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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irement - 일본은 지금 ‘구매난민(생필품 구입에 어려움 겪는 노인)’ 구출작전 중

Retirement - 일본은 지금 ‘구매난민(생필품 구입에 어려움 겪는 노인)’ 구출작전 중

지역밀착형 소매상권 붕괴 탓에 고령화 후유증으로 대두…택배서비스, 이동 판매 대책 마련



춥고 배고픈 것만큼 괴롭고 불쌍한 건 없다. 전형적인 후진국 실상이다. 이런 풍경이 요즘 부국 일본에서 자주 목격된다. 돈 문제는 아니다. 생필품을 사려해도 사기 힘든 것이다. ‘구매난민(買物難民)’ 문제다.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또 하나의 고령자 문제’라는 부제가 붙은 동일 제목의 책은 벌써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또 구매난민의 절대 다수는 노인이다.

두부 한 모 사자고 1㎞ 이상을 걷거나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노인의 실상은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그도 아니면 100엔짜리 사자고 왕복 1500엔의 택시를 부를 수밖에 없다. 책은 ‘이동수단이 없고 신체·경제적으로 불편한 고령자를 중심으로 구매난민이 심각하게 확산 중’이라고 썼다.



겨울에 지방 사는 노인은 기름 부족에 시달려구매난민은 광범위하다. 가령 겨울에 지방의 노인이면 십중팔구 기름(석유) 부족에 시달린다. 열도 북부의 겨울은 눈 많고 춥기로 유명하다. 난방유가 없으면 생존 자체가 힘들다. 그런데 이곳에 기름 조달이 막막해졌다. 채산 악화로 주유소가 폐업한 결과다. 노후 탱크 교체 비용도 부담스럽다. 6만개(1994년)였던 주유소는 4만개(2011년)로 줄었다. 가뜩이나 주유소가 없는 지방에선 기름 부족이 골칫덩이다. 기름 한번 사자면 일부러 멀리까지 나갈 수밖에 없다. 이들 지역 대부분은 고령 인구가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기름은 그래도 낫다. 노후 난민을 둘러싼 위협은 일상적이다. 생활 인프라의 붕괴는 열도 전역에서 발생한다. 식료품을 비롯한 생필품을 못 구해 생명줄(Life line)이 간당간당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동네상권 붕괴 탓이다. 과거 역세권과 주택가의 연결 거리는 으레 상점가 차지였다. 생선·정육·야채·두부점 등 붙박이형 신선 식재료 취급점포가 대표적이다.

요즘은 황량해졌다. 불 꺼진 채 휴폐업 안내문만 나붙은 곳이 적잖다. 셔‘ 터도오리’다. 문을 뜻하는 셔‘ 터’와 길거리를 말하는 ‘도오리’의 합성어다. 문 닫힌 상점가란 얘기다. 대신 지하철과 연결된 대형 백화점은 붐빈다. 고령 고객을 위한 보조 직원이 대부분 배치돼 짐을 싸거나 운반해주는 서비스가 흔해져서다.

또 버스보단 택시가 애용된다. 기사가 직접 트렁크에 물건을 넣어주고 대문까지 데려다줘서다. 버스는 매출 하락과 구조조정 탓에 노선 폐지가 일상 다반사다. 물론 끌개에 짐을 잔뜩 싣고 힘겹게 귀가하는 고령자가 더 많다. 택시비조차 아끼기 위해서다.

구매난민 또는 구매약자 인구는 일본 전국적으로 657만명에 달한다(2009년). 60세를 넘긴 인구 중 17.1%로 추정된다. 최대 800만 명이라는 통계도 있다. 신선식품 판매점포로부터 거리가 500m 이상 떨어진 노인 인구도 970만명이다. 이 중 350만명은 자동차가 없다. 특히 지방은 680만명이 500m 이상 거리에 산다. 추세대로라면 2020년 60세 이상 노인의 35%가 ‘쇼핑 곤란자’로 예측된다. 경제대국 일본의 감추고픈 실상 중 하나다.

이렇게 된 배경은 크게 3가지다. 먼저 인구 감소(고령화·저출산)가 야기한 연쇄적인 점포 폐업을 들 수 있다. 교외의 대형 점포 출점 경쟁도 통행권이 약한 노인의 구매난민화로 연결된다. 행정슬림화와 행정기능 통폐합으로 공공교통과 공적시설이 줄어든 것도 원인이다. 점포가 없어지거나 멀어지는데 몸은 불편하고 대중교통조차 이용하기 어려워 섬처럼 고립된다.

언뜻 구매난민은 수명과 직결된 의료·간병 문제보다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아니다. 생필품 구매난항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가랑비에 옷 젖듯 천천히 고령인구를 위협해서다. 가령 충분한 식료품을 못 구하면 영양 결핍과 건강 훼손으로 이어진다. 불가피한 한계생활의 연속인 셈이다.

