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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미술품 위조범도 위대한 예술가

Art - 미술품 위조범도 위대한 예술가

진품보다 큰 영향 미치기도 … 대중의 맹점과 상식적인 가정 악용
앙리 마티스의 ‘빨간 바지를 입은 오달리스크’ 진품(왼쪽)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현대미술관에 걸렸던 위작.



미술은 불안감 조장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이다. 지난 한 세기가 넘도록 미술가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에게, 또 사회에 대해 의문을 품도록 만들면서 괴롭혀 왔다. 예를 들면 추상표현주의는 가장 근원적인 차원에서 존재론적 불안감을 불러일으켰고, 팝아트는 소비지상주의를 꼬집었다. 하지만 미술계는 고립되고 배타적인 세계다. 또 실제로 미술관을 찾는 소수의 사람들은 큐레이터의 지루한 설명을 듣다 보면 미술품을 보면서 생길 만한 잠재적 불안감이 중화된다.

결과적으로 합법적인 미술품은 우리의 정신을 안전지대 밖으로 끌어내는 데 능하지 못하다. 이와 달리 위조 미술품은 그 일을 아주 훌륭히 해낸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품 위조범은 우리 시대의 으뜸가는 예술가다.

그들이 제작하는 작품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들의 진짜 예술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작품을 진품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맹점과 상식적인 가정을 악용한다. 위조 사실이 발각되면 그 다음엔 그들이 제작한 가짜 걸작이 화제가 된다.

한 판 메이헤른의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 이 그림은 한때 베르메르의 작품으로 알려졌지만 판 메이헤른이 미술사학자의 설명을 듣고 그린 가짜였다.
사람들은 속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해진다(어떤 합법적인 미술품도 이렇게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그리고 자신의 형편없는 판단력을 되돌아보게 된다. 사람들 스스로 속여달라고 청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기분이 드는 건 당연하다. 따라서 위조 미술품은 어떤 합법적인 미술품보다 더 직접적이고 강력하며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1930~40년대의 대표적인 미술품 위조범 판 메이헤른의 작품을 생각해 보라. 네덜란드의 권위 있는 미술사학자 브레디우스는 얀 베르메르(‘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유명한 네덜란드 화가)가 이미 알려진 작품 외에 종교적인 회화도 제작했지만 아무도 그 작품들을 찾지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판 메이헤른은 브레디우스가 설명한 대로 위작을 제작했다. 이 그림들은 기존의 베르메르 작품과 조금도 비슷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작품의 신뢰도를 더 높여줬다. 판 메이헤른은 사람들이 브레디우스의 주장을 신뢰하기 때문에 자신이 그린 가짜 그림이 베르메르의 그림과 전혀 비슷하지 않은데도 진품으로 믿어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둘은 정반대다. (표절자는 다른 사람의 작품을 자기 것으로 내세우지만 위조범은 자신이 만든 것을 다른 사람의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중성이 개입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래서 난 미술품 위조범을 위대한 예술가로 볼 수 있듯이 표절자도 위대한 작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조 미술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표절된 작품이 중요한 건 아니다. 중요한 건 표절이라는 행위 자체다. 사람들을 기만하는 대담성과 표절 행위로 드러나는 사회의 이면이다.

예를 들어 198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도전했던 조 바이든은 가두연설에서 로버트 케네디와 허버트 험프리 등 미국 정치인과 닐 키녹 영국 노동당 당수의 말을 표절했다. 특히 키녹의 자서전에서 따온 부분(그가 석탄 광부의 자손이라는 사실도 포함됐다)은 터무니없었다. 바이든은 키녹의 말을 표절하면서 그의 인생까지 도용한 셈이다.

바이든의 표절 행위는 결국 들통났다. 언론이 아니라 라이벌 후보였던 마이클 듀카키스의 선거본부장에게 꼬리가 잡혔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사람이 남의 말을 표절하고 남의 경험이 자신의 것인양 행세해도 기자나 유권자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스캔들은 ‘정치인들은 배우요, 선거전은 연극 공연’이라는 사실을 실감나게 보여줬다.

미술계가 위조를 지지하느냐 안 하느냐보다는 위조범들이 만들어낸 작품의 진가를 평가하고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들보다 더 나은 작품을 제작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게 중요하다. 미술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 사이에 파고들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불안감 조장해야 예술?전통적인 미술관과 화랑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지만 이미 이런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두드러진 예가 뱅크시 같은 낙서화가들의 작품이다. 낙서화는 질서 파괴적인 측면이 강해 사회적으로 용인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만한 뭔가에 이목을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리장벽에 그린 뱅크시의 정치색 짙은 그림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이스라엘 보안당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몰래 그곳에 들어가 그림을 그렸다.

그의 이 불법적인 작품은 장벽을 세우는 일이 비인도적일 뿐 아니라 소용없는 짓이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하지만 창조적 질서 파괴에서 가장 활동이 두드러진 분야는 뉴미디어다. 미술관에 전시하기엔 부적합한 장르다. 줄리안 올리버와 단야 바실리에프는 ‘뉴스트위크(Newstweek)’라는 최근 작품을 통해 미술품이 얼마나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작품의 원리는 간단하다.

그들은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와이파이 신호를 가로챌 수 있는 도구를 만들었다. 이 도구를 이용하면 사람들이 보고 있는 웹페이지의 내용을 원격 수정할 수 있다. 뉴스 사이트의 기사 제목이나 내용을 다시 쓸 수 있다. 따라서 여러분이 공공장소에서 웹사이트를 통해 내 기사를 읽는다면 그 글은 내가 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모름지기 모든 예술은 이런 불안감을 조장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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