팡하는 게 보통이다. 시간은 넘치는데 취미가 없다. 퇴직 이후 스케줄이 텅텅 비는 것에 비례해 초조함은 높아진다. 상황은 어렵고 대안은 마뜩찮다. ‘회사인간=조직인간’이었는데 뒤를 봐줄 조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퇴직 후 ‘○○회사 OB회 아무개’라는 명함을 만들어 다니는 극단적인 사례까지 있다. 이마저 없으면 불안해서다. 반대로 회사와 사회는 이들을 돌봐줄 의지도 여유도 없다. 그 갈등분출의 결과가 망주와 폭주 노인인 셈이다.

그래도 망주는 낫다. 폭주로 연결되면 보다 심각해진다. 청년세대로서는 연금갈등에서 확인되듯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노인범죄 탓에 사회적 반발감까지 느낀다. 실제 범죄통계를 보면 노인범죄는 갈수록 증가세다. 일본의 범죄율은 떨어지는 추세다. 소년흉악범죄는 물론 일반흉악범죄도 격감했다. 2010년 살인사건 인지건수는 2년 연속 전후 최소 수준을 기록했다.

반대로 노인범죄는 특이하게 매년 증가세다. 존재확인용 단순절도부터 폭력·살인 등 강력범죄 중 고령 초범이 적잖다. 노인 인구는 2배 늘어났는데 노인범죄는 5~7배나 증가했다. 법령·실무상 기소유예가 많다고 보면 감춰진 노인범죄는 훨씬 많을 수 있다. 늙어 처음으로 갇히는 고령수형자가 사회문제로 떠올랐을 정도다. NHK가 ‘급증하는 노인범죄’라는 특집방송으로 그 심각성을 보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일로 사회와 다시 연결돼야그렇다면 방법은 없을까. 몇 가지 있다. 은퇴 이후의 연착륙 유도방안이다. 해결책은 적극적인 사회 진출이다. 사회생활과의 단절을 최소화해 고립을 막고 소통을 유지하면 적어도 무연사회의 희생자로 전락할 가능성은 작다. 손쉬운 루트는 친구를 사귀거나 커뮤니티에 참가하는 방법이다. 직장친구를 벗어나 은퇴 이후 생활주변에서 친구를 만들자는 운동도 활발하다. 원천적인 갈등해소법은 고령 근로다.

특정 연령이라는 이유만으로 숨어서 물러나는 은퇴(隱退)를 거부하고 신체·의지가 허락하는 한 계속해 일하는 방법이다. 기대효과는 크다. 사회활동과 관계 유지·복구를 통해 고독과 소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돈(근로소득)도 돈이지만 인간적 존재감을 확인하는 적극적 활동주체로 변신시키는 것이다. 근로 단절이 사라지니 갈등발생 확률도 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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