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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ITY - 두 얼굴의 민족주의가 지배하는 도시

THE CITY - 두 얼굴의 민족주의가 지배하는 도시

뭄바이, 영국 식민지 시절을 역사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시각이 아쉽다



뭄바이 도심 한가운데 허름한 창고가 하나 있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뭄바이의 본질을 다른 무엇보다 분명하게 말해주는 장소다. 이 도시를 고향이라고 부르는 사람 중 일부의 혈관 속에 흐르는 정신분열증을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징표다. 이 창고는 엘핀스톤 대학과 국립 현대미술관 사이로 난 골목길에 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복잡한 시내 한가운데 있지만 대다수 관광객은 이 창고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을 것이다.

만약 그 창고를 찾게 되면 가슴 높이에 난 구멍에 눈을 갖다 댄 뒤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라. 그러면 단추와 코트, 제복, 그리고 그 제복을 입은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제복을 입은 또 다른 남자가 보인다. 영국 식민지 시대에 유행하던 정글 모자를 썼다. 실물보다 큰 이 동상들은 먼지와 거미줄을 뒤집어 쓴 채 이 작은 창고 안에 숨겨져 있다.

두 동상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영국 국왕 조지 5세와 에드워드 8세다. 이 동상들은 한때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서 있었다. 1960년대 중반 인도 민족주의자들이 동상을 받침대에서 끌어내렸다. 그들의 생각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영국 지배자들이 이 땅을 떠난 지 20년이 지났는데 이 돌덩이들이 아직도 여기 서 있어야 하는 이유가 뭔가?’ 식민지 시절 세워진 동상 대다수가 동물원으로 옮겨졌다. 농담이 아니다.

하지만 조지 5세와 에드워드 8세의 동상은 이 창고 안에 보관됐다. 영국의 식민 지배를 기리는 이 동상들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 둬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외부의 영향을 쉽게 받는 인도인의 특성도 고려됐다. 그 동상들은 거의 반세기 동안 그곳에 서서 식민지 시절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과거를 아는 사람들에게만 그랬다.

이 일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문제 한 가지만 이야기하겠다. 그 창고에서 남동쪽으로 약 800m 정도 걸어가면 사암으로 된 웅장한 건축물이 나온다. 아라비아해를 굽어보는 곳에 서 있는 범상치 않은 이 건축물은 인도문이다. 이 문의 위쪽을 쳐다보면 꼭대기에 이런 글씨가 또박또박 새겨져 있다. “1911년 12월 2일 조지 5세 황제 폐하와 메리 황후 폐하가 인도에 도착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여기서 말하는 조지 5세는 앞서 말한 그 동상의 주인공과 같은 사람이다. 그 문에서 불과 800m 떨어진 곳에서는 그의 동상이 인도인들의 눈에 띄어선 안 된다는 이유로 창고 안에 숨겨져 있다. 하지만 이곳에는 그와 그의 식민 통치를 기리는 멋지고 웅장한 문이 서 있다.

하지만 어떤 용감한 민족주의자도 그 문을 감출 창고를 세우진 않았다. 오히려 몇 년 전 프랑스의 한 크리스털 업체가 이 문에 샹들리에를 설치하겠다고 했을 때 인도인들은 이상한 이유로 반대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인간 띠를 형성해 “국가적 기념비”이자 “인도의 유산”인 이 문을 모독해서는 안 된다고 항의했다.

창고 안에 숨겨진 조지 5세 동상과 그의 이름이 버젓이 새겨진 인도문 사이에는 물리적 거리를 훌쩍 뛰어넘는 거리가 존재하는 듯하다. 1965년 자랑스럽게 그 동상을 끌어내린 민족주의자들은 1995년 선거에서 마하라시트라주(뭄바이가 주도다)의 정권을 잡았다.

이듬해 그들은 정권 출범 1년을 성대하게 기념했다. “우리 주정부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마노하르 조시 당시 주지사가 연설을 시작했다. 그 업적이란 과연 뭘까? 도시 정화? 주택 부족 문제의 해결? 아니다. 조시는 식민지 시절 봄베이라고 불리던 주도에 원래 이름 ‘뭄바이’를 되찾아 준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보기엔 도시 개명을 위대한 업적으로 자부하는 사람들이나 조지 5세의 동상은 창고 속에 감추면서 그를 기리는 문은 숭배하는 사람들이나 똑 같다. 우리가 영국인들을 몰아낸 건 잘한 일이다. 하지만 독립 65년이 지난 지금도 식민지의 잔재는 여전히 남아 있다.

도시의 개명에 자부심을 느끼는 얄팍한 민족주의와 조지 5세의 기념물과 관련된 두 얼굴의 민족주의가 그것이다. 이런 비합리적인 태도가 앞으로 또 60년 동안 인도를 망치진 않을까? 인도인들이 영국의 지배를 역사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날이 과연 올까? 지금은 물론 뭄바이라는 이름이 좋다. 하지만 1996년 뭄바이의 개명을 대단한 업적인 양 떠들어대는 조시의 말을 들었을 땐 ‘난 끝까지 이 도시를 봄베이라고 부르리라’고 다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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