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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S자 일몰(日沒)’이 다 아니다

Photo - ‘S자 일몰(日沒)’이 다 아니다

일몰 후 어둠 내린 순천만 풍경도 압권 … 출사 포인트의 속설 맹신 말아야



‘닭이 천 마리면 봉(鳳)이 한 마리’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아주 많은 수가 모이면 그중에 아주 빼어난 하나가 있다는 걸 빗댄 말입니다. 봉황은 현실 세계에 없는 동물입니다. 그만큼 ‘수’의 많음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이때 ‘천’은 ‘셀 수 없이 많다’는 정서적인 숫자입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봉이 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경쟁의 논리를 도입해 볼까요? 봉이 되려면 수천, 수만 분의 일 경쟁을 뚫어야 합니다. 지독한 레드오션에서 살아남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풍경사진이 그렇습니다. 사진의 걸음마를 떼면 대개 풍경사진을 시작합니다. 인터넷에서는 고만 고만한 풍경사진이 넘쳐납니다.



독창성으로 소재 빈곤 극복해야디지털 카메라의 급속한 보급은 풍경사진가에게 재앙이 됐습니다. 아무리 화력 좋은 대포 한방이 있어도 벌떼처럼 덤비는 소총 부대를 이길 수 없는 격이지요. 풍경사진이 레드오션이 되자 프로들은 외국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지금은 남미 아마존의 밀림이나 남·북극과 같은 혹한지, 아프리카 사바나, 차마고도(茶馬古道) 같은 지구촌 오지로 향합니다. 이제 지구촌 오지의 벌거벗은 원주민 사진 한 장쯤 없으면 사진가로 명함도 못내미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러나 프로라면 독창성으로 소재의 빈곤을 극복해야 합니다. 차별화된 시각으로 사람들의 눈에 익은 풍경 사진의 허를 찔러야 합니다. 날씨의 좋고 나쁨같은 운‘ 칠기삼(運七技三)’에 승부를 걸어서도 안됩니다. 풍경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메시지를 담는 블루오션을 개척해야 합니다.

‘출사(出寫)’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출장사진’의 준말로 원래는 직업 사진사가 사진을 찍기 위해 출장을 간다는 뜻입니다. 시대가 변해 지금은 사진동호인이 사진여행을 간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이름난 사진여행지를 가면 아마추어 사진 동호인이 삼각대를 펼쳐놓고 진을 친 모습을 봅니다.

이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대부분 정형화된 틀에 얽매여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면 바다에 일출이나 일몰을 찍을 때는 ‘오메가(Ω)’ 모양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날이 맑아서 해가 수평선에 걸쳤을 때 그 반영으로 해가 오메가 모양이 된다는 것입니다. 일출 때 오메가를 보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까지 등장하는 걸 보면 참 대단한 집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북 청송 주산지 사진은 새벽에 물안개가 끼고, 바람이 없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나무가 수면에 반사돼 데칼코마니 형태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출사 포인트’마다 ‘이곳의 풍경사진은 이래야 한다’는 속설이 있고 초보자들은 이를 도그마처럼 맹신합니다. 물론 사진을 배우는 과정에서 무의미한 말은 아닙니다. 그런 사진의 유형을 살펴보면 미학적으로 이유가 있습니다. 또 이를 흉내 내 보는 것도 사진공부에 도움이 됩니다. 문제는 영혼이 없는 복제품을 만들어 놓고 자기도취에 빠진다는 겁니다.

지난 겨울 철새 사진을 찍으러 전남 순천만에 간 적이 있습니다. 순천만은 자연 경관과 생태환경이 잘 어우러진 곳입니다. 사진 공부를 하기에도 안성맞춤입니다. 평평하게 펼쳐진 갈대밭과 갯벌에서는 빛의 방향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빛의 방향에 따라 달리 보이는 피사체의 모습을 공부하기 좋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찍으며 느린 셔터의 감각도 익힐 수 있습니다. 갈대밭 바로 앞에 산도 있습니다. 전망대에 오르면 발아래 순천만의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집니다. 이곳에서는 렌즈를 바꿔가며 선과 면이 빚어내는 구도와 프레이밍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이날 흑두루미를 비롯해 철새사진을 찍은 다음 전망대로 향했습니다. 순천만의 대표 상품인 ‘S자 일몰’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때마침 이날은 썰물 때 S자 수로가 완전히 드러나는 날이라고 합니다. 해가 지는 위치도 수로와 일치하는, 일년에 몇 안 되는 날 중의 하나였습니다. 예상대로 전망대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사진 동호인 수백 명이 몰려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삼각대를 펼쳐놓고 ‘보초’를 선 겁니다. 이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S자 일몰’에만 집중돼 있었습니다.

순천만 일몰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늦은 오후 황금빛으로 물든 순천만 풍광(사진1)이 더 좋습니다. 때마침 배 한 척이 기다란 궤적을 그리며 지나갑니다. 물이 반쯤 빠진 오른쪽 갯벌의 형상은 거대한 고래의 머리 부분을 연상시킵니다. 순천만은 드넓은 ‘황금의 바다’가 됐습니다.

물이 빠지며 수로가 드러나자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습니다. 해가 기울며 바다가 붉게 물들었습니다. 찰칵거리는 셔터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자 장사진을 친 사람들이 일제히 썰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그들은 S자 일몰을 온전하게 찍었다는 만족감에 들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몰 사진은 해가 지고 난 후 2막이 펼쳐집니다. 하늘에서 파란 어둠이 내려와 붉은 노을을 밀어냅니다. 낮과 밤, 빛과 어둠의 경계, 이른바 ‘매직아워’가 시작됩니다. 황홀한 빛의 시간입니다. 짙은 코발트 빛 하늘에서 아름다운 초승달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찔한 풍경입니다. 초승달과 수로가 일치하는 장소를 찾아 자리를 옮겼습니다. 하늘에도 땅에도 초승달이 떴습니다(사진2). 멈추고 싶은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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