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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간판 인도네시아가 수상하다

동남아 간판 인도네시아가 수상하다

부동산·증시 버블 경고 잇따라 … 정국 혼란이 외환위기 도화선 될 수도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이 찍어댄 돈은 최근 2~3년간 동남아 자산시장의 거품을 키웠다. 인도네시아·필리핀·태국·말레이시아 등지의 자산시장은 채권·주식·부동산 모두 호황을 누렸다. 조정다운 조정도 없었다. 이들 지역 자산 가격과 선진국 자산 가격의 격차도 크게 줄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 M F)·세계은행(World Bank) 등이 앞다퉈 동남아 자산시장의 버블 위험을 경고하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를 뒤흔든 1997년 외환위기의 출발점이 동남아였음을 기억한다면 강 건너 불구경은 아니다.

무엇보다 최근 역내 금융시장 흐름은 16년 전 아시아 외환위기 직전과 매우 흡사하다. 당시 위기를 부른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일본 엔화 가치의 급락이었다. 엔 약세로 ‘달러벌이(수출)’가 시원찮은 탓에 주변 아시아 국가들은 환 투기 세력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최근 일본이 펴는 엔 절하 유도 정책과 나빠진 동남아 국가의 경상수지는 그 때와 기분 나쁘게 닮았다.



아시아 내수 발전론의 함정거품은 언젠가 터진다. 식고 있는 중국의 성장 모멘텀이, 동남아의 불안정한 정치 환경이 언제든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나라는 인도네시아다. 아시아의 새로운 내수성장 동력으로 각광받은 인도네시아가 동남아 버블 붕괴의 진앙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나라의 성장 논리는 2008년 이후 변곡점을 맞았다. 2008년 이전 인도네시아 경제를 달군 성장 논리는 중국 성장 모멘텀의 직접적인 수혜를 받는 자원부국 지위였다. 그 이후 새로 가세한 논리가 ‘아시아 내수 발전론’이다.

중국과 함께 인도네시아는 아시아를 둥글게 연결하는 거대한 내수 고리를 형성할 것이며, 그 과정은 인도네시아 제2·3선 도시의 개발 붐과 인프라 확충으로 정당화될 것이라는 게 이 논리의 골자다. 세계 4위의 인구, 빠르게 상승하는 임금은 거대 내수시장으로서 인도네시아의 가치를 두드러지게 했다. 이 논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에서 반복해 나타나는 버블에는 그럴싸한 성장 논리와 그 이면에 숨은 악마, 즉 신용팽창(부채급증)이 공존한다.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4월에 정책금리를 5.75%로 유지했다. 15개월 연속 사상 최저 정책금리를 유지한 것이다. 뚜렷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물론 미국의 부동산 버블이 최고조로 향하던 시절에도 물가 압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많은 전문가가 인도네시아의 자산 버블 우려를 이유로 정책금리 인상을 점쳤지만 중앙은행은 저리 자금 공급을 멈추지 않았다. 유례없이 낮은 금리 환경과 해외에서 유입되는 직접투자(FDI), 그리고 핫머니로 인도네시아의 신용팽창은 지난 2년간 멈추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4월5일 최종 부도를 낸 인도네시아 부동산개발 업체 ‘바크리랜드 개발’의 신용 사고는 불길한 징조다. ‘넘치는 유동성→비효율적 투자→파산→금융부실화’라는 수순을 밟았다. 바크리랜드 개발은 사업성이 떨어지는 민자고속도로 사업에 투자했다 진 1억5000만 달러의 빚을 갚지 못해 부도를 냈다.

인도네시아의 넘치는 돈은, 수도 자카르타를 비롯한 대도시는 물론 제2선 도시의 자산 가격까지 들썩이게 했다. 이는 중국의 부동산 가격 급등기 때 나타난 모습으로 최근 필리핀·인도네시아에서 진행중이다. 외국계 공단과 해외 자원개발 업체의 진출은 제2·3선 도시의 부동산 버블 형성에 기폭제가 됐다. 이것이 빠르게 불붙는 과정에선 신용팽창이 장약으로 작용했다.

