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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irement - 세대 갈등 치유하는 ‘효도산업’ 뜬다

Retirement - 세대 갈등 치유하는 ‘효도산업’ 뜬다

효도 경영으로 고객 만족 효과 얻는 기업 늘어 … 부동산·여행·유통 업계도 효도상품 마케팅



한국에서도 세대 갈등이 심상찮다. 일부에선 ‘세대 전쟁’까지 염려한다. 기득권을 가진 중·고령 은퇴 인구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청년 세대가 반발하는 양상이다. 한국 사례만은 아니다. 고령 선진국 어디에서든 발생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다만 한국에서는 이제 막 불거졌다. 일자리로 맞서더니 이젠 연금 문제로 옮겨갔다.

노인을 잉여인간으로 취급하며 짐짝처럼 여기는 청년 세대가 적잖다. 이해 못할 건 아니다. 한정된 자원을 목소리 큰 순서대로 나누니 청년 세대 몫은 줄어서다. 그렇다고 세대 갈등의 정당성이 부여되는 건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이해와 협력의 상생시스템이 절실하다.

대결보다 대화가 먼저다. 전통의 공경까진 아닐지언정 노인을 폄하해선 곤란하다. 되레 노인은 소중한 자원일 수 있다. 이들의 경험과 경쟁력을 되살려 부가가치를 높이는 게 현실적이다. ‘노인=지혜 주머니’로 인식을 바꿀 때 복잡한 실타래를 푸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노인의 지혜 축적한 ‘기억 은행’ 번창실제로 일본에선 노인의 지혜 주머니를 사회의 재산으로 후세에 남 기자는 활동이 활발하다. ‘기억의 은행(메모리)’이 그렇다. 주변 고령자를 만나 이들의 ‘옛날 얘기’를 기록·공유하는 프로젝트로 사회적 반향이 크다. ‘기억의 은행’을 경험한 후세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선배 세대로부터 현대 사회의 비즈니스맨이 배움직한 다양한 힌트를 얻는다. 무명의 가난한 노동자가 전후 복구 과정에서 창업해 고군분투하고 동분서주한 놀라운 성과를 거둔 생생한 성공 스토리는 감동 그 자체다.

특히 갈수록 경쟁이 격화되는 현대 사회의 부작용인 각종 병폐를 치유할 처방을 얻는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다. 몸에 맞지 않는 서구적 진단·처방보다 일본 특유의 해결책이나 해법의 단초를 연장자의 지혜 주머니에서 찾을 수 있어서다. 부모 세대의 진심 어린 조언·질타에서 정신적 치유와 만족을 얻었다는 감상 후기가 줄을 잇는다.

노인 공경의 뿌리는 부모에 대한 효도다. 효도가 몸에 익을 때 공경도 쉬운 법이다. ‘내리사랑’만 있지 ‘치사랑’은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의외의 움직임도 보인다. 효심 강조 트렌드다. 잊혀진 효도가 부각된 건 베스트셀러 한 권이 기여했다. 2010년 발간된 『부모가 죽을때까지 하고 싶은 55가지』란 책이다. 2개월 만에 10만부 판매 기록을 세웠다.

지진 피해로 인연 중시가 강조되면서 입소문이 났다. 책엔 부모가 현재 60세면 앞으로 함께 할 시간은 55일뿐이라는 계산식까지 나온다. 80세까지 산다면 1년에 6일을 만나고 그때마다 11시간을 함께 하면 1320시간이라는 결과다(20년×6일×11시간). 24시간으로 나누면 55일에 불과하다. 효도할 시간은 의외로 적다. 이별을 준비해야 할 조바심의 발로다. 기획은 여기서 비롯된다. ‘이렇게 짧은 시간인데 소중한 부모와 무엇을 할 것인가’다.

일부 기업은 효도 경영을 내걸며 독려해 화제다. 효도경영 선두주자는 ‘반도타로’라는 일식 레스토랑이다. ‘반도타로’와 ‘카츠타로’ 등 70여개 점포를 가진 회사로 효도 실천을 직원 의무로 삼아 ‘효도회사’로 불린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효자 직원→성과 향상’으로 이어졌다. 출발은 부모 효도지만 파급 효과는 고객 만족으로 확산됐다. 효도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직원에게 고객이 만족한 것이다. 주변이 즐거워지도록 성심 성의껏 행동하는 첫 단추가 부모 효도란 뜻이다.

