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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파괴하는 ‘간병지옥’ 쓰나미

가정 파괴하는 ‘간병지옥’ 쓰나미

‘고령사회→노인 급증→노환 증가→간병 필요→금전 부담→가족 해체’ 악순환



‘어머님이 쓰러졌다. 뇌경색이다. 목숨은 구했지만 남은 건 침대생활이다. 얼마 후 치매 진단까지 나왔다. 아내를 설득해 집에서 모셨다. 요양시설을 생각했지만 효도 부담과 친척 압박에 굴복했다. 이게 실수였다. 갈수록 신체·정신적인 간병 피로가 쌓였다. 신경질적인 반응이 집안 공기를 지배했다. 결국 아내가 가출했다. 아내를 찾은 곳은 건널목 앞이었다. 넋 나간 표정에서 남편은 소름이 끼쳤다. 간발의 차이였다’.

일본 주간 경제지 ‘동양경제’ 2010년 10월 23일자에 소개된 실화다. ‘간병지옥’의 극단적 사례다. 결국 주인공은 요양기관에 환자를 모셨다. 2000만엔의 입주비와 월 23만엔의 이용료가 붙는다. 공포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멀쩡하던 중산층을 순식간에 빈곤층으로 떨어뜨리는 게 간병 수요다. 고령사회에서 간병지옥을 피하기 어렵다. ‘고령사회→노인 급증→노환 증가→간병 필요→금전 부담→가족 해체’의 악순환이 생긴다.



중산층이 순식간에 빈곤층으로 전락치매 부모를 모시다 한계에 달한 간병 가족이 가출·자살했다는 식의 기사는 흔하다. 간병지옥에서 버티다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도 많다. 문제는 노인 환자의 간호 기한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힘들어도 끝날 시기를 알면 버티지만 고령자 간호는 그렇지 않다. 간병 주체의 건강·정신만 갉아먹는 데서 끝나지 않고 간호 대상자의 불행으로도 연결된다. 삶의 마지막에 엄청난 폐를 끼치며 슬프게 마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간병 공포는 홀로 사는 고령자일수록 크다. 주로 여성 고령자다. 사회와 소통이 단절돼 있다 보니 각종 방문판매 사기에 쉽게 넘어갈 정도로 외로운 처지다. 실제 65세 이상 단독 가구는 남성 130만명, 여성 370만명(2010년)에 이른다. 남성 12%와 여성 25%가 자 산다는 얘기다. 추세는 확산 중이다. 그러나 간병 판정을 받은 사람 중 88%가 “더 불편해도 지금 집에서 살 것”으로 답했다. 대부분은 경제적인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간병 필요가 커질수록 간병시설 이용이 불가피한 걸로 조사됐다. 치매에 대비해 재산관리인을 정해두지 않은 경우도 41%에 달해 부족한 노후 준비를 보여줬다. 간병 필요 때 자택·시설 중 어디를 선택할 지의 고민 수준은 당연히 낮다. 자택 간병이면 특히 철저한 준비가 필수다. 훗날 무연 간병이 되지 않도록 네트워크 확보 등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해둬야 해서다.

간호 비용을 포함한 노후 비용을 미리 챙기고 정리하는 건 필수다. 건강할 때 간호 비용과 재산관리자를 마련해둬야 한다. 이때 주로 활용되는 게 요즘 인기인 후견인 제도다. 판단력이 떨어지거나 간병이 필요할 때를 대비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재산 관리와 간병 수속을 맡겨두는 제도다. 늙고 병들어 침대생활이 불가피할때도 평소의 자금관리를 대행할 사람이 필요하다. 유언장을 작성해두는 것도 불안·갈등을 줄이는 방법이다.

간병 공포의 근원은 아무래도 금전 부담이다. 수요는 느는데 돈이 없어 불안한 것이다. 정부 재원이든 개인 부담이든 돈의 압박에 시달리는 가정이 수두룩하다. 미래는 더 암울하다. 지금은 현역 3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지만 2050년엔 비율이 1대1로 떨어진다. 노인은 늘고 현역은 주니 재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고령화는 간병수요의 증가를 뜻한다.

자금 지원(간병보험) 대상의 요(要)간병 인정 규모는 506만명을 넘어섰다(2010년). 가파른 증가세다. 덩달아 간병보험료 지급액도 늘었다. 2000년 3조엔 중반에서 2010년 8조엔에 육박했다. 결과는 뻔하다. 이용자와 사업자의 부담 증가다. 이용자의 부담 집중은 저소득자의 간병보험 미 가에서 확인된다.

