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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수지 나아지자 출구전략 만지작?

재정수지 나아지자 출구전략 만지작?

양적 완화 유연하게 운영할 방침 … 일각에선 장기화 가능성도 제기



무한정 계속될 것 같던, 심지어 최근 규모가 확대될 조짐을 보인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의 양적 완화 행진에 돌발변수가 하나 더 생겼다. 고용시장이 빠르게 회복한 가운데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수지가 급격히 개선됐다.

재정수지 개선은 미국 연방정부의 적자 국채 발행액이 감소한다는 걸 뜻한다. 양적 완화 규모를 조만간 줄이지 않으면 시장에 필요이상의 통화가 공급되고, 미국 국채 거래량이 대폭 줄어들 위험이 있다. 이는 자산시장의 거품을 부추기거나 국채시장의 정상적인 기능을 저해할 수 있다.

5월 1일 연준의 통화정책방향 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성명서에서 ‘양적 완화 규모를 확대할 수도, 축소할 수도 있다’는 문구를 새롭게 집어 넣었다. 현재 월간 850억 달러 규모로 진행 중인 양적 완화에 이처럼 ‘유연성’을 부여키로 한 것은 재정수지의 개선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국채 발행 축소에 맞춰 양적 완화 규모를 줄였다가, 앞으로 국채 공급이 늘어나면 양적 완화도 다시 확대하겠다는 의중으로 보인다. 양적 완화 축소가 단행되더라도 이를 ‘통화정책 긴축 기조의 개시’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미 정부 빚 갚기 나서미국 재무부는 4월 29일 깜짝 놀랄 소식을 발표했다. 이번 2분기 동안 약 350억 달러의 국채를 상환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국채 순상환에 나선 건 2007년 2분기 이후 6년 만에 처음이다. 애초 2월 전망 때만 해도 미국 정부는 2분기에도 총 1030억 달러의 적자 보전 국채를 더 발행해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두 달여 사이에 수지 전망은 무려 1380억 달러나 개선됐다. 3분기 들어서는 다시 2230억 달러의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할 것으로 재무부는 예상했지만, 1분기 발행액 3490억 달러에는 크게 못 미치는 규모다.

미국 연준은 지금 매달 450억 달러어치 국채를 사들이고 있다.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을 놓고 보면, 국채 순발행액이 1880억 달러에 불과하지만 연준의 국채 매입액은 2700억 달러에 달한다. 시장에서 820억 달러의 유통 국채가 사라진다는 의미이자, 그만큼의 돈이 갈 곳이 정해지지 않은 채 시장에 풀린다는 뜻이다.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국채가 공급되면서 가뜩이나 ‘사상최대의 거품’ 소리를 듣고 있는 미국 국채 가격은 더욱 부풀어 오를 위험이 있다. 저금리 현상이 이처럼 심화되면 기록적인 랠리를 펼치고 있는 주식시장을 과열시킬 수도 있다.

이러다 보니 주식시장 내부에서조차 양적 완화 축소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팔루사 매니지먼트의 데이비드 테퍼 대표는 5월 14일 “연준이 양적 완화 규모를 줄이지 않으면 2009년 하반기 같은 광란의 주식시장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테퍼 대표는 지난해 헤지펀드 매니저 중에서 가장 많은 연봉(22억 달러)을 챙긴 것으로 알려진 투자 업계의 거물이다.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이 이렇게 급격히 개선된 데는 세 가지 요소가 동시에 작용했다. 먼저 세수(稅收)가 크게 늘었다. 경기 회복세가 조금 더 빨라지고 있는데다, 연초 재정절벽 협상의 결과로 부유층 세율과 중산층의 사회보장세율이 동시에 인상됐다.

미국의회예산국(CBO)의 수정 전망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개인소득세는 지난해보다 18%, 법인세는 20% 더 걷힐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다 모기지 대출 기관인 프레디맥과 패니매가 미국 정부에 올 1분기에만 무려 670억 달러의 대규모 배당을 실시키로 함에 따라 세외 수입도 급증했다.