효도 의무는 구체적이다. 대표적인 게 월급 용도다. 생애 첫 월급은 효도 실천을 위해 부모에게 쓰도록 했다. 신입사원 합숙 연수에서 세세하게 가르친다. 일거수일투족은 회사가 지도한다. 감사 코멘트와 발언 자세도 연습시킨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표현하기 힘들어 결국 하지 않기 때문이다. 첫 월급을 받은 1개월 후 사후 보고를 받는다. 월급으로 어떤 효도를 했는지 발표·공유한다. 이때엔 회사가 사전에 직원 부모에게 의뢰해 받은 편지가 공개·발표된다.

비슷한 회사는 또 있다. ‘후지주택’은 4월을 ‘효도 월간’으로 지정했다. 촌지 봉투에 1만엔을 넣어 전체 직원에게 지급한다. 2004년부터 시작된 이 제도는 돈을 효도에 쓰는 게 전제조건이다. 나중에 사용 용도를 써서 회사에 제출할 의무가 붙는다. 신입 사원 출근일이 4월 1일이니 첫 출근과 동시에 효도를 떠올리게 된다. 보고 의무까지 있으니 최소 1개월은 효도 화두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 회사 직원이 800명을 웃도니 촌지 비용은 결코 가볍잖다. 회사는 만족한다.

감사하는 마음을 넓히고 회사가 직원 가족까지 챙긴다는 이미지 효과 때문이다. 주주·은행의 사전 양해도 얻었다. 효도 월간 외에도 가족에게 감사를 나타내는 이벤트는 많다. 결혼기념일, 부모 생일에 화환을 보낸다. 버블 붕괴 후 실적 악화로 임원 급여를 줄이는 비상 상황 때도 이런 비용은 줄이지 않았다. 이젠 효도가 새로운 소비 콘셉트로도 떠올랐다.

효도 재화의 소비 대상은 노인이되 구매 주체는 자녀다. 과거 실버상품은 공략 대상을 노인 계층에 집중해 재미를 못봤다. 이젠 다르다. 효도·봉양에 목마른 자녀 세대의 공략 여부에 따라 얼마든지 실수요로 연결할 수 있다. 30대부터 50대 전후가 공략 타깃이다. 부동산·여행·결혼·유통·전자제품 업계가 가세했다.

핵심은 자녀 마음 읽기다. 효도를 커버스토리로 다룬 시사지 ‘주간 다이아몬드’는 “부모의 일로 치환해 생각하면 이해하기 좋고 해결 실마리나 사업 힌트를 찾기도 수월해진다”고 했다.

돋보이는 건 부동산이다. 효도를 위해 3세대가 함께 사는 수요에 주목했다. 지방에 거주하거나 멀리 사는 부모를 모셔와 함께 사는 것이다. 대세는 최근 도심 주거 스타일을 변화시킨 ‘근거(近居) 구조’다. 동거(同居) 폐해를 피해 근접 거리에 살며 동거 효과를 기대하는 형태다.

프라이버시를 지키되 가까운 거리에 살며 부모를 봉양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노림수다. 국물이 식지 않는 거리라는 차원에서 ‘15분의 법칙’이란 말까지 있다. 웨딩 업계는 ‘부모사랑결혼’을 내세웠다. 결혼 주빈으로 부모를 극진히 모시는 경우다. 한국에선 당연하지만 일본 결혼식 때는 그렇지 않다. 케이크 커팅도 부부행사였는데 이젠 가족 전원이 함께 자르는 식으로 부모 사랑을 확인하는 장치를 만들었다.

40~50%의 자녀가 효도 차원에서 부모 여행을 원한다는 결과에 따라 여행사도 부모 패키지 상품을 속속 내놨다. 편리한 호텔·여관을 엄선하거나 문턱을 비롯한 각종 설비와 이동수단을 노인 눈높이에 맞췄다. 간병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를 대동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상품도 인기다.



동거 대신 근거(近居) 활용한 주택분양사실 효도는 인간의 기본 덕목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시대 변화에 따른 이론(마음)과 현실(행동)의 갭이 크다. 특히 효도 당사자가 먹고 살기 어려워져서다. 특히 갈수록 악화되는 추세다. 격차 심화 속 하류화가 심화되니 효도할 돈은 더욱 줄어든다. 결국 효도도 곳간이 넉넉할 때 하는 법이다. 이런 와중에 현대·도시·핵가족화로 가족 붕괴 조짐이 심각하다. 가족 관계 분절에 따른 고립·소외감도 크다.

장수천국 일본에서는 과거에 없던 심각한 노인 문제가 급격히 떠올랐다. 특히 세대 갈등의 근본 뿌리는 희박한 효도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세대를 뛰어넘는 상생이 이뤄질 때 세대 갈등을 잠재울 수 있다. 노인이 아닌 부모, 청년이 아닌 자식으로 서로를 인식할 때 비로소 세대 갈등도 줄일 수 있다. 그 출발이 치사랑의 효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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