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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이 하인즈 비싸게 산 이유는?

버핏이 하인즈 비싸게 산 이유는?

하인즈 부채로 인수 비용 충당 … 하인즈는 저금리 덕에 견뎌



연간 100억원 안팎의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내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의 오너 A씨. 자식이 있긴 하지만 회사에는 관심이 없다. 이제 연로해 좀 쉬고 싶어진 A씨는 결국 회사를 팔기로 했다. 이 회사의 총자산은 1000억원이지만 빚이 거의없어서 총자본도 약 1000억원에 달하는 알짜다.

투자자 B씨가 이 회사를 사들이기로 했다. 장부가격 그대로, 연간 순이익의 10배를 쳐서 1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하지만 B씨는 1000억원이나 되는 현금이 없다. 있어도 회사 인수에 다 쓸 생각이 전혀 없다. B씨는 자기 돈 300억원만 들이고 나머지 인수자금 700억원은 빌리기로 했다.

회사 인수 직후 B씨는 회사 명의로 700억원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자율은 연 4%다. 회사는 이 돈으로 새 대주주인 B씨의 지분 700억원어치를 사들여 소각했다. 이 회사 대차대조표의 대변(貸邊)은 이제 ‘부채 700억+자본 300억’으로 바뀌었다. B씨는 회사에 지분을 되팔아 얻은 700억원으로 인수자금 마련 당시에 빌린 부채를 모두 갚았다. B씨는 이제 이 회사를 전액 소유한 사장님이 됐다.

무엇보다 짭짤한 것은 투입자본 300억원에서 불어나는 이윤이다. 100억원의 영업이익 가운데 금융비용 28억원(700억원x이자율 4%)을 제하고도 72억원의 세전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연간 투입자본이익률이 24%(72억원÷300억원)에 달한다. 빚 없이 회사를 알짜로 운영하던 전임사장 A씨의 자기자본이익률 10%보다 2배 이상 높다.

B사장이 만약 이 회사를 50%의 프리미엄을 얹어 1500억원(회사에 넘겨질 부채 700억원 제외 때 실제 투입자본은 800억원)에 인수했다 하더라도 연간 투입자본이익률은 9%(72억원÷800억원)나 된다. B사장이 만약 이 때 들어간 돈 800억원 가운데 200억원을 연 4%의 이자율로 빌렸다면 연간 투입자본 이익률은 오히려 10.7%으로 높아진다. 연간 이익은 이자 8억원(200억원x이자율 4%)을 더 빼고도 64억원이나 되지만 실제 투입된 자기자본은 600억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상은 이른바 차입 기업인수(LBO:Leveraged Buyout)를 가공(架空)의 사례로 단순화한 것이다. 이런 마술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저금리다. B씨와 B씨의 회사가 연 4%의 낮은 이자율로 돈을 빌릴 수 없었다면 LBO의 매력은 크게 떨어졌을 것이다.



버핏 인수 주식은 고배당 우선주가치투자의 대명사인 워런 버핏이 케첩회사 하인즈를, 그것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주가에 무려 20%의 프리미엄까지 얹어주고 인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수 구조 역시 B사장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인즈 인수자는 이 딜 과정에서 진 빚을 갚기 위해 회사 명의로 21억 달러의 회사채를 발행토록 했다.

그리고 버핏이 인수한 하인즈 주식 121억2000만 달러 가운데 3분의 2에 달하는 8억 달러는 연 배당금을 무려 9%씩이나 지급하는 우선주였다. 미국 월스트리트를 뜨겁게 달군 PC메이커 델(Dell) 이슈도 똑같은 식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낭패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회사에 돈을 빌려준 회사채 투자자들이다. 델에 대한 LBO 소식이 전해진 1월, 110달러 안팎에 거래되던 델 회사채(2021년 만기물) 가격이 95달러로 폭락했다. 이미 90억 달러의 부채를 진 델이 LBO 자금을 대주기 위해 200억 달러의 회사채를 더 발행해야 할 형편이 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빚이 늘어나면 기존 회사채에 대한 델의 상환능력은 급격하게 떨어지게 된다.