65세 이상 간병보험 수납률은 2000년 93%에서 2008년 85%로 떨어졌다. 사각지대가 늘면서 가족 부담은 커졌다. 요간병 5도(최고 수준)의 경우 가족의 24시간 간병 비율이 절반 이상이다. 1~5도 전체로는 21%가 가족의 종일 간병이다(국민생활기초조사).

특히 간병 가족의 고령화도 눈에 띈다. 이른바 ‘노노(老老)간병’이다. 주요 간병자 중 절반 이상이 60세를 넘긴 동거 가족이다. 가족 간병을 위한 전직·이직자도 증가했다. 2002년 9만명 수준에서 2006년 14만명을 웃돌았다. 그중 80% 이상은 여성으로 ‘간병=여성’의 인식이 자리 잡았다. 가족 간병에 의지할수록 가정환경은 열악할 수밖에 없다. 수입 중단에 따른 금전 부담과 삶의 질 저하 우려가 커진다. 간병과 일의 양립은 사실상 어렵다. 정부가 가족 1인당 93일의 간병 휴가를 법으로 정했지만 이용률은 5.8%뿐이다.

간병 방법은 다양하다. 크게 재택 간병과 시설 간병으로 나눌 수 있다. 재택은 환자를 집에 모시고 각종 간병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입욕이나 야간 대응 등의 서비스를 방문·통근 형태로 받는다. 간병 수준이 낮고 치매증상이 없다면 이걸로도 충분하다.

이에 비해 중증 이상이면 부르는 게 값이다. 이땐 대부분 시설 간병이 불가피하다. 침대생활과 중증 치매로 일상 간병이 필요하면 재택 보호는 무리다. 방법은 시설 간병이 가장 합리적이다. 문제는 금전 부담이다. 비교적 싼 공공시설은 월 20만엔이면 되지만 문제는 공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시설 간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간병 노인 복지시설(특별양호개인홈)에 들어가려면 2~3년은 기다려야 한다. 중증 이상이 아니면 들어가기조차 어렵다. 또 원칙적으로 자택 복귀를 위한 요양시설이라 평생 살 수도 없다. 사실상 대안은 민간 시설이다. 유료 노인홈이 대표적이다. 이것 역시 금전 부담이 크다. 일본 정부도 간병보험 재정악화를 우려해 유료 노인홈의 총량 규제에 나섰다. 웬만하면 집에서 간병하라는 메시지다.

틈새는 주택 기능을 강조한 주거시설(주택형 유료 노인홈과 고령자 전용 임대주택)이다. 차이는 간병 서비스의 상시 제공 여부와 요금 체계다. 시설 간병을 제공받는 유료 노인홈은 ‘동일 간병=동일비용’이 원칙이다. 주택형 주거시설의 간병 서비스는 외부 업자와 별도 계약해 서비스를 받는다. 비용은 서비스에 따라 달라진다.



간병 시설 입주는 ‘거액 쇼핑’간병 수준과 가족 상황에 따라 간병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많게는 수억엔 대에 달한다. 평균 수명이 90세를 웃도는 여성은 최소 수천만엔 이상이란 게 정설이다. 민간 운영 개호시설(유료 노인홈) 비용은 최소 월 20만엔이 넘는다. 물론 정부 지원이 있지만 부족하다.

가사 대행과 시중 같은 서비스를 받자면 별도 비용이 든다. 또 시설입소는 5년~15년 분의 집세를 보증금 형태로 내고 매월 요금을 따로 내야 한다. 많게는 1억엔 이상 요구한다. 더구나 상각 구조여서 나중에 일부만 돌려준다. 그런데도 서비스 품질은 그리 좋지 않다.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직원 퇴근에 맞춰 5시에 저녁 식사를 주거나 기저귀를 정해진 시간에만 갈아준다. 노동력 부족과 직원의 미성숙 등이 문제다. 간병을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간병을 받으려는 취업자까지 있다는 우스갯 소리도 있다. 불만 중 70%는 요금 갈등이다. 간병을 위한 시설 입소는 부모를 위한 ‘최후 효도’ 또는 ‘거액 쇼핑’으로 불린다. 그만큼 잘 골라야 후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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