그럼에도 차일피일 미뤄지는 게 또 구매난민 문제다. 최근 심각성이 부각돼 대책마련에 나섰지만 아직은 부실하다. 전국적 유통인프라가 탄탄하고 물자가 넘치는 일본 구매난민의 현실은 더욱 고달플 전망이다. 일본 특유의 유통시장 특성과 고령자의 신체·경제적 한계가 맞물려 문제를 더 키워서다. 특히 지방지역 고령화가 전국 평균보다 10년~20년 빠르단 점에서 지방 폐해의 현재는 일본 사회의 미래로도 연결된다. 고령화가 개인소비를 얼마나 제약하는지도 잘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구매난민은 도심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1960~1970년대 대거 공급된 대도시 인근의 뉴타운과 신도시에 구매난민이 집중돼 있어서다. 당시 입주자가 지금은 고스란히 고령인구로 남겨졌다. 단지 내부의 중소형 점포는 매출 저하를 이유로 문을 닫는 추세다. 청장년 세대마저 이탈하면서 상당수는 유령 도시로 전락한지 오래다. 뿐만 아니다. 골목상권도 거의 붕괴된 느낌이다.

상업통계를 보면 소매업 점포는 172만개(1982년)에서 114만개(2007년)로 줄었다. 최근 10년에만 20% 감소다. 때문에 수퍼에 가고자 택시를 부르는 경우가 흔해졌다. 도쿄 기준 기본요금(710엔)에 호출비용(300엔)까지 들지만 방법은 이것뿐이다. 냉동식품은 그나마도 힘들다.



골목의 편의점 접근성 좋지만 구비 물품 부족더 답답한 건 구매난민의 이유가 돈이 없어서가 아니란 점이다. 노인그룹끼리 자산·소득 격차가 현격해서 그렇지 일본 노인은 현역 세대보다 평균 이상의 경제력을 갖췄다. 그것도 월등하다. 결국 구매난민의 최대 이유는 지역밀착형 소매상권의 붕괴로 정리된다. 이 때 경쟁 점포는 교외 입지의 대형 점포다. 1980년대 후반부터 경쟁적으로 출점 중인 교외점포는 골목상권을 고사 상태로 내몰았다.

기동성이 부족한 고령자라면 구매곤란의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어졌다. 예전이었다면 상점까지 가는 시간이 5분도 안 걸렸지만 이젠 자동차로 최소한 20~30분은 걸린다. 특유의 유통환경도 구매난민을 양산한다. 외국계 대형 쇼핑몰의 잇단 시장철수도 구매곤란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이들과의 경쟁에서 무리한 토종 대형점조차 점차 채산성이 악화돼 도심 입지를 떠나는 추세다. 상점가 가맹점포(조합)는 15만개(1997년)에서 11만개(2009년)로 급감했다.

대안이 없진 않다. 대표적인 게 일본 유통업의 상징인 편의점이다. 골목 곳곳의 편의점은 구매난민에게 단비 같은 존재다. 주지하듯 편의점은 일본 유통업의 패자(覇者)다. 수입된 지 30여년 만에 편의점 혁명을 일으키며 월 평균 10억명의 이용자를 기록 중이다.

포화 우려에도 여전히 5만개에 육박한다. 인구 2200명 당 편의점이 1개라는 계산도 있다. 그만큼 접근성이 좋다. 문제는 질이다. 야채와 생선 등 신선품목이 턱없이 부족하다. 소량 품목을 팔지만 구색 맞추기에 불과해 구매난민의 눈높이와 맞지 않다. 결국 대형 마켓에까지 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편의점의 인스턴트가 노인건강을 위협한다는 여론도 적잖다.



시민단체 주도로 이동장터 열기도한편에선 ‘구매난민 구출작전’이 한창이다. 지자체와 연계된 자원봉사가 눈에 띈다. 일부 지자체는 아예 노인인구의 구매대행을 책임질 임시직원까지 채용했다. 수퍼 폐점 후 고령자의 배송서비스 요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주도로 이동장터를 여는 곳도 증가세다. 특정 요일에 인근 광장을 식재료 판매현장으로 활용하는 형태다. 일부는 지속적인 생활지원을 위해 점포를 임대해 고령자 안심센터로 변신시켰다. 이때 재정지원이 동반된다.

정부는 2011년 구매난민 지원을 시작했다. 개별 진행으로는 예산과 연속성에 한계가 있어 중앙 통제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다. 상점가·편의점·수퍼 등 유통업자 관심이 크다. 정부는 관련 사업비의 3분의 2를 보조한다. 최대 1억엔이다. 가령 택배회사가 점포 접근성을 높이고자 고령자용 차량개조 등을 추진하면 지원한다. 지원방법 등을 소개하는 사례집(구매약자응원매뉴얼)도 배포했다.

구매난민을 구할 방법은 크게 4가지다. 택배서비스, 이동 판매, 점포 접근 수단 제공, 편리한 입지 제공 등이다. 모두 구매환경을 개선하는 처방이다. 택배서비스는 가장 유효하다. 인터넷 수퍼와 생협 등에 의한 신규 서비스도 확장세다. 이동판매는 상품의 현물 확인을 원할 때 효과적이다.

현재 전국의 이동 수퍼 차량은 200대에 육박한다. 자택에서 500m 반경을 설정해 공백지가 있으면 이동 판매를 실시하거나 도심에서도 휴일·야간 영업을 실시하는 게 그렇다. 이동수단 제공도 괜찮은 솔루션이다. 공공교통의 감소 틈새를 보완하는 커뮤니티버스 등이 있다. 점포의 송영버스를 적극 활용할 수도 있다. 인근에 점포를 유치하는 방법은 지역공동체 부활정책과 맞물려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지만 골목상권을 부활시킨다는 점에서 선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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