하인즈 회사채 투자자들도 버핏 때문에 혼쭐이 났다. 국제신용평가회사 피치는 버핏의 하인즈 인수 발표 직후 하인즈에 대한 신용등급을 BBB+에서 BB+로 강등했다. 한달 뒤에는 BB-로 더 떨어뜨렸다.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의 6.3배 수준이던 하인즈의 부채가 10배로 불어날 것으로 판단한 때문이다.

하인즈가 빚더미에 올라 앉으면 주주인 버핏도 좋을 게 없는 것 아닌가? 그럴 수있다. 하지만 버핏은 이번 딜에서 브라질의 프라이빗에쿼티 회사 3G캐피털과 손잡았다. 버핏은 어느 인터뷰에서 3G 캐피털의 탁월한 회사 운영능력을 보고 딜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부채가 증가해서 생긴 부담은 회사를 쥐어 짜서 ‘효율화’ 해 얼마든지 상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른바 ‘금융억압(financial repression)’은 통상 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이 저축자의 이윤을 박탈해 채무자에게 강제로 넘겨주는 것을 두고 쓰는 용어다. 그러나 중앙은행만 금융억압을 자행하는 건 아니다. 델과 하인즈의 사례에서 보듯이 ‘억압’은 민간 투자자들끼리도 이뤄진다.

‘억압’은 LBO 이후에도 계속된다. 2월, 영국의 한 소매업체는 1억3500만 파운드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2010년 9억5500만 파운드를 투자해 이 회사를 인수한 KKR에게 배당금을 지급하기 위해서였다. 이로 인해 이 회사의 부채는 상각 전 영업이익의 5배로 불어났다.



미국 기업의 부채 급증S&P 캐피털 IQ에 따르면, 프라이빗에쿼티 회사들이 이런 식으로 유럽 기업에게서 받아간 배당금이 1분기에만 23억 파운드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1년 동안 받아간 배당금보다 20%나 많다. 이런 현상은 LBO나 프라이빗에쿼티가 개입된 회사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닌, 주식시장의 광범위한 유행이다.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미국 S&P 500 기업(금융회사 제외)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총 1조2700억 달러로 전년 동기에 비해 416억 달러(6.1%) 증가했다. 석 달 전에 비해서도 3.4% 늘었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쓴 돈이 전년비 10.9% 급증하고, 설비투자 비용은 10.5%, 인수합병에는 15.5%의 돈을 더 썼는데도 어떻게 현금이 이렇게 많이 늘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재산을 팔고 빚을 늘렸기 때문이다. 1분기 중 기업들은 자산 매각을 통해 37억5000만 달러, 부채를 통해서 39억6000만 달러의 현금을 만들어 냈다.

이 모든 것이 저금리 덕에 가능했다. 그리고 이것이 주식값을 사상 최고치 이상으로 끌어 올린 원동력이다. 기업들이 빚을 내서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은 개미투자자들이 은행 대출을 받거나 신용으로 주식에 투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개미들은 실패하기 십상이고, 선수(選手)들은 자주 성공한다는 점뿐이다. 어쨌든 이 랠리에 밑천을 대준 저축자들은 저금리·저수익의 억압에 시달린다. 이런 기업의 회사채에 투자한 저축자들은 회사의 부채비율 상승으로 이중의 억압을 받게 된다.

문제는 언젠가 도래할 고금리의 시대에 발생한다. 만기가 짧은 부채를 많이 진 회사일수록 미래 이자율 상승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된다. 1980년대 남미 국가들이 연쇄적으로 부도를 낸 것도 이 때문이었다. 동시에 만기가 긴 회사채에 투자한 저축자들은 이 순간 제3차 억압에 시달릴 것이다. 시장금리는 대폭 높아졌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낮은 금리의 채권을 계속 보유하기 때문이다.

이는 개별 기업, 개별 투자자에게서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거시경제의 건전성에도 부담이 커진다. 미래 고금리 시대에 기업들의 금융비용이 대폭 증가하면 경제 전반이 고비용·저효율에 빠져들게 된다. 이자는 줄일 수 없으니 사람을 자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을 다시 맞을 수도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중 미국 기업의 부채는 10.7% 급증(연율 환산)했다. 금융위기 직전, 붐의 절정기이던 2007년과 유사한 속도로 기업들의 빚이 불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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