3월 시작된 재정지출 일괄삭감(일명 시퀘스터) 역시 경제에 큰 충격을 주지 않은 채 재정수지 개선에 기여했다. 미국 의회예산국은 이 같은 점을 반영해 올해 재정적자 예상치를 6420억 달러로 석 달 전 전망에 비해 2000억 달러나 하향 조정했다. 이에 따라 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2008년 이후 가장 낮은 4%로 떨어질 전망이다. 시장에 공급되는 적자 국채가 대폭 감소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같은 수지개선은 앞으로도 수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의회예산국 수정 전망에 따르면, 미국 GDP 대비 국채 발행 잔액 비중은 2015년부터 가시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연준은 국채 종목별 발행량의 70% 이상을 매입하는 걸 금지했다. 시장의 가격 조정 기능을 저해하는 한편, 유동성 부족으로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레포(환매조건부 채권매매)거래에 필수적인 담보를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단기 자금시장의 작동을 방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전체 발행액의 50% 이상을 인수하는 경우에도 부작용이 우려되는 ‘위험 수준’으로 간주된다.

노무라증권에 따르면, 연준이 월간 450억 달러 규모의 국채 매입을 지속하면 올해 말 연준이 보유할 10~20년 만기와 20~30년 만기 국채 규모는 총 발행액의 46%에 달해 ‘위험수준’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됐다. 내년부터는 장기 국채를 사들일 여력이 거의 없어지는 것이다.

이 같은 분석은 미국 정부의 국채 발행 축소 예상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실제 국채시장에 미치는 물량 소진 위험은 좀 더 빨리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가 다시 악화되면 사용할 수 있는 연준의 정책 여력이 극히 제한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심각하지는 않지만 부작용은 벌써 나타났다. 3월, 미국 국채 레포시장에서는 대차거래 담보로 제공된 무려 789억 달러의 국채가 상환되지 않는 사고가 발생했다. 누군가가 국채가격 하락을 노리고 빌린 국채를 팔았다가 상환기일에 맞춰 되사지 못한 것이다. 시장 유통물량이 워낙 적다 보니 일어난 일이다. 이로 인해 당시 국채 레포금리가 폭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지금처럼 유동성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국채를 대량으로 보유한 세력이 인위적으로 시장 불안을 일으킬 수 있다.

현재 연준이 설정한 제로금리 정책의 유지 시한은 ‘실업률이 6.5%에 도달할 때까지’이다. 연준은 애초 이 시한을 ‘오는 2015년 6월 말까지’로 설정했다가 지난해 12월 들어 실업률로 바꿨다. 당시 연준은 “실업률 6.5% 도달 시기는 기존의 2015년 6월 말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2015년 6월 말부터 연준은 본격적으로 금리 인상을 고민하기 시작해야 한다.

연준이 금리 인상을 검토하려면 먼저 양적 완화를 중단해야 한다. 만기 도래한 모기지채권(MBS) 재투자를 중단하고, 기간물 예금 입찰을 개시하는 등의 양적 축소 정책도 선행해야 한다. 이를 수행하려면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연준은 내년 상반기에는 양적 완화를 종료할 필요가 있다.



양적 완화 축소가 출구전략 신호탄 아니다하지만, 양적 완화 규모 축소를 반드시 출구전략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연준이 5월 1일 FOMC에서 양적 완화 규모의 유연성을 확대하기로 한 것은 재무부의 국채 발행 스케줄을 맞추기 위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채 공급 축소에 맞춰 양적완화 규모를 예정보다 조기에 줄였다가 국채 발행이 확대되면 양적 완화 규모를 다시 늘린다는 구상일 수 있는 것이다.

연준은 4월 회의에서 정책 목표, 즉 ‘고용시장의 상당한 회복’이 이뤄지는 경우에만 양적 완화를 중단한다는 원칙을 보다 구체적으로 정했다. 연준이 양적 완화 시행기간을 늘리고, 금리 인상 시기를 늦출 가능성이 여전히 강하게 열려 있는 셈이다. 연준이 양적 완화를 유연하게 줄일 수 있도록 한 것은 양적 완화의 장기화 가능성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채권 매입 속도를 늦추면 양적 완화를 좀 더 길게 시행하더라도 대차대조표(화폐공급 잔액)가 지나치게 불어나는 우려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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