2011년 이래 50% 급증한 민간 부문 대출이 고스란히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된 결과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듯 인도네시아 부동산개발업체들은, 대도시 자카르타의 아파트 가격이 연간 30~40% 뛰는 것은 물론, 제2선 도시의 부동산 가격까지 50% 급등하는 걸 목격했다.

어느 나라나 부동산 버블은 주식시장과 궤를 같이 한다. 인도네시아 증시도 예외가 아니다. 2010년 5월 말 2514포인트였던 인도네시아 종합주가지수는 4월에 5012포인트를 넘어섰다. 주가지수가 3년 새 두 배로 뛴 것이다. 물론 최근 들어 인도네시아 안팎에서 자산 버블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인도네시아 정부는 여전히 내수 발전론 뒤에 숨어 사태의 심각성을 객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지난해 노동자들의 잇단 파업으로 올해 최저임금이 50% 오르면서 가계도 거품 절정기의 달콤함에 푹 빠져 있다.

버블 붕괴는 예고 없이, 아무런 이유 없이 찾아온다. 그저 누군가 돈을 빼기 시작하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다. 돈이 빠져나가는 속도, 즉 버블 붕괴 속도는 유입된 속도에 비례한다. 인도네시아의 경상수지와 무역수지를 살펴보면 인도네시아 경제가 얼마나 분에 넘치는 소비를 하는지, 얼마나 해외 자금에 의존하는지 알 수 있다.

무역에선 적자만 늘었다. 시간이 갈수록 경상적자 폭은 확대됐다. 여기에는 더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하기 위한 자본재 투자(자본재 수입)도 적지 않지만 글로벌 경기와 교역 여건은 인도네시아의 건실한 성장을 담보하기 힘든 상황이다.

3월 18일 세계은행 보고서의 표현을 빌리면 인도네시아 자산시장은 경제 펀더멘털을 이탈해 버블의 조짐을 보여 선제적대책을 필요로 한다. 4월에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역내 경제전망 보고서’는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에 외국인 자금 이탈이 불러올 충격에 대비해 재정을 탄탄히 하라고 주문했다. 우회적으로 표현했지만 IMF의 이 같은 경고는 통상적으로 재정지출을 줄여 미리 금융여력을 마련해 놓으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인도네시아 버블 붕괴를 초래할 촉매로는 어떤 게 있을까. 우선 총선과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두고 심화할 수 있는 정국 혼란이다. 부패한 집권 정당과 이에 맞서는 야당, 그리고 노동자의 투쟁은 인도네시아 정치를 혼돈으로 몰아갈 수 있다. 해외에서 유입된 자본이 가장 싫어하는 시나리오다.



중국 경제 둔화 여파 커무엇보다 인도네시아 경제에서 원자재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중국 경제의 감속이 적지 않은 부담이다. 2011년 기준 인도네시아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5%다. 이 중 55%가 원자재 수출이다. 상당 부분이 중국 경기에 좌지우지되는 품목이다. 더구나 2011년 이후 가파르게 꺾인 인도네시아 원자재 수출 가격은 올 들어서도 별로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중국 경제 둔화에 따른 주변국 쇼크가 예상보다 더 크게 부각되고, 기대를 모은 엔 캐리 자금(저리의 엔화를 대출받아 해외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자금)이 동남아 국가로 이동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서면 인도네시아를 달군 돈은 빠른 속도로 탈출할지 모른다. 10여년 전 외환위기가 그러했듯 일단 위기가 점화되면 한 나라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의 신용경색은 외부 자금에 취약한 태국·베트남·말레이시아로 전염될 것이고, 이 같은 시나리오에선 한국시장 역시 무풍지대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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